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닥 특별하진 않던데 뭐가 좋은겨?”

국립국악원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놈들과의 단톡방에 이번 여행에 다녀온 밥집 중 몇군데를 올렸더니 다른 친구에게 이런 말이 되돌아왔다. 나는 시장이 반찬이라며, 마침 아침에 올레길을 잠시 걷고 있던 사진을 올렸다. 세상에 어느 음식이든, 한 세시간 걸어보렴 맛이 없나. 그러나 농은 농이고, 내가 밥집들을 추천한 것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필요하다. 뭐든 굶고 배곯으면 맛있을 것이건만, 왜 나는 친구들에게, 한끼에 8,9천원 하는 밥집을 꼭 가보라고 했을까.

 제주도는 의외로 백반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곳곳의 수많은 밥집들이 저마다 알찬 한상 차림으로 수십팀의 대기손님을 줄세우며 성업중이다. 제주도까지 가서 갈치, 전복솥밥, 흑돼지를 먹지 않고 왜 백반이나 먹겠나 싶지만은,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한정식이 음식 장르의 한 카테고리이듯, 백반이나 정식도 음식 카테고리의 하나로 당당히 올라있다. 백반은 백반 나름의 맛과 멋, 그리고 장점이 있다. 한국인의 식탁에 “반찬”이 빠질 수 없기 때문. 그러니까 이 백반이란, 거창한 메인디쉬가 아니라 익숙하고 친숙한 메인반찬과 밑반찬 예닐곱개를 흰 쌀밥과 함께 맛보는 고유의 맛이라는 것.

 그럼 왜 제주도에서 백반을 먹어야 하느냐? 하면, 제주도는 본질적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축수산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3차 산업은 적고 4차 산업 중에서도 관광업이 주류가 되고 있는, 그로 인하여 먹을 것은 많으나 노동생산성은 높지 못한 곳이다. 이런 조건이니 힘든 농수산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 백반집들이 많고, 그러한 식당들에서는 저렴하고 푸짐하게 한상 차림을 해서 손님들을 맞는다. 시대가 변하여 제주를 찾는 사람은 부쩍 늘었으나 본래 이 섬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밥집들이다. 줄 서서 먹는 갈치집이나 전복, 흑돼지 집에 갈 이유도 여유도 없는 것이다.

 재미난 것은 그렇게 수십년을 장사해 온 집들이 비싼 물가와 낯선 음식들에 지친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어 집밥 같은 한상차림을 식탁에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고, 만원 내외의 가격으로 돼지고기와 생선구이를 함께 맛볼 수 있는 백반집들이, 도시에서와는 반대로 줄어들기보단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

 다만 이번에 방문한 일곱군데의 식당이 모두 여행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곤밥2에 방문한 친구는, 자기에겐 특별하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 말인즉슨 모처럼의 휴가로 제주도에 와서까지 제육볶음에 생선구이를 먹는 것이 그리 유별난 식도락은 아니라는 것이고, 그 말은 실제로 타당하다. 제주에 왔으면 갈치, 전복, 고기국수와 흑돼지를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그런 식당들에서 더는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그러했고 그래서, 이번에 방문한 일곱군데를 정리하기로 한다. 찐맛집도 있고 애매한 집도 있고, 별로인 집도 있었다.

애월, 녹색식당  

백반
백반
백반

 애월의 녹색식당은 제주도에 집을 마련한 곽도원씨가 애정하는 단골집이었다가, 최근에 청소년 트로트가수 정동원과 박민호의 여행 프로에 소개되었다. 도민맛집으로 원래부터 그 전에도 인기가 대단했다고. 우리는 11시 오픈시간 20분 전에 갔는데도 1시간 20분을 기다렸다가 먹었다. 하루에 단 2시간 반 정도 영업을 하는데 실제로는 11시 반까진 가야 대기열에 등록을 할 수 있다. 그 시간을 넘기면 그날 식사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

 반찬 일곱가지와 계란찜에 냉국, 그리고 제육과 옥돔구이가 이 집의 단일메뉴다. 그런데 반찬 하나하나 맛깔지고 정성이 가득담겨, 메인반찬인 제육볶음과 옥돔구이보다는 이들 반찬으로 배가 부르다. 작년까진 이 구색을 갖추고 1인분에 8천원을 받았었다 하니, 제주도 백반의 정수를 보여주는 집 중 하나다.

