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통영의 맛이 오를대로 올랐다. 겨울 통영은 다 맛있다. 겨울 뿐이랴 통영은 사철 맛있다. 그런데 겨울 통영은 유독 맛있다. 전라도가 고향이지만 더이상 전라도 어디를 가도 통영만큼 맛있는 곳을 찾지 못한다. 특히 해산물 요리는 더더욱 그렇다.

국립국악원
통영

그 광대하던 새만금 갯벌이 영암 갯벌이 간척으로 사라진 뒤 전라도의 맛은 소멸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 맛의 고장을 자처하는 도시들이 더러 있지만 순전히 자의적 판단으로는 해산물 음식에 관한한 통영은 대한민국 원톱이다. 하물며 김치도 나물도 다 맛있다.

10여년전 나그네는 <통영은 맛있다>(생각을 담는 집)는 책을 냈었다. 그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순전히 궁금증 때문이었다. “경상도 음식은 짜장면도 맛없더라”는 편견덩어리였던 나그네에게 통영의 맛은 이해 불가였다. 대체 맛없는 음식이 없다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통영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통영 관련 책을 펼쳐봐도 한결같은 대답은 통영을 다스리던 통제사가 종2품의 고관이었고 그들이 궁궐의 음식문화를 가져와 통영 음식이 맛있다는 것이었다.

통영

그 영향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납득 할 수 없었다. 그럼 궁궐이 있던 서울 음식이 맛있는 게 있나? 그렇다면 종2품의 관찰사가 근무하던 다른 지역 음식이 다 맛있어야지. 그런데 과거에도 동급의 관리가 다스리던 전라도와 통영만 유독 맛있지 않았던가! 그걸로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며 책을 써버렸다. 순전히 궁금해서. 그래서 내린 결론. 통영이 맛있는 이유는 과거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통영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통영은 500여 척의 전함과 3만여 명의 수군이 주둔하던 조선 최대의 군사도시였다. 사람들은 통영이 본래부터 경상도인 줄 알지만 오랜 세월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었다. 1602년, “여우와 토끼가 뛰노는” 한미(寒微)한 포구였던 경상도 고성현 두룡포에 신도시 공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곳이 삼도수군통제영, 곧 통영이다.

경상도 땅에 건설됐지만 통영의 수령인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도 관찰사와 동급인 종2품이었고, 통제영이 폐지된 1895년까지 독자적으로 통영과 전라, 경상, 충청 3도의 수군 주둔지들을 다스렸다. 통영은 3도에서 온 군사들과 군수품 제작을 위해 8도 각지에서 뽑혀온 12공방의 장인들,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이 모여 이룬 융합도시였다.

통영

이들이 경상도와는 별도로 3백여 년 동안이나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다. 지금처럼 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바다가 고속도로였으니 통영은 길이 불편한 경상도 내륙보다는 수로를 통해 경상도 해안지방이나 전라, 충청 등 타 지역들과 더 적극적인 문물교류를 했다.

맛이란 물산이 풍부할 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배를 채우기에도 급급한 곳이라면 맛 같은 거 따질 여력이 없다. 척박한 지역일수록 음식이 맛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풍요로워야 맛이 개선될 여지가 생기는 법이다. 도미같은 생선도 맨날 구워먹기만 하면 질린다. 그래서 배를 가르고 소고기와 야채를 다져 넣은 뒤 배를 꿰매고 쩌낸 다음 삼색 지단을 올려 도미찜을 만들어 먹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풍요가 음식문화를 발전시킨다.

과거 통영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조선 최대의 군사도시였던 통영은 어느 지역보다 물산이 풍부했다. 정조 때는 통영에 화폐를 제작하던 주전소까지 있을 정도였다. 통영에 엄청난 부가 집중됐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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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음식문화가 발달한 것은 인근에 김제만경 평야라는 큰 들녘과 풍요로운 갯벌이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통영 음식문화의 발전 또한 조선 최대 군사도시 통영의 물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해로교통이 활발했던 과거에 수군사령부인 통영으로 각지의 물산과 문화가 자유롭고 활발하게 유입될 수 있었던 것도 원인이었다.

넘치는 부와 풍부한 식재료와 여러 지방의 음식문화가 하나로 융합되어 통영의 음식문화가 발전했던 것이다. 이것이 통영이 경상도 타 지역과는 차원이 다른 뛰어난 음식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아무튼 통영은 맛있다. 통영의 겨울은 그 맛이 절정이다. 겨울 통영에 꼭 가야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