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스냐 암바사냐 그것이 문제로다
밀크소다 TMI 대공개!

“세상에는 왜 나눠야 할까 싶은 것들이 있다
내게는 밀키스와 암바사가 그랬다”

어릴 적 나의 가장 큰 문제. 그것은 밀키스와 암바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머리카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캔의 색깔만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밀키스와 암바사는 생긴 것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하다.

홍콩영화 광팬인 아빠는 주윤발이 나온 음료를 사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두 음료 어디에도 주윤발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설마 크리미였나?” 결국 중립국 크리미를 사 갔다. 탕! 결과는 실패. 문제는 한두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의 어릴 적 슈퍼마켓 셔틀은 늘 이런 식이었다.​


탄산음료에
누가 먼저 우유를 뿌렸나?

밀키스냐 암바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왜 사이다에 우유를 섞을 생각을 했냐”라는 것이다. 우유는 탄산음료에 잘못 섞으면 보글보글한 모양으로 굳어버려 보기가 흉해 지기 마련이니까.

일본 미야자키 현에서 낙농조합을 이끌던 ‘키노시타 토시오’도 그랬다. 그는 갯바위 낚시를 갔다가 아이스박스에 준비한 음료를 모두 쏟아버렸다. 그중 우유와 사이다가 있었다. 음료와 사이다의 괴상한 퓨전을 보면서 키노시타는 생각했다. ‘만약에 우유가 탄산음료가 된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그렇다. 우유탄산은 사실 “사이다에 우유를 섞을 생각”이 아니라 “우유에 사이다를 섞을 생각”인 것이다. 그는 우유가 탄산에서 굳어버리는 현상을 해결하고 1971년에 한 음료를 만든다. 최초의 우유탄산 음료 ‘스콜(Skal)’이다. 인공감미료를 쓰지 않는 우유탄산으로 45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암바사의 탄생
일본을 넘어 한국으로

그렇다. 우유탄산은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1974년 스콜에 이어 칼피스가 탄산을 추가한 ‘칼피스 소다(カルピス ソーダ)’를 출시하면서 우유탄산의 시대가 열렸다. 남부에서는 스콜, 전국에서는 칼피스 소다. 이에 코카콜라는 이들을 견제할 음료를 내놓는다. 1982년 만들어진 ‘암바사(Ambasa, アンバサ)’다.

(스콜, 칼피스소다, 암바사(구), 암바사(현))

​암바사가 일본 코카콜라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칼피스 소다의 인지도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암바사는 일본에서 코카콜라 자판기에서도 보기가 힘든 음료로 전락했다. 1984년 코카콜라는 지구에 가카로트(손오공)를 보내는 버독의 심정으로 암바사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낸다. 부디 그곳에서는 일등 음료가 되기를.

하지만 한국은 보리탄산 음료의 시대였다. 그들에게 우유와 탄산의 조합은 어색하기 마련이었다(보리는!). 그럼에도 암바사는 꿋꿋이 자리를 넓혀갔다.1987년 맥콜, 보리텐, 보리보리가 전성기를 찍을 무렵 ‘암바사’는 독특한 탄산음료를 원하는 사람들의 힙한 음료가 되었다. 물론 밀키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밀키스의 탄생
맛이 중요하지 않아 주윤발이 중요하지

1989년 5월 롯데칠성에서 밀키스가 탄생한다. 맛과 형태를 보면 암바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밀키스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홍콩영화 최고의 스타 ‘주윤발’이 광고모델로 출연한다는 것이다. 80년대는 홍콩영화의 최전성기였고 그 중심에 주윤발이 있었다. 광고에서는 주윤발이 (왜 쫓기는지 모르겠지만) 헬리콥터에 쫓겨 밀키스를 마신다. 그리고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대사를 남긴다.​

(왼쪽 주윤발, 오른쪽 왕조현)

최초의 외국인 스타를 광고에 도입한 ‘밀키스’는 화려하게 등장한다. 출시 7개월 만에 180만 상자를 판매한다. 롯데가 하면 해태도 한다. 해태음료에서는 ‘크리미’를 낸다. 롯데가 주윤발이라면 해태는 왕조현이다. 그렇게 너도 나도 홍콩스타를 광고모델을 세웠고, 음료회사는 우유탄산을 냈다. 암바사는… 아 암바사.


암바사 난 너를 꺾고
러시아로 간다

음료계의 삼두정치라고 해야 할까? 맥콜, 보리텐, 보리보리의 3파전은 암바사, 밀키스, 크리미의 구도로 변한다. 1988년 유일한 우유탄산음료인 암바사의 판매량이 3백 10만 상자였다면, 1990년에는 암바사, 밀키스, 크리미를 모두 합쳐 1천 9백만 상자로 시장이 커졌다. 탈지분유를 구하지 못해 암바사 생산이 멈출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당시 청량음료의 집권기는 3년 정도다. 우유탄산은 90년대 초 왕관을 비락식혜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사이 밀키스는 발빠르게 다음 스텝을 밟았다. 바로 해외진출. 1992년에는 대만, 1993년에는 러시아, 1994년에는 중국에 밀키스를 수출한다.

(아이돌 그룹 같은 러시아 밀키스)

​<한국인도 모르는 한류 음료수>에서 밝혔지만, 러시아에 보낸 밀키스가 대박을 터트린다. 현재까지 무려 4억캔이 넘는 밀키스가 팔린 것. 그동안 한국은 하얀색 밀키스를 고집했지만 러시아에서는 현지인들의 취향에 맞춘 여러 버전의 밀키스를 내놓기도 했다. 본토인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10종류가 넘는 밀키스가 탄생하고, 역으로 한국에 조금씩 공개가 되고 있다.


밀키스와 암바사, 유행에서 문화로

밀키스와 암바사. 단순히 누가 누구를 따라 한 것이다라고 말하기에는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보낸 음료다. 현재 우유탄산음료의 80%를 차지한 밀키스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진출을 계속 도전하는 중이다. 오랜 세월을 투닥거리며 지낸 암바사도 나름의 마니아적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초기 복각판의 암바사가 판매되며 ‘우유의 맛’이 아닌 ‘그리운 맛’ 암바사로 판매가 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밀키스와 암바사가 나온지 30년 가까이 지났다. 여전히 우리는 편의점에서 밀키스와 암바사를 만난다. 그럴 때마다’밀키스냐 암바사냐’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신기한 음료가 유행을 넘어 오랫동안 인간에게 이런 난제를 주다니. 앞으로도 더욱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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