 다만 가게 운영 자체는 상업화되어있지 않아 주방은 여성 한분이 홀로, 홀은 사장님과 따님만이 일을 하고 계셔서 서빙이나 테이블 정리가 꽤 늦는 편. 그래서 대기를 하면서 자리가 언제 나나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빈자리가 났음에도 손님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 군소리들을 밖에서 늘어놓게 된다. 애초에 소규모 밥집으로 시작한 영업방침에서 발생한 이런 불편함을 불친절함으로 받아들이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고, 정 마음에 안들면 다른 곳을 가도 된다. 여기만큼 맛난 밥집도 당연히 있고, 테이블링 등 대기의 편의를 마련한 곳도 있다.  

백반

 우리는 아이와 셋이 먼저 한번, 그리고 뒤에 초대드린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다섯이서 또 한번 방문했다. 두번째 가니 반찬 몇가지가 바뀌어있었다. 그 역시 입맛을 당기는 해파리냉채, 가지볶음, 비엔나소시지 볶음 같은 반찬들. 나는 생선껍질 조림을 갈 때마다 리필해 먹었다.

 제주도에 가면 여러 밥집에서 이 옥돔구이를 내어놓는데 메뉴판엔 거개가 옥돔이라고 적어놓지만 실상은 중국산 옥두어다. 제주에서는 옥돔을 대체한 이 옥두어를 정말 많이 먹는다. 남획과 수요 증가로 제주 사람조차 옥돔을 먹기 어려워졌지만 대신 옥두어를 구해서 보다 저렴한 값에 내니, 옥돔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특색으로 즐길만하다. 이들 옥돔은 보통은 꾸덕하게 말린 놈을 바싹 튀겨서 작은 가시뼈들까지 씹어먹을 수 있게 한다. 살이 탄탄하고 담백한 맛에, 뼈를 씹어먹으면 느껴지는 고소한 감칠맛.

백반

다섯이 갔을 때 리필을 했다. 제발 쬐끔만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한 국자 가득 주심.

 생선은 추가지만 제육볶음은 공짜로 리필이 된다. 제주밥집들이 보통 그렇다. 제육볶음은 두툼하게 앞다리살을 쓰는데, 일곱군데 식당 중 제육볶음이 가장 만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옥돔이나 생선의 맛은 대동소이다하다. 제주도에서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하며 양질의 생선들을 내는 것은 다들 비슷하고, 또한 그것을 갖고 구워내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육은 양념이나 재료 손질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녹색식당의 제육이 다른 곳보다 맛있는 것은 비계가 넉넉히 들어간 두툼한 생고기이기 때문인데, 이 차이는 다른 곳과 먹어보며 비교를 해봐야 알듯하다.

 백반집에서 내는 이 제육볶음들은 구색맞추기와 필수코스의 중간 어중간한 자리에 있다. 넣어봐야 대단치 않고, 없으면 허전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제육볶음에 힘을 주어봐야 어차피 저렴한 돼지부위를 써야 하는 딜레마는 모두 같다. 국산 삼겹살을 내는 미친짓을 할 백반집은 없고, 그럼 외국산 돼지고기와 국내산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서 위태위태하게 가게의 수지타산이 결정된다. 녹색식당의 제육볶음은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도 맛이 뛰어나다. 앞다릿살일까?

 녹색식당을 다른 집들과 비교해볼 때, 위치는 애월에서 중산간까지 올라가야 하는 위치상의 불리함, 11시 내외로 도착하지 않으면 아예 그날은 먹지 못하는 높은 난이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이번에 방문해본 다른 밥집들과 비교해, 가장 만족도는 높았는데 그것은 실내가 넓고 쾌적하며, 사장님이 유쾌하고 친절했고, 밥 반찬 제육 생선 모두 나무랄데 없이 훌륭해, 어려움을 뚫고라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 때문이다.

