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물값인가 금값인가

명절을 맞아 온 친척들이 모였다. 식혜는 물론 수정과, 대추차 등 손수 만든 음료들이 있는 한가위는 풍족함 그 자체였다. 어른들이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열심히 마셔대던(?) 내가 눈에 띈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이 무엇인지 아느냐?”

큰아버지는 뭐 어머니의 눈물… 비슷한 답을 말해주었다. 아닌데요. 우리 어머니는 드라마 배경음악만 깔려도 잘 우시는데. 그걸 잘 모르는 큰아버지를 위해 준비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 10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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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 위치한 테즈매니아 섬은 오지 중의 오지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오지(…)는지 이곳에서는 강물도 바닷물도 아닌 빗물을 가지고 생수를 만들어냈다. 이름하야 ‘테즈매니안 레인(Tasmanian Rain)’

테즈매니안 레인은 땅에 닿지 않은 빗물을 받아서 정제 작업을 거친 후에 출하된다. 엇비슷한 가격의 프리미엄 생수들이 있지만, 빗물의 특별함에 더욱 가치를 주었다. 자연의 빗물을 마시고 싶은 순수파에게 추천한다. 물론 비 오는 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면…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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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수원지가 특별한 것은 빙하기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냉동 모드였던 빙하기의 순수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특별하다. ‘아쿠아 데코(Aqua Deco)’는 1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대수층의 순수한 물을 마실 수 있는 프리미엄 생수다.

하지만 아쿠아 데코는 아름다운 물병으로 더욱 알려졌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듯한 물병의 모양은 세계 유수의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했을 정도다. 물이면 물, 병이면 병 빠질 것 없는 엄친아 같은 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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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데코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텐 싸우전드 비씨(10 Thousand BC)’를 선택할 수 있다. 캐나다 연안에 있는 빙하를 녹여 만든 이 생수의 나이는 이름 그대로 1만 년이다. 텐 사우전드 비씨를 마신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낸 순수한 물을 몸에 들이는 것이다.

물론 마시기가 쉽지 않다. 텐 사우전드 비씨를 마시기 위해서는 라스베거스 힐튼 호텔 VIP 스위트룸에 묵거나, 캐나다 총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텐 사우전드 비씨는 캐나다 총리의 저녁식사에 함께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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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유럽이다. 끝없는 눈길이 펼쳐지고, 밤하늘에 오로라가 보이는 그곳. 핀란드의 최북단 라플랜드다. 이곳의 물을 담은 ‘빈(VEEN)’은 갈증해소는 물론 스트레스를 줄이고, 몸에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다고 한다.

물의 질감이 다르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 마실 때 목에 부드럽게 넘어간다 수준이 아닌 미끄러진다고 말한다. 본격 미끄러운 물. 나도 그 위로 미끄러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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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타들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 봤을 법한 프리미엄 생수다. ‘블링 에이치투오(Bling H2O)’는 헐리우드 여배우, 스포츠 스타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보석으로 bling이라고 박힌 물을 마시는 스타의 모습은 블링블링 할 것 같다.

때문에 이 생수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나 목말라요”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블링 에이치투오를 마신다는 것은 “목마른 내가 아름다움과 건강을 모두 챙기는 것을 보거라”로 읽으면 된다. 하긴 샴페인을 내리 마시는 것보다는 물을 마시는 것이 스타의 건강과 통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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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병이 왕관을 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같은 민간인이 마시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한다. ‘필리코(Fillico)’는 이태리어 Filo(공감하다)와 Ricco(부자)를 합친 말인데, 오버해서 해석하자면 부자가 공감하는 물…이라고 볼 수 있다.

동유럽의 어딘가에서 나타났을 것 같은 필리코는 사실 일본의 고배 지방에서 생산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 장인들이 사케를 만들던 물을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내놓은 것. 헬로키티 에디션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 한 모습이 굉장히 일본스럽고(?) 재미있는 고급 생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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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 니가리 워터(KONA Rigari Water)’의 외관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만만하게 생긴 디자인은 녀석이 엄청난 실력파 물이라는 사실을. 하와이 인근 해양의 2,000피트 아래에 있는 해양심층수를 구해서 염분만 제거한 엑기스 중의 엑기스라고 한다. 때문에 물에 12배 희석하여 마시거나, 얼음을 띄워 온더락으로 마신다.

코나 니가리 워터는 일본인들에게 인기라고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소문과 가격만 떠도는 얼굴 없는 가수 같은 생수로 피부 노화 방지 그리고 체중을 줄여준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마신다면 지갑의 체중은 확실하게 줄어들 것 같다. 정말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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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아 골드(Exousia Gold)’는 이탈리아의 광천수를 24K 순금으로 추출한 생수계의 금수저다. 생수의 정제 필터를 순금으로 사용하다니 인간의 사치란…

금을 통해 정제된 엑소시아 골드에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노화를 방지해주는 효능이 들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금도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될 것 같다. 일반인이 이걸 마셨다가는 스트레트는 물론 어마어마한 가격에 폭삭 늙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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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로 등재된 녀석이다. 무엇보다 고대 유적 같은 물병의 모양이 인상적이다. 이를 디자인한 사람은 페르난도 알타미라노라는 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술 1, 2위의 병을 디자인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손을 댄 순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격만큼은 아니겠지만 물 역시 유명 워터소믈리에가 프랑스와 남태평양 피지섬의 광천수를 적절하게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한화로 약 7억 원 가까이하는 이 생수는 현재 판매되었고, 그 수익금은 지구 온난화 개선자금으로 기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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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룸 79(Aurum 79)는 이름부터 금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 아우룸은 라틴어로 ‘빛나는 새벽’을 뜻하는데 Au는 원소기호로 금을 말한다. 장난 같냐고? 뒤에 붙은 79는 금의 원소 번호다. 그야말로 금의, 금에 의한, 금을 위한 생수다.

유럽의 가장 좋은 수원지 중 하나인 독일 세인트 레온하르트의 광천수가 담긴 이 병과 잔에는 금과 다이아몬드, 크리스털로 도배가 되어있다.

아우룸을 마시는 사람은 뭐랄까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다. 부에 대한 과시욕구를 해소시켜 준다. 전 세계에서 3병만 만들어진 아우룸 79는 한화로 10억 원 정도를 호가한다. 사람이 삼다수(500ml 기준)를 하루 1리터씩 1,611년 마실 수 있는 돈이다.

만약 우리가 마시는 물이 이렇게 비쌌다면?

수원지에 따라, 물의 종류에 따라, 혹은 값비싼 디자인과 명성에 맞춰 다양한 가격의 생수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비싸다고 우리가 마시는 물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좋은 퀄리티의 물을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과시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생존수단으로 물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줄 물이야 말로 가격을 떠나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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