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누구도 이 사건을 예측하지 못했다. 직원들은 당장에 처리해야 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국립국악원

그렇다. 오늘 회사 탕비실에 믹스커피가 떨어졌다. 대표님은 혼란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제안을 한다. “이참에 우리도 탕비실에 좋은 커피를 놓자.”

하지만 누구도 어떤 커피를 놓아야 할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난다. 입사 2년 차 월급루팡… 아니 마시즘이다.


태평성대를 불러올
오피스 커피를 찾아라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노동과 복지를 한 번에 높이는 마법의 물약이다. 로켓에 연료가 필요하듯,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양질의 커피가 필요하다. 그렇다.

우리가 일을 못하는 것! 그것은 커피믹스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최고의 커피믹스’를 찾는다. 또한 커피믹스를 마시지 못하는 직원들의 커피 복지를 위해 ‘스틱 아메리카노’를 추가한다. (커피머신도 사줘!) 그러려면 구글 가라.

지난 이틀 동안 마시즘은 마트와 편의점에 판매되는 커피믹스와 스틱 아메리카노 후보군을 찾아갔다. 그중에 인지도와 효능, 그리고 평소에 마시고 싶었던 것들을 위주로 제품들을 골랐다. 1봉씩 판매하지 않아 박스채 사버린 게 함정. 물론 법카로 계산한 것은 대표님은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다.


실험방법
이틀에 걸친 심층 시음

각각의 커피에는 이름대신 번호를 쓰고 진행했다

마시즘은 이틀에 걸쳐 탕비실을 점거했다. 첫날은 커피믹스, 다음 날은 스틱 아메리카노를 블라인드 비교했다. 같은 종류의 커피군을 병렬 비교하기 위해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양치와 물 마시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실은 양치 특집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양치를 많이 했다.

기존 커피믹스에 대한 리뷰는 성분 아니면 연예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체감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비교했다. 이를테면 스틱을 뜯을 때의 절삭력과 쾌감부터… 커피가 식은 다음에 맛까지.

오피스 커피를 마실 때 경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세부적으로 나눠 심층 비교했다. 그리고 이것을 엑셀로 정리했다.


1. 커피믹스 최강자전

오른쪽부터 맥심 모카골드, 노블 커피믹스, 네스카페 수프리모, 프렌치카페, G7

안성기 선생님은 말했다. 커피는 맥심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맛의 커피믹스가 나왔다.

과연 커피믹스의 종주국 다운 퀄리티. 문제는 우리가 매일 똑같은 커피믹스를 마시느라 커피믹스의 다양한 세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1-1. 절삭력 대결
누가 더 잘 뜯기나?

  • 1위. 맥심 : 원조의 힘! 깔끔하게 잘려나감
  • 2위. 노블 : 내용물이 많아 알갱이 몇 개가 튐!
  • 3위. 프렌치카페 : 절취선을 약간 벗어났다

커피믹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그것은 절삭력, 즉 ‘얼마나 봉지가 잘 뜯기냐?’다. 무언가를 뜯을 때의 쾌감(?)은 업무 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줄여주는데 일조한다.

또한 나처럼 꽃 한 송이 꺾을 기력 없는 프로직장인이라면 쉽게 뜯기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한국에는 ‘이지컷(Easy-Cut)’이라는 위대한 기술이 있다.

아무래도 이 기술을 개발한 맥심 모카콜드(이하 맥심)이 칼로 무 썰듯 깔끔하게 잘린다. 뒤이어 노블 커피믹스(이하 노블커피)이다.

‘폭’소리가 날 정도로 경쾌하게 뜯겼지만 동시에 커피 알갱이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가 은메달에 그쳤다. 그 뒤로 프렌치카페, 네스카페 수프리모(이하 네스카페)가 뒤를 이었다. G7은 베트남 커피라 이지컷이 없다.


1-2. 커피 알갱이 대결
알갱이부터 먹어봐야 진짜다

12시부터 시계방향 맥심, 노블, 네스카페, 프렌치카페, G7

  • 1위 노블 : 짠맛으로 쓴맛을 조절
  • 2위 네스카페 : 신맛으로 쓴맛을 조절
  • 3위 맥심 : 균형 잡혀있지만 너무 익숙함

일생일대의 실험을 앞두고 커피믹스에 바로 물을 붓는 것은 실례다. 탕비실에 뜨거운 물이 없어서 커피믹스 가루를 입에 털어먹을 경우도 고려해봐야 한다. 나는 커피믹스의 커피 알갱이 몇 알을 입에 넣었다.

물 대신 침으로 녹아내리는 커피에서 나오는 풍미. 이것만으로도 나를 커피의 원산지에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물론 안 가봐서 하는 말이다.

