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과 외지인

국립국악원

 아무리 제주도 한달살이, 반달살이, 한해살이가 인기를 끌어도 누구에게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나 역시 아이를 갖고 비교적 최근이 되어서 한달 살이에 가까운 여행일정을 겨우 잡아본 것이지, 제주도든 다른 어디든 길어야 3일이 고작인 휴가 일정을 주로 잡아왔다. 여행을 나 혼자 가는 일이 흔하지도 않고, 같이 갈 친구들과 3일 이상의 일정을 맞추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려운 일.

 그래서 제주도에 3일 정도 간다고 하면,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다. 비행기값을 넉넉히 치러 아침에 간다고 치면, 첫 끼는 고기국수, 점심엔 바다를 보며 제주도 느낌이 나는 퓨전식, 저녁은 흑돼지. 둘째날 아침은 우진해장국, 다시 점심엔 연돈 등의 맛집을 노릴 것이고, 그럼 밸런스를 맞춰야 하니 저녁은 전복솥밥이나 갈치구이 등, 해물이 포함된 제주도 특선 음식, 마지막 날은 해장국이나 갈치국 등등. 이것이 관광객, 외지인들이 제주도를 한정된 시간 안에 즐길 수 있는 식도락의 범위다. 제주도가 아무리 백반과 정식의 성지라고 해도, 2박 3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 고작 1인분에 9천원 만원 하는 “밥집”을 추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가본 일곱군데 백밥집을 둘로 나누어 쓰기로 구상을 해놓고, 어떻게 나눌까 생각을 해보곤, 로컬 느낌의 식당과 외지인들도 방문해볼만한 식당으로 나누었다. 주관적인 인상에 따라, 진짜 제줏사람이 먹던 제주밥상의 형태가 남아있는 밥집들을 상편에, 외지인들도 한끼 정도, 관광 코스 중에 넣을 수 있는 밥집으로 구분했다. 그러다 보니, 웨이팅이 강제되는 좁고 붐비는 밥집보단 다소 느긋하게 방문할 수 있는 집들이라거나, 맛 이외의 관광 목적에 부합하는지 등이 고려되었다. 인스타그램 밸류 역시.

세화, 재연식당

백반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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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화의 재연식당의 경우, 반찬은 멸치볶음 말고는 내게 인상깊진 않았다. 여섯가지 기본찬 중 단순한 김치와 깻잎절임이라는 발효음식이 둘, 무 생채와 시금치무침으로 나물류가 둘, 그리고 샐러드와 멸치볶음. 백반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반찬에 품이 많이 들어가는 집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백반집으로서의 가치가 곤밥2나 녹색식당, 백리향에 비하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집들이 수십팀이 웨이팅을 할 정도로 사기에 가까운 가성비인 것이고, 제주도에서 맛볼 수 있는 일반적인 백반으로 이정도면 훌륭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멸치볶음은 또 굉장히 맛있어서 계속 리필해서 먹었다.

 재연식당이 외지인을 만족시키는 가장 큰 것은 세화해변에 바로 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화5일장도 붙어있다. 그리고 올레길도. 즉, 관광코스에 면해있는 식당으로서 부담없는 한끼식사로서의 손색이 없다. 실제로 우리는 작년 겨울에 처음으로 제주도 한살살이를 왔을 때 세화5일장을 보고 올레길을 한시간 가량 걸었다. 그 과정에서 세화해변 저 멀리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도 보고, 근처 카페도 몇군데 들렀다. 세화해변에도 괜찮은 카페, 밥집들이 제법 있는 편. 이 인근에 맛집들이 좀 된다. 그 유명한 명진전복도 있고, 레이식당이나 얼랑핀칙 하도리같은 유니크한 식당도. 그러나, 가격이나 취향을 고려하면서, 제주도 갈치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은 큰 메리트. 갈치와 옥돔 정식이 각각 만5천원, 고등어가 나오는 기본정식은 8천원.

