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이 가진 가능성”

어느 부동산 중개소의 온라인 사이트에 이런 제목으로 매물이 하나 나왔어요. 이 건물을 담당하는 직원 曰, “골조만 있는 150㎡ (약 45평) 공간에 30㎡ (약 9평)의 발코니가 붙어 있고, 화장실과 욕실도 텅 비어 있어요.” 그러면서 ‘집이란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덧붙였죠. 주택이란 게 내용물만 보면 크게 차이가 나는 상품도 아니니 차라리 뼈대만 있는 집을 사서 마음대로 수리해 거주하라는 의미의 광고였어요.

좋은 브랜드는 필요해 1 - 도쿄 R 부동산

심상치 않아! 부동산 광고 맞어?

사실 부동산을 찾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맞지 않는 광고에요. 왜냐고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집을 자산의 형태로 보기 때문이죠. 집을 구입해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이 지상과제 아니겠어요? 따라서 ‘뛰어난 입지와 편리한 주변 환경, 우수한 구조 설계’ 등이 집을 구입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되죠.

그러나 이 부동산 중개소는 심상치 않아요. 위에서 언급했던 광고는 약과에요. 다른 광고 한 번 보고 가실게요 :

  • 최고의 옥탑방 : 8층 건물 옥상 한가운데 약 10㎡ (약 3평) 남짓한 원룸입니다. 방은 작지만 한껏 기지개를 켜고 싶게 만드는 개방감 가득한 옥상을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누려보세요.
  • 푸르름에 둘러싸여 : 이곳은 계절별로 누리는 녹음과 그 사이로 스며든 햇빛, 그림자가 늘 방안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 일품이에요. 매일 푸르름에 둘러싸여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세요.
좋은 브랜드는 필요해 1 - 도쿄 R 부동산

개취 존중! 이런 부동산 또 없습니다?!

이밖에도 부동산 매물이 있는 동네는 어떤 동네인지, 어떤 가게들이 있고 공원이나 산책길은 어떤지, 베란다 조망과 창밖 야경은 어떤지 등 매물이 가진 이야기를 찾아 매력적인 사진과 감각적인 글로 소개하죠. 한마디로 ‘사람들의 취향과 개성을 생각해 각자 기호에 맞는 매물을 제안한다’ 이 말씀! 물론 동시에 설비가 낡아 개조가 필요하다는 등의 단점도 빠짐없이 설명하는 솔직함! 일본의 부동산업체 ‘도쿄 R 부동산’ 의 이야기에요.

부동산 찾다 열받아 차렸다?

도쿄 R 부동산은 2003년 설립된 온라인 기반의 부동산 중개 거래소에요. 공동 설립자이자 건축가이기도 한 바바 마사타카氏 는 설계사무소 창업을 준비하면서 살짝 고쳐서 쓸 정도의 빈 건물을 찾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소와 자신이 생각하는 ‘괜찮은 빈 건물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후 그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빈 건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견해를 달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블로그를 통해 빈 건물을 빌릴 수 있냐는 사람들의 의뢰가 많아지자 부동산 개발자인 요시자토 히로야, 경영 컨설턴터인 히로시 아쓰미 氏와 함께 도쿄 R 부동산을 설립했죠.

이들은 처음 설립 당시 도쿄 니혼바시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오래된 매물을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니혼바시 지역은 과거 에도시대부터 도쿄의 중심지로 각종 화장 도구나 장신구, 의류품 등을 판매하는 도매상이 1500여곳 이상 밀집된 상업지구였죠. 하지만 일본의 버블경제 몰락 이후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장기침체로 인해 도매상으로 운영되던 창고형의 빈 건물이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었어요. 더군다나 도쿄의 중심인 긴자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철 노선이 지나가는 곳에 있어 교통편이 매우 좋았지만 오래된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도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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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구입하지 않아도 괜찮아!

도쿄 R 부동산은 다른 관점으로 빈 건물을 제안하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부동산 중개소의 본질이란 : 좋은 매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매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관계 기반의 비즈니스여야 한다고 인식했죠. 또한 공간을 새롭게 꾸미고 만들며 지속적으로 가꿔 나가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즐거움이므로 당장 임대하거나 구입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주거방식,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어요.

부동산이 미디어(media)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이들의 생각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커요! 왜냐하면 이들은 매물 하나하나를 독립된 브랜드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건물 내외부의 ‘굿 디자인’ 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건물을 브랜드의 개념에 대입시켜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본거죠. 자신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전하는 통로로 매물을 활용했고, 도쿄 R 부동산이라는 중개소는 이를 널리 알리는 미디어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라고 본 셈이죠.

수익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야!!

사실 브랜드는 멋진 심벌이나 로고 마크, 최신의 트렌드가 가미된 상품만으로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파타고니아 (Patagonia)의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이에요. 도쿄 R 부동산은 일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초월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조직의 비전으로 삼고 있어요.

이런 비전이 있기에 도시 안에서 불거진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빈 건물’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기획과 설계, 리노베이션, 건물 관리 등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의 역할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죠. 게다가 2015년부터는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R 부동산’도 운영하면서 일본의 사회적 문제 속에서 올바른 건축의 모습과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도 만들었어요.

좋은 브랜드는 필요해 1 - 도쿄 R 부동산

팔지 말고 고객이 사게끔 하라!

도쿄 R 부동산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브랜드 가치는 무엇일까요? 바로 부동산 물건을 ‘매물(賣物)’로 보지 않고 ‘매물(買物)’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에요. 즉 ‘자신이 파는 물건’으로 인식하지 않고 ‘고객이 사는 물건’으로 인식하면서 고객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물건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소비자와 대화하다 보면 무심코 장점이나 혜택만을 소개하게 돼요. 장점만을 구체적으로 반복해 전달하다 보면 듣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작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물건이 다른 물건과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돼요. 그러나 도쿄 R 부동산은 부동산 중개소의 입장에 서는 대신 소비자와 깊이 있는 상호작용을 통해 ‘사는 사람’이 해당 물건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조금 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어요.

토키 曰, 우리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까?

최근 국내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은 얼마나 고가의 집을 살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집을 효율적으로 구입 또는 공유할 수 있는지로 점차 변모해가고 있어요. 이는 집이라는 개념이 돈이나 규모와 같은 정량적 문제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여기에 더해 도시의 과밀화와 인터넷 플랫폼의 등장 같은 사회적 이슈도 부동산의 개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머지않아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부동산 편집매장이 생기길 한 번 희망해봐요.

[퇴그닝 5분 교양 시리즈 – 좋은 브랜드는 필요해]
퇴근 후 5분, 당신의 교양이 업데이트 되는 시간. 퇴그닝 5분 교양 시리즈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할애해 다양한 분야에서 지혜를 쌓아보자는 취지로 시작해요. 사실, 교양(敎養, liberal art)이란 말의 뜻을 살펴보면 자유로운 (Liberal) 사고를 위해 폭 넓은 지식과 기술(art) 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우리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양’을 함께 쌓을 수 있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