뗀석기, 간석기를 쓰던 인류가 최신 IoT 가전제품을 쓰기까지. 가전제품의 변천사를 준비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특별히 주방가전 편이다. 집밥의 퀄리티를 높이고,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주방가전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자.

세상 참 좋아졌다. 어렸을 적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신기한 일들이 집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밥솥이 말을 하고 냉장고 문에서 얼음물이 나오는 것쯤은 익숙해졌고, 냉장고가 음식 레시피를 읊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최신 가전제품들의 화려한 기능을 살펴보다 보니 문득 궁금함이 생긴다. 하이테크 가전제품이 등장하기까지, 과거의 모습은 어땠을까?

냉장고의 변천사 : 석빙고부터 최신 하이테크 냉장고까지
가전 중에서도 필수 가전으로 손꼽히는 냉장고부터 다뤄본다. 냉장고의 주된 역할은 식재료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냉동실에 보관하면 작년 추석에 빚은 만두도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냉장고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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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 위치한 신라 시대 석빙고

신라 시대는 석빙고, 조선 시대는 동빙고, 서빙고 등에 얼음을 보관해 궁중의 부엌에서 요긴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얼음을 관리하는 관직이 따로 있을 정도로 얼음이 귀했다. 때문에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겨울이 아니면 얼음을 구경할 수 없었다.

‘귀하신 몸’ 얼음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1834년부터다. 1834년 인공얼음을 만드는 압축기가, 1862년엔 최초의 공업용 냉장고가 개발됐다. 얼음을 사람이 만들 수 있게 된 후부턴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 식재료를 보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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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미국 GE사의 냉장고 지면 광고

그러다 1911년 미국의 GE(General Electric)에서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를 개발했다. 정식 판매는 1915년부터 시작했지만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 연간 40대 생산에 그쳤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 후 드디어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금처럼 프레온가스를 냉매로 사용했다. 오늘날의 냉장고와 비슷한 모양이 된 건 193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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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 금성사의 GR-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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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G전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냉장고를 출시한 건 1965년, 제조사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였다. 모델명은 GR-120, 제품명은 눈(雪)표 냉장고. 1도어로 냉장실과 냉동실이 일체형이었고 저장용량은 120L였다. 당시 출시 가격은 8만 6000원으로,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화폐가치환산’ 기능을 이용해 2017년 화폐가치로 환산한 결과 약 320만 원에 달한다. 외제 냉장고와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600가구에 한 대꼴로 소유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양문형 냉장고, 삼성의 지펠

<출처 : 삼성전자>
양문형 냉장고의 등장은 센세이션했다. 냉동실은 위, 냉장실은 아래라는 편견을 깨고 왼편은 냉동실, 오른편은 냉장실로 나뉘어 재료를 꺼내고 넣는 게 편해졌다. 특히 늘 부족했던 냉동실의 수납공간이 훨씬 넓어졌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가정용 양문형 냉장고를 처음 출시했지만 세계 시장에서 양문형 냉장고가 태어난 건 무려 1960년대라고. 최근엔 윗칸은 자주 사용하는 냉장실, 아래칸은 좌우 분리하여 냉장부터 냉동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4도어 냉장고가 많이 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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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냉장고는 첫 번째로 용량은 작지만 예쁜 냉장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매끈한 스틸 바디에 큰 용량, 터치 스크린, 얼음 정수기까지 딸린 최첨단 냉장고다. 보관할 식재료가 적은 1인 가구 등은 전자를, 4인 가구 이상은 후자를 선호한다.

김치냉장고의 변화 : 장독의 화려한 주방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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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설명해놓고 왜 또 김치냉장고를 또 설명하느냐고? 김치냉장고의 히스토리가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기 때문이다. 신혼집엔 없을 수 있지만, 친정이나 시댁엔 꼭 있는 김치냉장고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냉장고다. 김치는 맛있게 담그는 것만큼 맛있게 익는 게 포인트다. 김치냉장고는 궁극의 김치맛을 보존하기 위해서 태어난 제품이다. 옛날에는 정성스레 담근 김치를 장독 안에 차곡차곡 쌓아 넣은 후에 뒷마당에 파묻었다. 이후 마당이 없는 아파트가 유행하면서 김치냉장고가 필요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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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채의 첫 김치냉장고 CFR-052E. 하지만, 이건 최초의 김치냉장고가 아니다.
김치냉장고 이야기가 재밌는 것 중 하나는 김치냉장고를 이만큼 성장하게 한 회사가 삼성이나 LG가 아닌 대유위니아의 딤채 브랜드라는 것. 처음 출시할 1995년 당시엔 그야말로 생소했다. 그럼 최초의 김치냉장고가 딤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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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의 시초는 1984년이다. 당시 대우전자와 금성에서 각각 김치냉장고를 출시했다. 하지만 1984년은 일반 냉장고도 가정마다 보급되지 않은 때라 김치전용의 소형 냉장고는 수요가 없어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 왼쪽이 일반적인 뚜껑형, 오른쪽이 스탠드 (멀티형)