 다른 밥집들과 차별되는 재연식당의 또 하나의 장점은 아마도 수입산일 테지만 여기가 유일하게 삼겹살 제육이다. 다른 곳들은 다릿살을 쓰는데 말이지. 이런 점도 로컬의 “밥집”보단, 관광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산이라고 해도 삼겹살이 뒷다릿살보단 훨씬 비싸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재연식당은 옥돔이나 고등어로 만족하지 못하는, 갈치 정도는 나와야 제주도에 온 보람이 있다! 하는 관광객들에게 상당한 만족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상 편의 밥집들에 비하면 반찬의 꾸밈새가 덜한 단점이 있지만, 반찬보다 메인 요리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이 부분은 취향 차이. 그것을 제외하면 8천원 고등어 백반, 만5천원 옥돔과 갈치정식에, 김치찌개와 같은 메뉴의 선택지까지. 그리고 주문도 타블렛으로 할 수 있고 실내가 넓고 쾌적하여, 불편하게 웨이팅을 감내할 필요도 없다. 다른 밥집을 가보고 와 제육볶음이다! 하고 집었다가 어? 다릿살이야? 하고 실망을 할 분들이라면, 재연식당처럼 제육을 삼겹살로 내는 곳이 보다 나은 선택지이기도. 애초에, 비싼 돈 주고 외식하는데 다릿살이 웬말인가.

한경, 금자매식당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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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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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면의 금자매식당은 일단 가게의 위치나 내외관부터가 딱 관광객을 타게팅한 집이다. 서빙을 하는 분들은 모지와 마스크, 앞치마를 통일해서 착용하고 카트를 끌고 좋은 식기에 음식을 서빙한다. 그리고 기본 메뉴가 만7천원짜리 곤드레솥밥. 그러나, 메뉴의 배치를 보다시피 만9천원의 세가지 해물 솥밥이 메인 요리일 것이고, 곤드레 솥밥 아래 고급 메뉴라인이 있다. 공통으로 고등어가 딸려 나오고 제육은 당연히 없다.

 금자매식당의 경우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갈 곳으로 원래 확정된 곳이었다. 우리가 가서 만족스럽게 먹은 편이고, 어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식사였기 때문. 그러나 어째서인지 내가 사용하는 카카오맵에서는 평점 비공개 상태가 되어 있다. 나나 아내의 평가와는 다른 평이 좀 쌓였었나본데, 그것을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예단은 무리다. 다만, 금자매의 경우 밥집 치곤 비싼 것은 사실. 그러나, 우리가 처가 어른들을 모시고 가려고 했을만큼 값을 치르고 괜찮은 식사를 할 곳으론 적당하다. 다시 말하면 맛집 관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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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식당의 차림새가 별로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정식도 최소 2만5천원에서 시작하는 보통 시세를 생각하면 이정도면 돌솥밥 프리미엄을 끼고 만9천원은 타협할 수 있는 가격대라고 생각하고 식사를 했다. 반찬들이 전반적으로 밥보단 낫고 한정식보단 아래 수준. 그런데 저 김이 꽤 괜찮다. 그리고 계란장조림의 경우, 나주식육식당이 맛집이라는 확신을 더해준다. 그런 가운데 두부부침은 1회에 한정하여 무료리필이 가능하고 다른 반찬은 부담없이 리필했다.

 지도 앱에서 평점 가리기가 되어있는데도 손님이 제법 차는 것은, 값이 비싸다거나 서비스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이슈가 있더라도 결국 맛에서 납득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 금자매식당은 결론적으로 솥밥이 굉장히 맛있었다. 솥밥전문점이니 당연히 메인요리로서 가격 대비 만족할 퀄리티가 나와야할 텐데 그 값은 한다. 한정식도 아닌 구성에서 가격이 비싼 편인데 이 가격에 맛이 없으면 사람들이 웨이팅을 해가면서 먹진 않았을듯. 그런데 밥에서 눌은 내음이 솔솔 나는 것이, 밥을 그냥 떠먹어도 맛있었고 상 위의 마아가린 큐브를 넣어 비벼먹어도 괜찮다.

