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홀로 걷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며, 인사를 나누러 가는 것이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가 누굴 만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지인이 해외에서 음료수를 사 왔을 때다. 일본에서 막 돌아온 토모다치는 새로운 음료수를 흔들며 말한다.

국립국악원

“여, 아나타와 혼모노 신상털이. 마시즈므 데스까?”

코카콜라에서 나온 
피치, 복숭아 맛!

나는 반경 5km의 지구를 살고 있다. 또한 나에게 지구촌 여행이란 편의점 맥주 코너와 넷플릭스를 도는 시간이다. 마시기도 바쁜 삶 걸어서 무엇하리.

하지만 친구가 해외여행을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그 나라의 음료수를 사달라고 부탁한다. 나의 세계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음료를 맛 볼 기회니까. 때마침 친구 인스타그램에 오사카성이 올라왔길래 급히 연락을 했다. 보고 싶다 친구야 (누구세요?)

나는 용건을 말했다. 사실 횡설수설한 것 같기도 했지만 #코카콜라 #피치 #음료수 라는 키워드는 제대로 전달했다. 일본에서 막 나왔다는 코카콜라 피치 맛을 마시즘이 놓칠 수 없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마시러 간다.

그런데 딱 봐도
코카콜라 피치는 아니군

이로하스
(그러나 돌아온 것)

친구의 손에서 나온 것은 생수병이었다. 이것이 코카콜라 피치 맛이 아니라는 사실은 외관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체 말을 어떻게 알아듣고 이걸 사온 거지?

이 생수의 정체는 이로하스(I LOHAS) 모모(복숭아)다. 뭐 ‘피치’가 복숭아인 줄은 알아들었냐며 병을 돌렸는데 제조사가 ‘코카콜라’. 맙소사 심지어 이건 그냥 물이 아니라 ‘음료수’다. 다 알아듣긴 했었구나 하핫(;;)

아무리 생각해도 물 먹은 기분. 눈치도 없는 친구는 신나서 말한다. 이거 정말 맛있다고. 원래 3병을 샀는데 맛있어서 다 마셨다는 것이다. 바보. 물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나는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복숭아 향내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하스 모모
진짜 복숭아물이 나타났다

이로하스
(하지만 너무나 맛있는 것)

사실 복숭아 맛이 나는 음료는 한국에도 있다. 대표적으론 내가 좋아하는 ‘2% 부족할 때’. 하지만 이로하스 모모 앞에서는 20%는 더 부족하다고 이름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마신 거였지? 맛의 해상도가 다르다. 그간 복숭아 물이 텔레비전의 2D였다면, 이로하스는 3D, 아이맥스의 해상도로 복숭아 맛을 구현한다. 마치 복숭아를 깨물었을 때 나오는 즙의 느낌이랄까?

이로하스는 일본의 ‘삼다수’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가장 대중적이고 많은 사랑을 받는 생수의 비결은 지역 특산물. 과일의 왕국 야마나시현에서 만든 복숭아의 향을 담은 ‘이로하스 모모’는 마시는 순간 삭막한 사무실을 과수원으로 바꿔준다. 나… 나는 틀린 것 같아 이거 너무 맛있다.

일본에 가야 할 운명인가
고민하게 되는 맛

하지만 나는 단점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일본에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 어디 보자. 일단 칼로리가 105나 되는구나. 생수치고 너무 높다. 에이~ 밥 한 끼 굶으면 괜찮겠네. 그리고… 그리고… 만족하기에 물의 양이 적다. 그러니까 더 사야지. 고로 나는 일본에 가야만 한다.

나는 친구에게 이로하스를 어디에서 구했냐고 물었다. 물론 일본 마트, 편의점, 자판기 어디에도 이 녀석을 판다는 것을 안다. 친구는 말했다. 한국 올리브영에서 샀다고…응?

그렇다. 그는 일본에서 이로하스를 다 마시고 한국의 올리브영에서 같은 녀석을 샀다. 가격은 3,000원이다. 비싸다. 단점을 하나 더 찾았다. 하지만 뭐 어때 비행기 값보다 싸니까.

나는 나의 일본, 올리브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쓰미마셍. 이로하스 아리마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