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토요일. 황피디 그녀의 일상.

국립국악원

[이전 이야기]

제주도 한 달 살기, 황 PD의 이야기

제주도 한달살기 프로젝트

제주도 여행, 한 달치 일정을 짜다.

내가 기대하는 제주도 특급 호텔!

일상_01

서울에서보다 더욱 바빠진 그녀 황피디

잠이 참 많은 그녀 황피디. 그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는게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녀는 제주살이 시작 후부터 어김없이 8시에 눈을 떠야 했다. 특히 잠자리 환경에 영향을 받던 그녀는 매번 새로운 숙소에서 불편하게 뒤척이며 새벽에 겨우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정확히 3일째 밤부터 감기약, xx약 등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3일 차부터 약간의 몸살 기운을 느끼며 4일 차 아침,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카메라를 목에 걸고 1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일상_02

내려놓지 못하는 은사장과의 고생길

그녀는 왜 아침부터 세수도 하지 못하고 프런트로 내려갔을까? 바로 조식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사실 사진만큼은 내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디자인적 감각이 있는 황피디를 많이 의지하고 있다. 때문에 피곤해하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내가 찍어올게!”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워 항상 사진은 황 피디와 함께 찍어야 했다. 그녀는 눈꼽도 떼지 못하고 모자만을 푹 눌러쓴 채 엘리베이터부터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어 내려간다. 사실 대충 찍어도 될법한데, 조금이라도 사진이 대충 나오면 콘텐츠 집착증이 있는 나의 원성을 살 수 있기에 절대 그녀는 대충해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음식 사진도 최대한 색감을 살려 맛있어 보이는 각도로 찍어야 했는데, 때문에 음식이 개별로 담겨있을 때와 음식을 먹기 좋게 담았을 때, 이 두 컨셉이 모두 완벽하게 나와줘야 했다. 아침을 먹지 않는 황피디. 그녀는 또 사진을 위해 한아름 음식을 담아 테이블에 올린다. 그리고 앉을 새도 없이 그녀는 음식 사진을 찍고 자세를 달리해가며 최대한 맛있어 보이도록 각도로 자신의 몸을 움진인다.(심할 때는 누워서 사진 찍는 것도 봤다) 서울에서는 아직 그녀가 잠잘 시간에 말이다.

일상_03

이렇게 조식 사진을 찍고 나면 전날 찍었던 사진 중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하기 위해 호텔 외관을 돌며 또 사진을 찍는다. 대부분의 호텔이 건물을 통째로 쓰기 때문에 높고 큰 편인데, 이를 모두 담기 위해서는 멀리서 호텔의 모습을 찍어야 했다. 도로 위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당연히 사람들이 마구마구 지나다녀 사진을 찍기 어려웠고, 길 건너에서 찍을 때는 차들이 나오지 않게 찍어야 했기에 그녀는 셔터를 내리는 손을 쉽게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사진을 다 찍고 숙소로 돌아오면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때부터 우리 둘은 번갈아가면서 씻고 나갈 채비를 한다. 이때 나는 또 한 번 부탁한다. “고운아 아침에 일어나서 부스스한 우리 모습도 찍어줘. 이것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될 거야” 황피디는 아직도 덜 떠진 눈을 하고는 프로답게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어준다.

일상_04

우리가 지내는 곳은 서귀포였는데 이날은 우리가 12시에 체크인을 하고 시간이 남았기에 올레시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귀포에서 가장 핫하다는 올레시장으로 차를 향했다. 예전에 강릉의 시장에서 맛있어 보이는 주전부리들을 많이 보았기에 올레시장에도 기대가 컸는데 우리가 너무 이른 시간에 방문해서인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대부분 오픈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장을 둘러볼 때 눈으로만 즐겁게 감상할 수가 없었는데, 이 시장에서도 어떤 콘텐츠를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최대한 자극적이고 이쁘고, 눈에 들어올만한 포인트 있는 가게들만을 찾아 헤매게 되었는데 이런 곳을 하나라도 발견하면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폰으로도 찍어야 했다. 이 빡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녀는 오늘 씻지도 않고 화장도 하지 않고(그녀와 3년째 일했는데 화장을 안 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프로답게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일상_05

단 한 번도 맛집을 간 적이 없는 우리들

제주도에서 우리는 항상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이동하고 사진, 영상 등 파일을 체크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만에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점을 찾을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대충 아무거나 먹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로 올레시장을 걷던 도중… 인스타그램으로 5분 안에 찾은 한 고기국수집에 들어가 또다시 실망만 안고 나오게 되었다. 이쯤 되면 진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모든 광고 콘텐츠는 믿을게 못 되고, 인스타나 블로그에 최근에 올라와있는 음식점은 아예 가지 않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면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지었던 그녀이겠만.. 각종 약을 달고 살며 앙상해진 그녀에게 농담으로 오늘 밤 응급실에 실려갈 수도 있다는 말까지도 하게 되었다.

