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가득한 캠퍼스를 혼자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새로운 신상 음료를 구입하는 것뿐이다. 흘러 흘러 구하다 보니까 모교까지 들어왔군. 편의점에서 마주친 조교는 다급히 외친다. 선배님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는 무슨… 경비원! 박물관에서 화석이 탈주했다!

국립국악원
편의점 봉봉

빈티지, 포도봉봉

편의점 봉봉
(우리가 아는 봉봉은 이렇게 생겼다)

캠퍼스는 신상이 출몰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아야만 젊은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마시즘 같은 지박령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대비가 되어있다. 바로 스테디셀러를 항상 비치해놓는 것이다. 포도봉봉! 이것이 아직도 여기에 있다니 정말이지 반가울 수가 없다.

포도봉봉은 1981년에 출시된 녀석이다. 나는 물론 학생운동 세대들도 마셨을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잘 팔린다는 것. 지난해 상반기에 가장 많이 팔린 과즙음료 2위에 랭크된 녀석이다(1위는 갈아만든 배). 맛을 리뷰하기 미안할 정도로 전 국민이 잘 알고 있는 그 맛. 하지만 포도봉봉만 마시려 했다면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레트로, 파인애플봉봉

편의점 봉봉
(노오력을 하다보면 파인애플 봉봉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파인애플 봉봉. 이 녀석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포도봉봉과 함께 출시되었다가 사라진 녀석이다. 하지만 포도봉봉의 인기에 힘입어 재출시가 되었다. 음료계의 토토가랄까? 추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 봉봉이 파인애플 버전이 있다니.

80년대와 90년대의 감성을 그대로 담은 디자인(이라고 쓰고 재탕이라고 읽는다)은 2019년이 되어서야 가장 유행하는 디자인이 되었다. 열대우림 버전의 봉봉. 네가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애써 캔 뚜껑을 따고 마시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아직 한 녀석이 더 남았기 때문이다.


뉴트로, 복숭아봉봉

편의점 봉봉
(어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신상 복숭아봉봉)

바로 올해 출시된 복숭아봉봉이다. 포도봉봉이 스테디셀러고, 파인애플봉봉이 레트로라면, 이 녀석은 뉴트로라고 볼 수 있다. 생김새는 80년대를 풍미했을 것 같지만 출생 연월이 2019년 1월. 완전히 새롭지만 친근한 신상음료다. 복숭아봉봉을 찾아 얼마나 많은 곳을 헤매었던가. 결국 이곳까지 와서 구할 수 있었다.

비록 240ml짜리 복숭아봉봉이 없다는 사실은 아쉽지만(봉봉시리즈는 뚱캔이 진리다). 처음 만난 만큼 340ml의 즐거움을 느끼기로 했다. 드디어 봉봉을 모두 구했다. 이것까지 마시면 이제 남은 것은 해외에서만 판매한다는 ‘오렌지봉봉’뿐이다.


8할은 알갱이다

편의점 봉봉
(시계방향으로 포도봉봉, 파인애플봉봉, 복숭아봉봉)

봉봉 존재감의 8할은 알갱이에서 나온다. 봉봉이라는 이름 자체가 포도봉봉을 알갱이가 동그랗게 생겨서 지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혹시나 모를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봉봉 속의 알갱이들은 진짜 과일이라고 한다. 포도봉봉을 마실 때마다 씨를 바르느라 고생한 이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마셔야겠다.

편의점 봉봉
(포도봉봉은 12알, 복숭아봉봉은 66알, 파인애플봉봉은 35개의 덩어리+α다)

포도알갱이가 둥둥 떠있는 포도봉봉에 비해 파인애플봉봉과 복숭아봉봉은 다른 매력을 지녔다. 파인애플봉봉은 파인애플 알갱이가 해체된 느낌이다. 가루와 알갱이의 중간단계. 씹어먹는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복숭아봉봉은 깍두기 썰듯이 네모난 모양으로 알갱이들이 잘려있다. 포도봉봉처럼 말랑한 느낌, 코코팜처럼 커다란 질감은 느낄 수 없지만 나름 자잘 자잘한 재미가 있다.


음료냐, 통조림 국물이냐

자 이제 마셔볼 시간이다. 포도봉봉, 파인애플봉봉, 복숭아봉봉은 정말이지. 각각의 과일통조림 맛이 난다. 통조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다 먹고 난 후에 누가 국물을 들이켜냐다. 이것은 죠리퐁을 말아먹은 후에 마시는 우유, 설탕 뿌린 토마토를 먹은 후에 마시는 토마토 국물과 동급이라고 볼 수 있다. 음료의 범주는 아니지만, 마실 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자원들이다.

봉봉시리즈는 주스의 느낌보다 그런 통조림을 마시는 기분이 있다. 통조림과 봉봉의 차이는 알갱이냐 국물이냐 중에서 무엇을 중점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다. 하지만 실제 통조림 국물은 너무 달고, 시고, 짠 수준이고. 봉봉은 이것을 맛깔스럽게 순화시켰다. 가장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게 최고다. 봉봉, 네가 최고다.


봉봉, 현재이자 과거이자 미래다

쏟아지는 신상음료들 속에서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음료들이 있다. 사라졌던 음료가 나오기도 하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잠깐 뜨고 사라지는 요즘 세상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는 등대 같은 이들이랄까.

그래서 봉봉이 고맙다. 음료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모든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신상 음료를 찾아 캠퍼스에 종종 출몰할 마시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