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년 간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서점에서 우연히 <그 남자는 왜 동유럽에 살고 있을까?> 책을 보고, 진짜 동유럽 이민이 가능할까 싶었다. 읽고 나니 가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한국 현지 법인 취업이 주된 내용이다 보니 ‘우리와는 안 맞겠구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여행을 떠나 동유럽에 도착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가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작가님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셨을 뿐 아니라 현지에서도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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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섭(44세)
– 가족: 배우자, 아들
– 거주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슬로바키아 이민 13년 차
– CDS KOREA s.r.o 대표
– <그 남자는 왜 동유럽에 살고 있을까> 저자
– 동유럽 한인잡지 발행인

TimeLine
1998년 대학 졸업
2001년 결혼
2002년 첫 이민 목표지였던 아일랜드로 떠남
2003년 이민 실패. 1년 9개월 만에 한국으로 일시 귀국
2004년 슬로바키아로 다시 떠남
2004년 ~ 2013년 한국 기업 현지 법인에서 근무
2013년 ~ 사업체 설립, 슬로바키아 거주 중


블라티슬라바 올드타운

서른한 살에 동유럽 이민을 떠난 남자

첫 이민 시도는 2002년 아일랜드였다. 아내를 한국에 두고 혼자 떠난 사전 답사 여행에서 어렵사리 TGIF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처갓집엔 ‘취직이 됐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남긴 채 아내와 아일랜드로 향했다. 그러나 이민자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지내고 있는 숙소를 활용해 차린 한인 민박집은 그 시절 아일랜드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 많지 않아 운영이 어려웠고, 다른 일을 찾기에는 언어 문제에 부딪혔다. 생활에 필요한 영어는 가능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취업 비자를 얻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손엔 500만 원만 남아 있었다.

현실은 막막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다행히 처갓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장인, 장모와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월 80만 원 받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다시 떠날 날 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한국 생활 9개월이 됐을 무렵 ‘슬로바키아에 기아 자동차 공장이 들어선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2004년 봄, 오로지 그 정보 만으로 슬로바키아행을 결심했다. 이렇게 무모한 사람이라니! 취업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그는 한국 대사관도, 한 명의 지인도 없는 슬로바키아로 훌쩍 떠났다.

브라티슬라바 올드타운

-이민을 결심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민을 가겠다’는 거창한 다짐은 아니고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30여 년을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예요. 한국은 모국(母國), 유럽은 자국(自國)인 거죠.

어렸을 때 ‘먼 나라 이웃 나라’나 배낭여행 책을 좋아했어요. 해외 펜팔도 많이 했고요.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미국 애들과 기초적인 영어로 펜팔 했던 게 용기를 줬어요. 영어를 잘 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거부감이 없었던 거죠. 군 제대 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고요.

-아일랜드로 첫 이민 준비를 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요?
“(TGIF 아르바이트) 월급이 1200유로니까 1200유로짜리 월세를 구하면 공짜로 사는 거 아니냐”라고 했죠. ‘일하면서 버는 돈으로 생활하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아내는 “걱정은 되지만 해보자”라고 했고요.

-아일랜드 이민 실패 후 슬로바키아로 이민을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과 경쟁해서는 힘들어요. 한국사람들이 안 가는 곳에 가야 했죠. 그 당시 슬로바키아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고, 아직 발전을 하지 않아서 왠지 정이 갔어요. 한국 기업들이 막 진출해서 뭔가 어수선하다는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유럽은 사회의 틀이 다 갖춰져서 제가 들어갈 틈이 없어요. 세금도 많이 내고 급여도 짠 것 같아요. 동유럽엔 한국 기업이 많아서 한국인 ‘메리트’가 있어요. 몇 년 전부터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현지인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요.

-이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슬로바키아에 막 도착해서 취업을 준비하던 7개월이 가장 힘들었어요. 많이 불안했죠. 그 당시는 집에서 인터넷 안 되잖아요. 매일 PC방 가서 답장을 기다렸어요. 취업이 안되면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요.

최동섭씨는 취미로 테니스를 10년째 치고 있다.

낯선 땅 동유럽, 그의 자국 슬로바키아

2004년 봄, 그는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에 도착했다. 정해놓은 숙소가 없었기에 유스호스텔, 호텔 등 닥치는 대로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인터넷도 잘 안되던 그 시절, 그가 찾은 숙소들은 이미 만실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강가에 앉아 가방을 움켜쥐고 있던 그는 마침 지나가던 일본인 할아버지를 다짜고짜 붙잡고 도움을 부탁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간 일본에서 신문 배달 장학생으로 일하며 익힌 일본어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당시 슬로바키아에서 일하던 일본 아저씨는 이틀 동안 그를 자신의 집에 묵게 해줬다. 우연찮게도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서울에서 태어난 분이었다.

이후에도 그의 무모한 행보는 계속됐다. 기아 공장이 세워지는 질리나(Žilina) 기차역에 도착한 그는 지나가던 현지인에게 또 한 번 말을 걸었다. “방을 구하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을까요?” 다행히 그 청년 또한 남는 방이 있었고, 월 200유로를 내고 그 집에 머무르게 됐다.