맛없는 음식점에서 기분이 나빠져 나와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체크인까지 2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새로 옮기는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차를 탄 이후로 조수석에서 조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그녀는 나의 내비게이션 역할, 또는 백밀러 역할 등 다양한 역할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향한 숙소는 신시가지에 있는 라마다 앙코르 호텔인데, (올스테이를 통해 예약했음)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보니 이쪽이 신도시어서 이제 들어서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근처의 카페를 찾기 위해 잠시 방황했다. 그러던 중 서귀포항으로 내려가는 길 쪽에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일상_06

일, 일, 일하느라 식사도 못하고..

오늘은 이곳이다! 싶어서 황피디와 카페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가구들이 엔틱한 느낌이었는데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우리가 일하기 편해 보였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시간은 2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녀와 우리가 오늘 할 일에 대해 분배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사진을 업로드하고, 파일명을 모조리 바꿔서 저장하고, 업로드한 뒤, 앞으로 진행할 액티비티 활동을 정리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을 하기로 하고, 나는 숙소 정보를 정리해서 2개의 콘텐츠를 최종으로 완성하고, 기획안을 작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시간을 보니 벌써 시간은 7시. 그녀에게 배고프냐고 물었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인지 모르게 5시간을 일을 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업무를 내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걱정하며 가방을 싸 숙소로 체크인을 하기 위해 들어섰다.

일상_07

사진 찍는 일 조차 쉽지 않다.

새로 옮긴 숙소에 도착해서 그녀는 밖에서부터 프런트까지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하필이면 오늘 프런트에서 한소리를 듣게 되었다. 본인들이 나오니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초상권도 있다 보니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물론 우리도 그런 걱정 때문에 사람들이 없을 때 빨리 찍거나 프런트 위의 로고를 중심으로 찍는데, 사실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있다 보니 거부감을 많인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한소리를 듣고 기운이 빠진 그녀와 숙소로 올라가 또다시 엘리베이터부터 카메라를 들고 숙소로 들어서야 했다.

영상은 내가 찍고 사진은 그녀가 맡는데, 이렇게 찍기 위해서 객실 입장은 영상담당인 내가 먼저 들어가서 5분 정도 촬영하고 그때 밖에서 그녀는 약 5분 정도 짐을 들고 닫힌 문 앞에서 서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영상에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짐을 풀고 나니 시간은 8시. 우리는 이번에도 뭘 먹어야 할지 준비도 없이 무조건 시내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 우리는 또다시 믿을 것 하나 없는 인스타를 의지해 어떤 곳을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술집… 게다가 나는 거친 내 운전 솜씨로 멀미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 놀랐다. 자신이 운전하면서 자기가 멀미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이 나라니..! 정말… 나란 여자는..

일상_08

그런데 사실 배가고플때나는 주로 멀미를 하는데,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일을 끝내면서 배가 고팠던 것 같다. 그래서 속이 뒤집어 질랑말랑 하는 나를 두고 아무 곳이나 향할 수 없어서 향한 곳은 바로 앞의 콩나물해장국집.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이 수상해 보였지만 솔직히 콩나물 해장국이 맛없어도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마음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콩나물해장국을 맛보게 되었다.

똥 씹은 표정으로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숙소에 들어와 오늘 찍은 사진을 옮기고 잘 준비를 했다. 할 일이 남아있었지만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던 오늘, 더 이상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다음날 만들 콘텐츠들 소스를 체크하고 리뷰하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가진 뒤 잠자기로 했다.

일상_09

제주도 한달살이와 디지털노마드의 다름

그녀는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짠 나와 여행을 결심하다니. 이런 일정을 불평 하나 없이 소화하고 있다니. (사실 그녀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걸어 다니기 일수였음) 나는 원래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정말 많은 사람이고, 무조건 잘해야 하며, 어떤 일을 할 때는 나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뽑아내기 위해서 일하는 너무 피곤한 사람이다. 반면에 일하는 시간과 자기만의 시간을 현명하게 조율해서 그 안에서도 여유를 찾아가는 삶을 사는 그녀가 내 옆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런 우리의 일상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이 딱 한마디 했다. “고운이 그러다가 다음 주에 짐 싸서 서울 가는 거 아니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고, 무턱대고 많은 일들을 벌린 것은 사실이지만, 디지털노마드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실 어디에 있던 일정 시간은 일을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의 여행은 디지털노마드로서의 여정이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일하러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은 힘들지만 아무 내색 안 하는 고운이보다는,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속 안에 무언가가 응어리져 있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제주로 떠나면 훨씬 더 색다른 삶이 펼쳐질 거라고 기대하고 온 우리. 하지만 제주도에는 우리가 꿈꾸던 제주도의 삶은 없었다. 서울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황피디에게 꼰대처럼 다 좋은 경험이야, 밑거름이 될 거야 라는 흔해 빠진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남은 시간 동안 우리들이 꿈꾸는 제주도의 삶을 완성해가자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