 정리하자면, 금자매식당의 경우 관광객 식당으로서 1인당 평균 객단가가 2만원 내외로 책정되어 있고, 그것을 굳이 감추지 않는 접객, 입지, 디스플레이다. 제주도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유명식당들의 객단가가 이보다 낮진 않을 터이고, 상편에서 소개한 밥집의 가격이 1만원 내외이니 그 두배의 가격이라고 생각할 때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지금 유명 흑돼지 전문점의 가격이 한근에 6만원 중반대에 책정된 상태. 흑돼지의 객단가를 3만원으로 잡는다면 해물솥밥 2만원 내외라면 관광객 맛집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외도, 하루밥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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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 가는 관광객들이 가족단위도 있고, 혼밥족도 있다. 특히나 여성 혼자서 여행을 가는 경우도 정말 많다. 우리가 가본 일곱군데 밥집 가운데 하루밥과 단소 두곳은 여성들이 혼밥을 하기에도, 함께 같이 가기에도 좋은 곳으로 평가해서 함께 외지인 맛집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루밥은 찐 로컬맛집으로서 우리가 비오는 토요일 주말 아점 시간에 방문했을 땐 까까머리를 한 학생체육부원들이 우르르 모여 밥을 먹고 있었고, 홀의 거의 모든 손님들은 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손님이고, 그 와중에 하루밥의 도시락이 지연민들에게 인기라, 도시락 주문도 계속 들어오고 있엇다.

 찐 로컬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외지인인 우리가 방문해 발견한 하루밥의 메리트는 밥집의 분주함과 좁고 불편함이 아닌 정갈하고 깔끔한, 가성비 좋은 한상 차림에 메인메뉴의 확실한 특색이다. 닭개장과 제육을 주문해서 먹었고, 닭개장은 향신료가 좀 들어갓나 싶을 정도로 칼칼하고 진한 맛, 그리고 제육은 그냥 제육이 그렇다 싶은 맛이긴 하지만, 아이를 돌보느라 맛 평가가 냉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긴 하다. 어쨌든. 이 메뉴가 거의 다 만원 내외. 김밥천국이나 중국집, 고기국수나 해장국…등등의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지만 글쎄, 여성 여행자들의 정갈한 한끼 식사에 대한 욕구를 제주에서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돈을 아끼면서는 말이지.

 반찬의 갯수는 적은 편이지만 시래기 나물, 매우 만족스러웠고 햄부침은 반갑다. 아내는 오이무침을 먹으며 이거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말을 했는데, 아마 우리 엄마가 조만간에 해주시겠지. 새까만 피부에 까까머리를 한 남자아이들이 저마다 한끼 밥을 하면서, 동시에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외출복 차림을 한 여성들이 셀카봉을 테이블 위에 걸쳐두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식사를 하며 조금 웃음이 났다. 그리고 위치도 외도로 신제주 바깥이다. 제주공항에서 렌트를 하든,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하든 간에 제주 여행의 첫끼니로도 퍽 좋은 위치.

애월, 단소

백반
백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관점에서 애월의 단소는 맛집이 아니다. 상당히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고 찜찜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오픈런을 하려다가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애매해져, 첫 홀 손님이 꽉 차고 그 다다음 순번을 받았는데, 우리가 들어가면서 구경한 다른 식탁들의 제육볶음의 색깔이, 우리가 받은 제육볶음의 색과 확 달랐다. 우리가 받은 제육은 허여멀건하니…아무리 봐도 식욕이 당기는 색이 아니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다른 상을 또 자연스레 구경을 하니, 다른 상들의 제육은 진한 붉은색, 바로 제육볶음의 그 색깔에 깨소금도 착 뿌려져 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나는 아내에게, 우리 제육볶음에 깨소금이 뿌려져있더냐고 물었고 아내는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나중에야 사진을 보고 확인을 했다. 안뿌려져있었구만.