 게다가, 녹색식당만 밥을 자율적으로 퍼갈 수 있다. 백반집에서 밥까지 무한정 퍼주면 그에 비례해 반찬도 마구 퍼먹게 되므로 공깃밥 추가에 요금이 있었는데 녹색은 아예 밥통이 홀 한 쪽에 자리한다.

백반

제주시, 곤밥2

백반
백반

“뭐야 이거. PPL은 절대 아니겠다. 이거 방송 봤어?”

“응 본 거 같아.”

 우리는 26번이라는 황당한 대기순번을 받아, 마트와 카페를 들러 두시간이나 보낸 뒤에 겨우 곤밥2에 입장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대기시간. 그런데 자리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니 POP 아트로 저런 재미난 팻말이 붙어있다.

“보통…방송에서 하는 PPL이면 저렇게 POP로 안만들고…방송소개 맛집이라고 꾸며주는 업체가 있어서, 거기서 얼마를 요구하고 홍보부착물을 보내준다는데…”

“진짜 저건 PPL이면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애.”

 기대감을 상승시키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아내가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맛집, 이긴한데, PPL이 아니라 진짜로 연예인이 찜콩한 맛집인 데다가, 그 집 사장님은 또 이걸 감동받으셨다고 스스로 POP 홍보물까지 붙이셨다니. 참하고 순박한 시골 밥집스럽다.

백반
백반

 정식은 9천원.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사장님은 큼지막한 쟁반에 부침개들을 해서는 홀에 난 찬장으로 옮긴다. 다른 사장님께서는 빠르게 반찬들을 하나하나 접시에 담는다. 반찬은 여섯, 미역국, 제육, 옥돔 1인당 1.5마리.

 옥돔은 다른 밥집과 마찬가지로 바싹 구워서 가시도 씹어먹을만하다. 그리고 미역국이 상당히 맛있다. 먼저 미역국을 다 비운 아내가 추가로 한그릇 청할만큼. 부침개는 먹어보니 야채전과 참치전인데, 9천원 백반에서 제육에 생선이면 됐지 이런 대접까지 받아야 하나? 싶을 정도의 정성이다. 그리고 녹색식당이나 다른 밥집관 다르게 젓갈을 조금 내어주시는데, 사장님께 여쭤보니 갈치젓갈이다. 야, 이거 정말 제주도 밥상 느낌 물씬.

 다만 천원의 가격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녹색식당과 비교해 계란찜이 없고 제육도 비계보단 살코기가 많다. 게다가 너무 얇다. 옥돔은 녹색식당에 비해 0.5마리를 더 내어주시는 것은 큰 메리트지만, 제육이 조금 맛이 덜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제육의 아쉬움은 갈치젓갈로 만회! 나는 부침개와 갈치젓갈, 그리고 가지볶음은 두번이나 리필해서 먹으며 밥을 싹싹 비웠다. 가지볶음만 세접시를 먹느라 제육은 반절이나 남겼다.

 원래 백반이라는 게, 제육이 나오기 전에 이미 반찬 한두개는 비우고 그걸 리필하고, 그래서 제육이나 생선구이가 나왔을 땐 이미 밥이 반 가까이 줄어있으면, 그건 이미 엄청난 맛집이다. 그런데 곤밥2가 딱 그렇게 손이 간다. 그래서 어느덧 정신을 차렸을 땐 배가 불러있고 밥과 고기도 남아있게 마련. 나는 아쉬워하며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재미난 점은,

백반
백반

 나는 줄서서 먹는 맛집은 반드시 공짜 커피머신이 있어야 진짜 좋은 식당이라고 생각하는데, 곤밥2는 커피머신에 더하여 무려, 아이스, 커피, 달달구리가, 담긴, 통이, 있다. 후덜덜.