맛의 기준은 주관적이다. 다만 마시즘은 ‘쓴 맛을 어떻게 조절하는가’를 기준으로 순위를 나눴다. 이 부분에서 노블커피와 네스카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노블커피는 짠맛으로, 네스카페는 신맛으로 쓴맛의 고삐를 잡았다. 개인적으로 신맛보다 짭조름한 것을 좋아해서 위에 올려놓긴 했지만 막상막하였다. 그 뒤로 맥심과 프렌치카페가 뒤를 이었다. G7은 가루커피라 알갱이를 짚을 수 없었다.


1-3. 향미 대결
물을 부었을 때 나는 향은?

  • 1위 맥심 : 내가 처음 맡은 커피 향의 기준
  • 2위 네스카페 : 시큼한 향 뒤에 감춰진 커피의 향
  • 3위 노블 : 영업시간 끝난 카페에서 나오는 잔향

자! 이제 커피믹스를 만들 시간이다. 커피믹스에 물을 붓는 순간은 짧지만 감동은 깊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린 게임의 압축을 푸는 기분이랄까? 모래알 같은 커피 알갱이에서 ‘향’이 퍼져 나오고, 나름의 ‘마블링’을 만들며 커피의 형태를 만든다.

나는 섭씨 95도의 뜨거운 물을 종이컵 1/3로 채워 넣었다. 아이돌 연습생들이 이 비율로 마신다는데, 마시즘도 음료계의 아이돌이니까(아마도 제발).

물을 부었을 때 나오는 향기는 맥심이 가장 좋았다. 블라인드 처리를 했는데도 맥심을 찾다니, 역시 인생에서 처음 맡은 커피 향이 원두가 아니라 맥심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네스카페는 시큼한 향 뒤에 커피의 기운이 있었다. 노블커피는 영업시간 종료 후의 카페에 들어간 듯한 향기가 났다. 옅게 나는 커피 구운 잔향. 프렌치카페는 고소한 누룽지향이, G7은 김치찌개의 짠내가 느껴졌다. 잠깐만 너 베트남 커피 아니었냐?

커피믹스에는 커피의 거품 ‘크레마’가 생기지는 않지만 우유와 커피가 섞여 나는 특유의 무늬가 있다. 이쪽에서는 노블커피가 가장 근사했다.

우유와 코코넛 오일, 커피의 조화로움이 마시기 전에 잔 위에 그려진다랄까? 하지만 동시에 커피가 바로 녹지 않아 점박이가 생기는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 뒤로 프렌치 카페가 거품이 풍성했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했다. 하긴 다 잘 섞이면 고만고만해진다.


1-4. 맛의 대결
이제야 커피믹스 마시즘

12시부터 시계방향 맥심, 노블, 네스카페, 프렌치카페, G7

  • 1위 노블커피 : 맛의 층위가 좋다
  • 2위 프렌치카페 : 한 맛만 팬다. 단 게 최고!
  • 3위 네스카페 : 연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이쪽도

커피믹스를 뜯고 물을 부어보는 과정으로 이미 마시즘 한 편 분량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부터인 게 함정. 이제 커피믹스 맛의 진검승부를 할 때가 되었다. 자고로 커피믹스의 맛이란 체스게임 같은 것이다.

커피의 풍미라는 킹을 뒤로 두고 단맛과 짠맛, 신맛, 쓴맛 등의 말들이 어떤 순서로 나오느냐가 게임의 승패를 가린다.

노블커피의 경우 맛의 콤보가 좋았다. 입에 커피가 들어오기 전에 향이 들어왔고, 다음에 짭조름한 파도, 그 위로 달콤한 구름이 얹어진 느낌이었다. 엄청 달다는 느낌보다 달콤한 덩어리가 혀 위를 굴러간 기분이다. 마신 뒤에 나는 짠맛이 깔끔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프렌치카페가 좋았다. 왜냐하면 다니까. 아시다시피 직장인들이 커피믹스를 찾는 것은 당이 떨어져서다. 프렌치카페의 압도적인 단맛은 호소력이 있다. 반대로 네스카페 수프리모는 내놓으라는 단맛 대신 신맛이 협상을 하는 모습이었다.

연한 커피믹스가 마시고 싶다면 이쪽을 추천한다. 맥심은 맥심이다. 익숙한 맛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G7… 이것은 이국적이고 충격적인 맛이 났다. 굉장히 짭조름하다가 달콤한 맛이다. 호불호가 딱 갈릴 듯한 특별함이었다.


1-5. 시간차 대결
커피믹스의 식은 맛 대결

옛말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직장인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다가 종종 긴급상황에 끌려간다. 다시 커피를 마시려고 하면 차디차게 식어있는 커피믹스를 만나곤 한다. 그렇다면 식어버린 커피믹스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일까?

맥심에서는 소문처럼 ‘더위사냥’ 아이스크림을 녹인 맛이 났다. 요즘 인싸들은 이걸 다시 얼려서 맥심사냥을 먹는다는데. 프렌치카페는 변함없는 단맛을 유지했다.