김치냉장고는 뚜껑형으로 태어났지만, 최근엔 스탠드형도 많이 팔리고 있다. 뚜껑형은 냉기가 잘 빠져나가지 않아서 김치맛은 잘 보존되지만, 김치를 꺼냈다 넣었다 하는 방식이 불편하다. 반면 스탠드형은 냉장고와 비슷하게 생겨서 김치 등 식재료를 넣고 빼기가 쉽다. 그래서 김치 말고도 이것저것 보관하기 편하다.

또 김치 외의 식재료도 보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스탠드형이 멀티형이라는 이름으로 더 발전하고 있다. 멀티형은 칸칸마다 각각 냉장, 냉동 온도를 조절할 수 있고, 신선식품 저장 기능 등 일반 냉장고에 버금가는 편의성을 자랑한다. 요즘 젋은 부부들은 김치 저장량이 많지 않아서 일반 냉장고에 김치 저장칸이 딸린 모델을 구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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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의 변화 : 코끼리 밥솥에서 쿠쿠까지

한국인은 역시 밥심이다. 우리의 주식인 밥의 질은 매우 중요하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무쇠로 된 가마솥에서 지은 밥이 일반적이었다. 가마솥 밥은 맛이 좋지만 불을 피우는 것도 일이고 크고 무거운 가마솥 본체를 다루는 것 자체도 일이었다.

주방가전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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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의 명맥을 이은 건 압력솥이었다. 가볍고 적당한 사이즈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기 딱 좋았다. 압력솥은 이름처럼 압력을 높게 유지해 밥을 맛있게 지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풍년밥솥이 제일 유명하다. 하지만 ‘보온’ 기능을 따지면 전기밥솥을 이길만한 게 없다. 지금이야 전기밥솥에서 바로 뜨끈한 밥을 떠서 먹을 수 있지만, 전기밥솥이 있기 전엔 밥때를 놓치면 찬밥 먹기가 일쑤였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장롱 속 두꺼운 솜이불이나 아랫목에 밥공기를 넣어두던 추억도 있다.

▲ 금성사의 초기 전기밥솥 

<출처: 6080 추억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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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코끼리 표 밥솥으로 불리던 조지루시 밥솥

우리나라는 1965년 금성사에서 전기밥솥을 처음 출시했다. 하지만 밥맛을 영 제대로 내지 못한 탓에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1980년대쯤 되니 엄마들도 일터에 나가는 경우가 늘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식사시간을 맞추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보온 기능을 포함한 전기밥솥의 필요성이 커졌다.

때마침 밥맛이 좋은 일본의 코끼리 표 밥솥이 등장해 폭풍 같은 인기를 끌었다. 일본을 다녀온 여행자들이 모두 밥솥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오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정부에서 단속하기도 했다. 지금은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나라의 밥솥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니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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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설적인 멘트의 탄생.jpg

<출처 : 쿠쿠홈시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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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과 비슷한 전기압력밥솥은 1990년대 후반 쿠쿠홈시스의 전신인 성광전자에서 제품 출시를 주도했다. 인덕션 히터(IH) 방식과 압력솥 방식을 합친 전기압력밥솥은 밥맛이 뛰어나 곧바로 인기를 끌었다. 밥솥은 가열방식에 따라 열판식과 IH 방식으로 나뉘는데 바닥을 가열하는 열판식보다 내솥 전체에 코일을 설치해 골고루 가열하는 IH 방식이 훨씬 밥맛이 좋다.

