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군필들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설의 장비가 있다. 총? 방패? 아니다. 바로 궁극의 금속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군용 슬리퍼가 그것이다. 이른바 ‘아다만티움 슬리퍼’라 불리는 이 슬리퍼는 입대할 때 받은 것을 제대할 때 들고 나와 10년 이상 신어도 멀쩡하다는 전설의 보급품으로, 역사상 내구도가 닳아 파괴된 것을 본 인류가 아직 없다고 한다. 군대에서는 총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장비, [전설] 아다만티움 군용 슬리퍼에 대해 파헤쳐보자.

국립국악원

아다만티움 슬리퍼, 그 정체는?

슬리퍼

아다만티움 슬리퍼는 약 2011년경부터 군대에 보급되기 시작한 군용 슬리퍼의 별칭이다. ‘절대 찢어지지 않는다’는 극강의 내구성을 자랑하며 군대 안에서부터 입소문을 탔고, 결국 ‘제발 팔아달라’는 성원에 힘입어 2018년부터 시중에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D.P.>에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형광색 군용 슬리퍼가 아다만티움 슬리퍼라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아다만티움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가상의 금속으로,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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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의 손등을 뚫고 나오는 칼날이 바로 이 아다만티움 소재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아다만티움 슬리퍼는 훈련소에 입소할 때 한 번, 상병 때 한 번 보급되는데, 상병 때 받은 슬리퍼는 포장조차 뜯지 않고 전역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훈련소 때 받은 슬리퍼가 너무 멀쩡해서 굳이 교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훈련병 때부터 온종일 신고 있던 슬리퍼를 전역 이후까지 무리 없이 사용하기도 하니, 그 내구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극강의 내구성 덕분에 군용 슬리퍼에 대해 ‘군대에서 가장 강한 존재’, ‘밤마다 다시 재생된다’, ‘찢어지면 전역한다고 했다가 말뚝 박았다’는 썰이 돌기도 한다.

군용 슬리퍼, 그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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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슬리퍼다.” (사진 출처: 크랩)

사실 군용 슬리퍼가 처음부터 이렇게 튼튼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이전의 군용 슬리퍼는 내구도가 약해 툭하면 찢어지고 갈라져서 병사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제 슬리퍼를 사용할 수 없다 보니 선임이 후임 슬리퍼를 빌려 착용하는 등, 비교적 멀쩡한 슬리퍼를 여럿이 돌려 쓰다가 더 빨리 닳아 없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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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장병들을 위해 슬리퍼를 ‘입에 물고’ 나섰다. (사진 출처: 크랩)

2010~2011년 당시 이기자부대 27사단에 있었던 전인범 사단장은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이에 군수사령관이 부대에 방문했을 때 ‘슬리퍼를 입에 물고’ 직접 나섰다.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온 슬리퍼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름의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심지어 전인범 사단장은 사령관에게 슬리퍼를 입에 물고 찍은 사진을 건네주면서 “이 사진을 머리 맡에 두시고 해결할 때까지 치우지 마시라”고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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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TN 사이언스)

이렇게 탄생한 ‘아다만티움’ 군용 슬리퍼는 현재 깔깔이, 도루코 면도기와 함께 3대 군 보급품 중 하나로 손꼽히며, 군 보급품 중 가장 만족하는 보급품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튼튼한 걸까?

군용 슬리퍼가 극강의 내구도를 갖게 된 비결은 소재에 있다. 물론 아다만티움 슬리퍼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해서 정말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군용 슬리퍼의 소재는 바로 ‘에틸렌초산비닐 공중합체’. 거창하게 들리지만 폼롤러나 요가매트 등에 흔히 사용되는 EVA 소재다. EVA 소재로 만들어진 슬리퍼는 일반 PVC 슬리퍼와는 다른 특징들을 가진다.

첫째, 탄성이 좋고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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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소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탄성’이다. 탄성은 사물에 힘이 가해졌을 때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성질. 즉, 아무리 발끝을 구기고 험하게 신어도 찢어지거나 벌어지지 않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소리다. 심지어 가위를 사용해 억지로 자르려고 해도 탄성이 워낙 좋아 잘 잘리지도 않는다. 또한 군용 슬리퍼는 완전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어느 한 쪽이 너덜너덜 떨어질 일도 없고, 무게도 100g에 불과해 가볍기까지 하다.

둘째, 쿠션감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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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슬리퍼를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두꺼운 것을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발 모양을 편안하게 감싸도록 옆라인을 아치형으로 설계하고, 한화토탈의 EVA 원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쿠션감을 강화한 것. 실제로 군용 슬리퍼는 오래 사용할수록 신는 사람의 발 굴곡에 맞게 길들여지기 때문에, 다 같은 슬리퍼임에도 실수로 다른 사람의 슬리퍼를 신으면 신자마자 느낌이 딱 온다고 한다.

셋째, 방수 성능이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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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슬리퍼는 EVA 소재 특성상 물을 먹지 않아 방수 성능이 뛰어나다. 측면에는 구멍이 있고 발바닥이 닿는 부분에는 돌기가 있어 물이 신발 안에 고이지 않고 잘 빠지며, 물기가 많은 곳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밑창에 홈이 파여있다. 처음에는 조금 미끄러울 수 있지만 신으면 신을수록 마찰력이 생긴다고. 덕분에 화장실이나 샤워실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래도 형광 연두색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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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네이비, 블랙, 그레이, 화이트

‘군용 슬리퍼만한 슬리퍼가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면서도 ‘밖에서는 신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마 색깔 때문일 것이다. 국방색도 아닌 이 형광 연두색이 밖에서는 지나치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아다만티움 슬리퍼’ 제조사인 페이퍼플레인도 이를 의식했는지 2018년 군용 슬리퍼를 시중에 출시하면서 총 다섯 가지 색깔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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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해군에 보급되는 그린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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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에 보급되는 네이비 컬러

일반적으로 ‘군용 슬리퍼’하면 떠오르는 그린 컬러는 육군 및 해군용이며, 공군은 네이비 컬러의 군용 슬리퍼를 사용한다. 이중 가장 무난한 블랙, 화이트 컬러는 230~290 사이즈로 출시되어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끌었고, 그린 컬러도 여성용 사이즈가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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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무난한 블랙, 화이트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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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매력이 있는 그레이 컬러

실제로 블랙, 화이트 컬러는 ‘Hit’라는 특유의 흘림체 로고도 눈에 잘 띄지 않아, 집 앞이나 사무실에서 신더라도 일반인이라면 군용 슬리퍼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깔끔해 보인다. 참고로 필자의 Pick은 은은한 그레이 컬러. 흔하지 않으면서 촌스럽지도 않고 묘한 매력이 있다. 아직 여성용 사이즈가 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기획, 편집 / 다나와 홍석표 hongdev@danawa.com

글 / 박다정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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