수많은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비슷한 것들을 소비하면서 비슷한 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상을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누구나 욕망하는 것은, 꿈꾸는 것은 브랜드 있는 삶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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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요?

김이은 작가의 소설 ’11:59PM 밤의 시간’ 속 주인공 해선은 이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건 잘 살아야 한다는 거야. 남들과 다르게,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아름답고 품격 있게.”

해선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품격은 사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합니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에 대한 욕망을 쫓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나약한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소설은 조용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몇 해 전, 흥행에 성공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평론가들은 “기존의 스릴러와는 다르게 영화 초반에 범인을 미리 밝혀놓는다는 점이 놀랍다”라고 했지요.

이 소설 ’11:59PM 밤의 시간’도 같습니다.

작가는 소설 초반에 범인이 누군지 먼저 밝혀버립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독자들이 바로 확인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합니다.

말하자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과 침묵의 공범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이 영화와 소설의 공통점은 감독이나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어지간한 자신이 없으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을 놀라운 방법이라는 겁니다.

소설 속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보험’이란 일상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피해에 대비해서, 사람들이 미리 돈을 모아 두었다가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보상을 받기 위해 피해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자신의 풍요로움을 위해 타인의 물건을 빼앗고, 건강을 빼앗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는 괴물.

외면하고 싶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시대의 뒤틀린 욕망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떤가요?

명품이라 불리는 비싼 옷, 시계, 차, 아파트 등등 원하는 바를 가지는 것이 미덕이자 능력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린 이런 과시욕을 경멸하면서도 동경하고, 욕하면서 욕망하도록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란한 총소리도, 격렬한 액션도 없지만 밤이슬처럼 서늘하게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스며드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