 정리하자면, 옥돔구이를 여기보다 저렴하게 제육과 제공하는 곳은 이번 여행에서 가보지 못했다. 찾아보면 있겠지만, 그렇다고 1.5마리씩 줄 것 같진 않다. 시장에서는 옥돔(사실은 옥두어)를 한 마리에 2천원 내외로 파는데, 도매가를 감안하더라도 9천원 내고 먹는 밥상에 처억 하고 천원 이상 하는 생선구이를 서비스해줄 요량은, 잘 생기지 않지. 이미 반찬으로 배부른데, 옥돔까지 추가로 2인당 1마리가 나와, 그거 먹느라 또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는 집. 곤밥2에서 먹고 나왔을 땐 제육의 아쉬운 점 빼곤 여기가 최고의 밥집으로 느껴졌었다.

조천, 백리향

백반
백반

 여기는 사실 우리 마음속의 넘버원 같은 집인데 녹색식당이나 곤밥2에 비해 현저히 유명세가 떨어진다. 아무 때나 가도 웨이팅을 오래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는 인원이 많아 상은 빨리 치워지고, 서빙도 빠르고, 반찬은 셀프여서 알아서 원하는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 반찬이 셀프라는 점에서 메리트가 무척 큰 집.

 고등어정식은 8천원, 갈치정식은 만5천원이다. 제주도에 갈치구이집들이 많다. 여행객들은 둘이서 6,7만원짜리 통갈치구이를 먹고 간다. 우리도 몇번 그런 식당에 가보았으나 글쎄. 애초에 내 관점에선 갈치구이가 그 돈 내고 먹을 메뉴는 아니긴 한데, 그런데 여기, 백리향은 만5천원에, 지난 여름과 가격변동이 없다. 두번 방문해 한번은 갈치구이만 2인분, 이번엔 고등어와 갈치구이 1인분씩을 각각 시켰다. 주문을 하고, 반찬을 떠서 자리에 앉아 한두점 반찬을 먹고 있으면 어느새 제육과 생선구이가 나온다.

백반

 갈치는 전문점만은 못해도 씨알이 나쁘지 않다. 녹색식당이나 곤밥2에서 단일메뉴로 판매하는 정식에 비해, 고등어와 옥돔, 갈치 셋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은 큰 메리트. 그리고 제육도 수준급이다. 다만 이번에는 카페를 다니느라 물배가 찾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기를 안고 먹느라 힘이 들어서일까. 제육과 생선구이는 거의 다 먹어가는데 이 반찬들을 거의 먹지 못했다. 배가 불러서 말이다. 도토리묵 킬러라서 어지간한 셀프반찬 매장에 가면 도토리묵을 반모 이상은 먹고오는데…아쉽다.

 우리에게 백리향이 마음속의 넘버원인 이유는 처음 제주에서 찾은 백반정식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이서 3만원의 갈치구이 정식을 먹고 갈치와 제육의 퀄리티에 매우 큰 만족을 느꼈다. 제주도에서의 식도락 여행에 새로운 눈이 트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초반에, 녹색식당이나 곤밥2에 비해 먼저 선택을 하게 되었고 세 집중에 제일 먼저 방문을 했다. 굳이 시간과 여행 동선을 낭비해가며 곤밥2나 녹색식당을 도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백리향은 언제 방문해서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곳. 아마 제주에 찾아보면 이런 밥집이 꽤나 많을 것이다. 우리가 다음에 제주도 여행을 올 땐, 또 다른 밥집들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백반의 성지라는 제주도에 대한 나의 인상이, 더욱 뚜렷한 실체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소한 이번 방문에서의 사연이 한가지 생겼는데, 백리향은 노포다. 회장실이 건물 밖에 따로 있는데 그 사이 마당이 시멘트가 두어겹 대강 발라져있다. 아내가 꽈당했는데 내가 근처 약국에 걸어다녀오는 사이 젊은 직원께서 재빠르게, 반창고를 주셨다는 사실.

 정리. 백리향은 다른 식당에 비해 옥돔과 갈치라는 선택지가 있다. 그리고 반찬이 자율배식으로 셀프. 곤밥이나 녹색식당과 비교해서 기준점 삼기 좋은 곳. 갈치나 고등어 나무랄데 없고 제육은 녹색보다 아래, 곤밥보다 위다.  

백반
백반

이 글은 백반의 성지 제주도 밥집 열전(하)로 이어집니다.

원문: 공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