내솥의 재질도 유행 따라 바뀌어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그 이후엔 황동을 거쳐 금까지 쓰였다. 특허청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밥솥 분야의 특허 및 실용신안 출원이 1,289건이었다고. 이후 밥솥에는 각종 기능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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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분이면 밥이 지어지는 쾌속 취사, 쌀을 미리 넣어놓고 다음 날 아침 갓 지은 밥을 먹을 수 있는 예약 취사 등은 현대인에게 꼭 맞는 기능들이다. 거기다 밥솥은 이제 밥만 하지 않는다. 갈비찜, 삼계탕 등 보양식 요리는 물론 각종 찜 요리, 식혜, 심지어 제빵까지 할 수 있다.

▲ 왼쪽 쿠쿠홈시스 CRP-JHT0610FS, 오른쪽 쿠첸 CJH-PH1000RCW
한때 밥솥 = 쿠쿠라고 할 정도로 쿠쿠의 강세가 대단했는데, 최근 쿠첸도 많이 성장해 현재는 쿠쿠와 쿠첸의 2파전으로 정리됐다. 쿠쿠는 30년 전통의 강호답게 압력을 잘 제어하고 현미나 잡곡도 부드럽게 취사한다.

쿠첸은 최근 적외선을 사용한 IR 방식을 새로 적용해 내솥에 일정한 열을 전달하는 기능을 개발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김치냉장고 명가 딤채에서도 딤채쿡이라는 전기밥솥을 출시했는데 김장독 속 김치 맛을 재현한 것처럼 가마솥 밥맛을 잘 재현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오븐·전자레인지의 변화 : 화덕의 축소판, 편리함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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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자는 오븐과 전자레인지다. 우리나라는 오븐보단 전자레인지가 더 친근하지만 서양 요리는 오븐에서 시작해 오븐으로 끝나는 레시피가 많다.

오븐은 조리법이 간편하고 음식의 맛도 좋지만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자레인지는 조리 시간이 짧은 대신 음식에 수분이 증발해 맛이 조금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빵을 주식으로 먹거나 하진 않기 때문에 오븐보다는 전자레인지의 수요가 컸는데 최근엔 전자레인지 기능을 가진 오븐을 구매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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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븐의 기원은 가마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무에서 숯으로, 숯에서 연탄으로 연료만 업그레이드하다가 드디어 가스 오븐이 탄생했다. 하지만 덩치가 너무 커 가정용으론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스레인지와 하나로 합쳐진 가스오븐레인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의 SK매직(전 동양매직)이 1986년에 최초로 가스오븐레인지를 생산했다. 그 후 등장한 것이 전기 오븐이다. 전기 오븐은 전자레인지 정도의 크기로 온도 조절이 쉬워 집에서 사용하기 딱 좋았다. 다만 전열 기구라는 것이 모두 그렇듯 전기요금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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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전자레인지

<출처 : 삼성전자>
또 우리나라의 요리에선 전자레인지가 더 유용했다. 전자레인지는 1978년 그러니까 가스오븐레인지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 삼성전자가 개발해 내놓았는데 당시 39만 4,000원이라는 너무 비싼 가격 탓에 국내에서는 수요가 없어 수출에 주력했다고. 참고로 1978년 39만 4,000원은 2017년 10월 기준 약 280만 원의 가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전자레인지의 가격이 낮아져서 널리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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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 오븐 복합 전자레인지의 원조. 1983년 제조된 금성사의 ER-610HB

<출처 :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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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스팀오븐, 그릴, 전자레인지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광파오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처럼 모두 다 가능한 오븐 복합 전자레인지가 처음 출시된 건 1983년이라고. 당시 금성사가 오븐과 전자레인지가 합쳐진 제품을 선보였다고 하니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가 보다.

▲ LG전자 디오스 인버터 광파오븐

요즘은 1인 가구가 늘면서 아주 작은 사이즈의 미니 오븐들도 인기다. 그 밖에도 튀김이 가능한 프라이어 오븐, 커피 로스팅 기능이 들어간 특수한 오븐도 등장했다.

이렇게 한번 훑어보고 나니 우리가 참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다. 내일은 이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좀 더 힘내서 맛있는 아침을 만들어볼까. 어디 보자,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요즘 냉장고는 문을 안 열어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볼 수 있다던데, 냉장고부터 바꿔볼까…

기획, 편집 /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사진 / 염아영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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