한국을 떠나기 전엔 현지에 가면 일이 생길 줄 알았다. 한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질리나 거리를 무작정 배회하기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결국 그는 이력서를 들고 한국 기업을 찾아갔다. 정말 운이 좋게도 때 마침 한국인 직원이 필요했던 삼성전자 생산법인은 그를 채용했다. 당시 “일 좀 하게 해주세요.”라는 그의 말에 “일을 하겠다고 찾아왔으니, 어디 우리 한 번 해봅시다.”라고 답한 인사 담당자의 말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슬로바키아 영주권(영구체류허가)을 얻으려면 5년을 버텨야 했다. 주재원과 현지 직원 사이의 경계에 있던 그는 입사와 동시에 5년 후의 독립을 결심하며 이 곳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시간이 흘러 원하던 영주권을 얻었고, 5년을 훌쩍 넘겨 9년이 되던 2013년 직장인의 굴레를 내려놓게 되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당시 자신을 믿어준 회사와 주재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최동섭씨의 동유럽 이민 경험기를 담은 책 ⓒ최동섭

-이민을 한국 회사 현지채용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요?
시작은 그게 좋아요. 그게 아니라면 자영업 혹은 현지회사 취업인데 만만치 않아요. “한국에서 직장 생활 싫어서 왔는데 또 해야 하냐”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영주권을 얻기 위한)중간 과정이고, 필요한 기간이에요. 영주권(장기체류허가)이 있어야 신분이 자유로워지고 자영업을 하거나, 현지회사에 취업을 할 때 법적인 문제가 없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현지 유럽회사에 바로 취업을 해서 오거나, 소자본 창업을 통해서 정착하는 사람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아일랜드와 슬로바키아를 예를 들면 취업에 필요한 건 두 가지예요. 영어와 자신만의 기술. 명문대 인문학과를 졸업한 사람보다, 지방의 기술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의 조건이 더욱 유리할 거예요.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마세요. 미국이든 유럽이든 두드리면 열릴 수 있어요. 그런데 두드리지 않으면 100% 안 열리겠죠.

-영주권을 얻은 후 회사 생활을 하기 싫다면 어떤 길이 있을까요?
한국 회사는 집, 휴대폰, 차를 지원해줘요. 슬로바키아 회사에 취직하면 급여도 낮아지고 이런 지원이 없어지죠. 슬로바키아 회사에 간다면 내가 1인 기업인이 되어 사업 파트너로 일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사장에게 ‘내가 한국 회사 영업을 하겠다’고 제안하는 거죠. 혹은 그동안 지켜봐 왔던 아이템으로 장사를 해도 괜찮죠.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계시는 동안 여성 취업자들도 많이 만나셨나요?
아무래도 제조업이다 보니 남성에 비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성 취업자들도 분명 존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을 더욱 우대하는 포지션도 있어요.

-아이들이 적응하기에는 어떤가요?
동양인에 대한 시선은 서유럽이 덜 할 거예요. 거긴 이미 다문화 가정이 많잖아요. 동유럽에선 신기해서 쳐다볼 수 있죠. 특히 아이들은요. 그리고 어른과 달리 친절하지 않잖아요.

부모가 현지어를 할 줄 알면 현지학교에 보내도 괜찮아요. 저희 애가 어렸을 때 현지 유치원을 보냈는데 선생님과 말도 안 통해서 힘들었어요. 또 아이들끼리도 다 말이 통하는데 우리 애만 말이 안 통하잖아요.

그래서 국제학교를 보냈는데 모두 영어를 못하니까 하루 만에 친구를 사귀어 오더라고요. 여기 국제학교엔 슬로바키아 애들이 더 많아요. 찾아보면 현지학교와 국제학교 중간 급의 (국제)학교가 있어요. 어느 나라나 그런 선택권이 있을 거예요. 1년에 500만 ~ 800만 원 정도 들고요.

브라티슬라바 올드타운

이민 13년 차, 그저 거주지만 옮겼을 뿐

그는 현재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한국과 유럽, 터키 기업의 거래를 이어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 <코리안 라이프 >를 온/오프라인으로 발행하고, 유럽 이민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자 역할도 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안정적으로 이민에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는 이민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브라티슬라바’라는 곳에 거주지가 하나 더 생긴 것뿐이라고. 한국 음식도 똑같이 먹을 수 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어 한국과 동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한국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정착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시도했던 도전은 자신이 가진 무엇 하나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큰 모험이자, 두려움일 것이다.

어떤 시도나 도전 없이 정보만 찾는다고 해서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한국을 떠났을 때 보다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도전한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현지에 가보라고 하고 싶어요. 답사라고 생각하면 돼요. 괜찮으면 정착하고 아니면 돌아가면 돼요. 가족들과 공항에서 눈물의 이별하던 시대는 지났어요. 한국 사고방식으로는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좋아요. ‘어렵겠지. 근데 될 수도 있잖아’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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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 기본정보
o 수도 : 브라티슬라바(42.9만 명)
o 인구 : 549만 명
o 면적 : 49,035㎢(한반도의 1/4)
o 민족 : 슬로바키아인(86%), 헝가리인(11%), 집시(2%), 기타(1%)
o 종교 : 가톨릭(69%), 개신교(8%), 그리스정교(4%), 무교 또는 기타(18%)
o 언어 : 슬로바키아어
o 화폐 : 유로
출처: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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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시민권 정보
o 임시체류 허가 : 사업, 근로, 학업 등 목적일 경우 신청 가능
o 영구체류 허가 : 5년 이상 임시체류 허가를 얻으면 신청 가능
o 시민권 : 영구체류 허가를 얻고 8년 후 신청 가능

– 교민 정보
o 한국기업 :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등 90여 개
o 한국인 : 임시체류 허가증 소지자 1590명(2015년 12월)
출처 : 주 슬로바키아 한국 대사관

– 참고 사이트
o 슬로바키아 한인회
o 아일랜드, 슬로바키아 이민 정보 카페


글쓴이의 한 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 7월 18일부터 1년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유럽→남미→북미→오세아니아→아시아) 이민 1~10년차 분 중에 저희 인터뷰 콘셉트에 적합한 분을 알고 계시다면 추천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누르면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