 즉 단소의 메인메뉴인 흑돼지 제육볶음의 레시피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 첫번째 준비한 분량이 다 나가고 새로 볶았는데, 미쳐 기름이 배어나고 양념이 졸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에게 서빙된 것이다. 그래서 조리가 덜 된 흑돼지두루치기를 먹었고,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고 그 사실을 즉각 알아낼 수 있었다. 흐음…그런데, 지도 앱에서 여기도 평점을 비공개처리한 상태. 결론적으로 나의 식사경험은 후기 미제공 사실까지 결합되어서 매우 좋지 못하게 끝났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아내는 홀홀 맛나게 식사를 마쳤다. 그러니, 나의 경험은 경험으로 남기고 객관적으로 평을 하자면,

 단소는 상차림과 인테리어에서 큰 강점이 있다. 제주에서, 흑돼지 두루치기를, 엔티크 스텐리스 밥상에, 예쁜 식기들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만7천원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것. 흔히 말하는 ‘핫플’의 요건을 두루 부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제육의 불쾌한 기분을 제외하면, 우리가 운이 없었을 뿐 다른 대부분의 제육볶음, 아니 흑돼지두루치기는 멀쩡히 조리되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흑돼지 두루치기에 전복장조림까지 해서 모든 메뉴가 리필 가능한 만7천원의 식사는, 확실히, 가성비가 괜찮다. 그래서 여기가 우리 제주도의 사실상 첫 아점이었다. 도착한 날 저녁은 아무 흑돼지집이나 찾아가는 심정으로 가까운 괜찮은 식당을 골라갔을 뿐이었으니까.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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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단소의 인테리어는 명확하게 젊은 관광객들을 타게팅하고 있다. 그리고 주차장도 나름 예닐곱대는 수용할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차를 갖고 방문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금자매의 만9천원 식사와 비교했을 때, 명확한 관광객 타겟의 인테리어, 접객, 구성은 특별히 꼬집을 문제점을 발견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내가 굳이 내 취향에 따라 곤밥2나 녹색식당을 더 좋게 평가하고 그 식당을 또 먼저 써서 그렇지, 사람들에게 일곱가지 식당을 제시하고 그 중에 세군데만 가보라고 하면, 과연 ‘제한된’ 조건에서 오늘 평가를 남기고 있는 이 식당들이 빠질까? 하면, 그렇지도 않을 거란 이야기.

 만약에 모르는 상태에서 정보만 갖고 세군데만 뽑으라고 하면 백리향(반찬 셀빠), 금자매(돌솥)을 각기 고르고 남은 한가지 중에 단소도 유력하게 고려될 것이다. 흑돼지 두루치기가 있으니까! 그리고 모두 가 본 상태에서 다시 세곳만 골라야 한다고 조건이 달리면, 이번엔 녹색식당(몇시에 가야 웨이팅 없이 먹을 수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됨), 금자매(역시, 돌솥), 그리고 단소를 이번에도 유력하게 고려할 것이다. 단, 두루치기는 지난번 식사와 마찬가지로 서빙되었을 때와 마찬가지 상태라면, 명확하게 재조리를 요청해서. 그리고 전복장같은 고급진 반찬과 흑돼지 두루치기를 마음껏 먹어줘야지.

 그러니, 이런 것들이 “관광객 맛집”이 갖는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식도락이고, 그냥 맛있는 음식이 아닌, 제한된 조건 내에서 다른 여행의 제약사항들과 종합해, 하루 두번에서 세번이라는 소중한 기회비용을 투자해서 선택해야 하는 일. 거기에 다소의 추가비용, 낮아보이는 가성비라는 조건은 달리지만, 그것이 사진을 남기고, 이야기를 남길 수준이라면, 우리는 그 식사를 만족스러운 것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흰 쌀밥에 김, 간장, 김치와 된장찌개 혹은 미역국으로 시작되는 “밥 한상”이 우리에게 주는 힘과 기쁨일 테지. 제주도에 가서도 고작 백반 혹은 정식 한 상에 이렇게 진심이 될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