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박. 당신 때문에 내가 마시는 커피 양이 줄었다. 가을남자가 되려면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멋 좀 내보려고 믹스커피 대신 커피메이커를 샀는데. 모닝커피를 만들기 위해 두근두근 했던 시간도 잠깐이었다.

커피박. 당신 때문이다. 아참. 커피박은 커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이름이다. 아휴 버리기 귀찮아.


한 잔의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커피박이 희생되는가

커피박.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면 무려 16g의 커피박이 태어난다. ‘에이~’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설명하자면 커피 원두의 99.8%가 커피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마셨으면 점심에 마셔야 하고, 내가 마셨으면 옆 사람도 마셔야 하는 것이 커피다.

이렇게 지난해 약 12만 4천 톤의 커피박이 나왔다.커피가 되지 못한 커피박. 한국에서는 당신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아 미안, 생활폐기물이라고 하자.

이 땅에 넘쳐나는 커피박들은 대부분 매립이나 소각되고 있다. 취준생은 취업의 꿈으로, 직장인은 퇴사의 꿈으로 살아가지만. 커피박에게는 꿈과 희망도 없는 불꽃 길이 예정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마시즘이 준비했다. 커피 찌꺼기의 재탄생. 커피박의 인생 2막의 길을.


커피박 귀농이 어울린다
퇴비 재활용

커피박. 당신이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귀농이다. 한국에서 커피찌꺼기가 재활용되었다면 대부분은 퇴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커피박이 들어간 퇴비는 악취도 적고, 해충을 억제한다. 그렇다. 당신은 농사천재인 것이다. 다행히도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등의 대형 프랜차이즈 출신 커피박들이 퇴비가 되고 있다.

커피박 덕분에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커피박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해라
화장품 변신

커피박. 방금 퇴비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화장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은 미용에도 소질이 있다.

커피박에는 15% 정도의 오일이 들어있다. 마른오징어에 물 짜듯 오일을 짜내면 각종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이니스프리에서는 커피박을 이용한 커피 업사이클링 화장품을 만들었다. 커피박으로 바디워시, 젤리 마스크, 버블바디스크럽, 립스크럽은 뭔지 모르겠지만. 커피박. 당신은 한 번 더 해냈다.


커피박 커피를 돌봐주자
커피박 컵/텀블러

커피박. 당신이 태어난 곳은 카페다. 커피가 되지 못했다면, 커피잔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독일의 디자이너 율리안 레히너도 같은 생각을 했다. 독일의 디자이너 율리안 레히너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천연접착제와 친환경 목재를 커피찌꺼기와 섞어서 커피잔을 만들어냈다. 카페폼(Kaffeeform)에서 만든 커피잔에서는 커피를 담지 않아도 커피 향이 나서 인기를 얻었다. 요즘에는 텀블러도 나왔다지. 커피박. 당신은 커피와 함께 있을 때 더 어울린다.


커피박 테이블이 되어보자
커피박 인테리어

커피박. 커피잔도 될 수 있는데 테이블이 되지 않으란 법은 없다. 스타벅스 광화문점에 가면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이 있다.

트리라는 회사에서 만든 이 녀석은 무려 5,000잔 분량의 커피찌꺼기가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커피박 조명, 커피박 보드도 나왔다. 커피박으로 만든 가구는 유해물질이 거의 없고, 가격은 원목의 절반 수준이다. 커피박.

땅을 살 돈만 있다면 당신으로 집을 지어도 좋겠다. 물론 나에게 그런 돈은 없지만.


커피박 버스를 운전해라
커피박 연료

커피박. 물론 많은 커피박들이 재취업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각되고 있다. 심지어 커피박은 잘 타기까지 한다.

일반 목재나 볏짚의 탄소함량이 0.47이라면 커피박은 0.51이다. 기왕 불꽃 길을 걸을 거라면 우리 생활의 연료가 되는 것이 어떨까?

영국이나 스위스에서는 커피박을 연료로 사용한다. 1차로 디젤 기름을 뽑고, 2차로 증류해서 바이오에탄올을 만든다, 3차로 팰릿 연료까지 만드니 석유재벌이 부럽지 않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에서는 커피박 연료를 탄소배출 제로에너지로 구분한다. 탄소가 나오긴 하지만 커피나무일 때 흡수하는 탄소를 인정한 것이다.

런던에서는 올해부터 이곳의 명물이 2층 버스를 커피박 연료로 운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의 에너지 스타트업 바이오빈(Bio-bean)은 1년에 6,000L의 커피박 연료를 만들어 런던 버스에 공급한다. 커피박. 베스트 드라이버.


우리는
더 많은 커피박을 만나고 싶다

커피박.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마시는 커피에 얼마나 많은 커피박이 나오는지. 커피박을 처리하는 카페에서도 당신의 가치를 알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행히 최근 국정감사에서 ‘커피박’ 당신의 이름을 불렸다. 그동안 당신이 쓰레기로 분류되어 수집, 운송, 처리과정들에 문제들을 이야기 했다.

커피박. 이제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사용할 곳이 어딘지를 고민할 것이다. 보다 많은 커피박들을 세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힘내라 커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