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화이트 버거스탠드를 발견한 건 지난 월요일, 다른 아내친구 일행과 코스를 잡아 돌기로 하고 애월에서 산방산 방향으로 내려가던 길목에서였다. 이 길이 한림 방면에서 모슬포 방향으로 직진할 수 있는 주요한 도로이긴 하지만 1차선인 좁은 길이라 눈에 확 들어오는 뭔가가 있는 길목은 아니다. 그런데 슝 하고 지나치던 내 눈에 그리 크지 않은 흰 간판이 채였다. 버거스탠드? 얼마 뒤, 짬이 나 한번 검색을 해보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운전을 하다가 눈에 흥미가 가는 가게를 발견하면 기억했다가 검색해 저장을 하곤 한다. 검색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맛집을 찾아가는 비결이랄까.
예상대로 버거스탠드라는, 그리고 그 위에 슈퍼마켓이라고 쓰여있던 그 식당은, 평이 꽤나 좋은 곳인데다가 아내에게 설명하기 위해 조금 더 찾아보니 방송까지 탔다고? 이건 못참지. 아내도 수락을 해, 하루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저녁식사 장소를 이곳으로 골랐다. 시간은 6시 55분.
“저, 지금 식사 되나요? 앱에는 7시 반까지라고 되어있는데 여기 간판엔 7시에 마감이라고 돼 있네요?”
“아 들어오셔도 됩니다. 라스트오더가 19시인거구요 7시반까지 정상영업입니다.”
“아하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미 사위가 어두컴컴해진 시각에 방문했기에, 그리고 가게 안은 비교적 한산해보였기에 조금 걱정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문 옆에 있던 알림판의 19시 마감은 라스트오더라고.
가게 안은 정석적인 햄버거집 인테리어다. 애초에 가게 위치가 번화가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임대료가 많이 발생할 것 같지도 않다. 길가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가게에 이런 모던한 인테리어라니, 외관에서 보여지는 소품같은 느낌에 비해 말끔하다. 그리고 큼지막한 그릴과 튀김기가 모두 오픈키친으로 현관에서 들어오자마자 볼 수 있어 신뢰도가 높고 볼거리가 제법 될 것 같다.
그러나 주문이 먼저. 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아내를 불러 재촉해 주문부터 한 뒤 이제 자리로 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랴 간식을 꺼내 놀아주랴 바쁘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버거스탠드를 발굴하고 나서 의아하면서도 반가웠던 것이 햄버거의 단가였다. 놀랍도록 저렴하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섞었다는 말도 없고 100% 쇠고기에, 패티 추가가 3천원. 애개개 버거킹 가격 수준이다. 어떻게 수제버거집이 프랜차이즈랑 가격경쟁을 할 수 있는 단가를 맞추는 거지? 하는 나의 생각은, 가게를 들어와 큼지막한 철판과 메뉴판을 보고 더욱 궁금증에 부풀었고, 오늘 햄버거가 만약에 맛있으면 다음에 아내와 또 와서 그때는 패티를 추가하고 토핑도 조금 더해볼 고민을 한다.
어쨌든 햄버거의 참맛은 패티를 두장까지는 넣을 수 있을 때 알 수 있다고 할까.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어보면,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왠만큼 유명한 햄버거집들을 가보면 일단 패티가 두툼하고 기름진 것을 알 수 있다. 햄버거는 본질적으로 고기인 것이니까. 최근 한국에 입점계획이 발표된 슈퍼두퍼버거만 해도, 그 패티가 무슨 떡갈비 수준. 처음 햄버거집을 방문해서 맛을 볼 땐 우선 전체적인 밸런스를 알기 위하여 싱글패티버거를 시키고, 여기가 제법 수준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패티를 두장 해서 패티의 맛을 풍성하게 즐기는 방법이 추천될만하다.
그런데 이 식당의 경우, 어쨌든, 그래서 더블패티나 더블패티치즈버거 식으로 기본 햄버거에 구성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메뉴를 늘린 것이 아니었다. 기본 햄버거 라인업이 구성과 번 등에서 소소한 차이가 있고 패티와 치즈는 토핑으로 빠져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아내는 크리스피베이컨, 나는 단품으론 두번째로 비싼 슈퍼마켓 디럭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싸다. 감자튀김을 고르고 콘샐러드, 그리고 음료 두개…아내는 스프라이트, 나는 루트비어를 시켰다.