오히려 뜨거울 때는 느끼지 못한 우유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노블커피는 시럽을 급히 추가한 카페라떼 느낌이 났다. 네스카페는 시큼해졌고, G7은 짰다.

당이 떨어지는 오후 4시에 시작한 일이.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란 녀석 커피믹스만 마시면서 야근까지 하다니. 오늘의 실험은 종료한다. 그런데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있을까?


2 번외 편.
스틱 아메리카노 최강자전

오른쪽부터 맥심 카누, 노블 아메리카노, 네스카페 크레마, 루카스9 마일드, 루카스9 다크

커피믹스에서 끝내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독자를 위해서도, 커피를 사야 하는 대표님 입장에서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커피믹스를 마시지 않는 이들이 있다.

탕비실에 스틱 아메리카노가 없다면 카페로 뛰쳐나가 1-2시간은 사라질 아메리카노 유령들. 그들을 위해 스틱 아메리카노도 마셔보았다.


2-1 맛의 대결
탕비실 아메리카노의 맛은?

카누, 노블, 네스카페 크레마, 루카스9 마일드, 루카스9 다크

  • 1위 카누 : 단순해 보이지만 단맛 쓴맛 짠맛의 콤비네이션
  • 2위 노블커피 : 건강한 맛,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듯
  • 3위 루카스9 : 상사들이 좋아할 맛, 무한 카페인

커피믹스가 ‘여러 가지 맛을 얼마나 균형 잡히게 보여주느냐’로 맛의 평가를 내렸다면, 스틱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 본연의 느낌을 얼마나 구현하는가로 점수를 주었다. 또한 커피믹스를 마시는 이들보다 아메리카노를 찾는 이들이 건강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건강 어드벤티지를 적용했다.

맥심 카누(이하 카누)는 뜨거운 물의 맛 아래 쓴맛과 짠맛이 바라락 터진다. 커피 알갱이의 맛이 커피에서 그대로 구현되어 놀라웠다. 타격감 있는 맛 뒤에는 짭조름하고 쓴맛이 남는데 혀가 얼얼하다.

노블 아메리카노(이하 노블)는 알갱이 때부터 흙 느낌이 났다. 역시나 유기농이 느껴지는 구수함. 맛 자체는 부드러운 아메리카노였다. 하지만 노화를 막는 폴리페놀이 타 커피 대비 2-3배 많다는 사실에 혹했다.

루카스 9(마일드, 다크 모두)에서는 “나는 카페인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맛이 났다. 워커홀릭 상사들이 좋아할 카페인을 링거처럼 수혈받는 맛이다. 네스카페 크레마(이하 네스카페)는 퍼포먼스 형이었다.

물을 부었을 때 앞도적인 크레마가 터졌다. 맛 역시 균형 잡힌 산미를 자랑했지만 식을수록 신맛이 도드라졌다.


3. 탕비실의 바리스타
마시즘이 고른 오피스 커피는?

이틀간의 (탕진)이 끝났다. 실험을 하기 전에는 커피를 고를 때 ‘연예인 얼굴’을 보고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각의 커피믹스, 스틱 아메리카노는 나름의 색깔이 존재했다. 각각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아래의 한 줄 평을 작성했다.

  • 커피믹스(가나다순) 
    – 네스카페 수프리모 : 시큼이형, 커피는 산미지 하는 분에게
    – 노블 커피믹스 : 밸런스형, 믹스커피인데 고급집니다
    – 맥심 모카골드 : 현상유지형, 좋은데 익숙합니다
    – 프렌치카페 : 당충전형, 당이 당길 때 최고입니다
    – G7 : 본격휴가형, 베트남에 가고 싶습니다
  • 스틱 아메리카노(가나다순)
    – 네스카페 크레마 : 퍼포먼스형, 거품이 멋지다 우와
    – 노블 아메리카노 : 건강복지형, 직원의 건강은 소중합니다
    – 루카스9 : 카페인형, 카페인 강림을 혀로 느끼고 싶다면 이것입니다
    – 카누 : 기본은 하는 형, 욕먹을 일도 없고 칭찬받을 일도…

마시즘이 점지한 믹스커피의 최강자는 누구일까?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노블커피’였다. 사실 커피를 한 번에 몰아서 마시면서 ‘밥보다 많이 먹는 커피에게 중요한 것은 일말의 건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 같은 월급루ㅍ… 아니 프로직장인에게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 그리고 힙터지는 커피가 아니던가.

덧) 대표님은 나의 탕진… 아니 진실된 추천을 반겼다. 다만 내가 연구를 한다고 마구 법카로 사놓은 커피들을 다 마시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사무실은 의도치 않게 각자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를 찾는 일이 벌어졌다. 나란 녀석 사무실의 태평성대… 아니 커피 민주주의를 이뤄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