그렇게 잠시 뒤에 서빙된 햄버거는 기대 이상. 이게 7500원이라고? 생각이 드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스매시드버거라는, 패티를 호떡처럼 누름기로 꾹꾹 눌러 마이야르를 제대로 일으킨 패티는 짭짤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제대로 뿜어져나온다. 가볍고 부드러운 번은 마치 화이트캐슬버거처럼 밀도가 낮아 먹기에 부담이없었고, 두장 햄버거에 모두 들어간 크리스피베이컨 역시, 훌륭해.
어떻게 이 단가가 나올까 생각하며 한 팔론 아이를 붙든 채로, 감자튀김을 먹이는둥 아이의 손을 연신닦아주는 둥, 햄버거 맛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데 잠시 뒤에 라스트오더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오신 사장님이 테이블을 닦고 돌아다니다가 우리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천천히 드세요. 어차피 저희 여기 다 청소하려면 한시간은 걸려요.”
“아아아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햄버거는 많이 드셔보셨어요?”
“네 네에. 어 맛있네요 진짜, 웬만큼 유명한 햄버거집도 많이 가봤는데.”
그렇게 식당 안에 유일하게 남은 우리 일행과 사장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허리춤에 끼고 사장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햄버거를 씹으라 뭉게진 내 발음에 사장님은 가까이 허리를 숙여 귀를 기울이는 매너를 보여주셨다.
알고보니 이 사장님, 서울에 열개 이상되는 점포를 가진 더리얼치즈버거와 길버트버거의 대표 김정길님이었고, 제주도가 고향이라서 고향 집 근처에 햄버거집을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그것도, 스매시드 버거라는, 다른 패티에 비해 바싹 눌러서 바삭하게 굽는 레시피로?
한 5분 넘게 사장님의 햄버거 사랑을 잘 들어보며 이 햄버거의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우선 10개 이상 되는 햄버거 가게들과 함께 전체 쇠고기 물량을 주문해서 돌리니까 그만큼 단가가 낮아질 수 있었다는 점. 아하, 가장 큰 궁금증이 해결됐다. 그리고 버거스탠드의 이 스매시드버거가 다른 햄버거와는 구분되는 하나의 “장르”인 점. 그리고 우리가 먹어본 몇군데의 햄버거집에 대한 이야기까지.
내가 식당이나 카페에서 이렇게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아내는, 내가 자꾸 나대는 것 같아서 걱정을 하곤 한다. 그러나 또,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나서 쉐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미식의 중요한 과정이요, 뭘 알고 이해를 해야 맛을 제대로 볼 것 아닌가? 나는 버거스탠드의 패티가 120g이라는 점, 사장님이 이 가게를 만들기까지 요 몇해 동안 걸어온 길 등등을 들으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거의 체인점 수준의 대규모 유통망을 갖고 있어 그만큼 햄버거의 단가가 낮아질 수 있었던 식당이지만 이처럼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가격에 이정도 품질의, 쉐이크쉑과 인앤아웃, 크라이지츠버거를 방불케하는 햄버거를 그것도 제주도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햄버거 패티에선 기름 한방울 흐르지 않아, 아이를 허리에 끼고 먹었음에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햄버거의 사이즈도 와파보단 작고 빅맥보단 크다. 이 저럼한 가격에 그 어떤 핑곗거리도 찾아볼 수 없다. 최상의 식재료로 만든 현재 시점 제주도 최고의 햄버거.
아내도 무척 만족을 했고, 길버트 햄버거나 더리얼치즈버거처럼 나름 수제버거 마니아들에게 입소문을 탄 집들이 사장님에게서 흘러나오자 자기가 가본 곳들을 찾아보며 맛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크리고 아이도 아작아작 감자튀킴을 힘차게 먹으면서.
물론 맛은 상대적인지라, 그리고 비싼 값을 내고서라도 다른 좋은 수제버거집들을 찾아갈 사람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현재 시점에 이보다 맛있는 햄버거집이 제주도에 있기 힘들다. 약간 짜다는 것만 제외하면 쇠고기의 씹히는 맛도 매우 확실한 수제버거인데 심지어 가격도 싸. 그런데 기름지지도 않다.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
“지금 이번에 우리 많이 먹어야겠다.”
“왜?”
“8월 중순에 오픈하셔서 아직은 좀 괜찮은 거지. 이번 여름방학 떄 오면 오픈런해야돼.”
“아하.”
나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내 최애 햄버거집이 된 버거스탠드의 미래를 벌써 겁내며, 이번 한달살이 때 몇번이나 더 올 수 있을지 추량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그러므로 패티 한장 추가부터 하고 고민해야겠다.
원문: 공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