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나는 버드나무 순대국에 가서 순대를 영접한 뒤, 아내에게 사진을 보냈다.

– 감기 심해서 보신하러 순대국
– ㅋㅋ보신이래. 맛있게 먹어

평일 점심 시간, 버드나무 순대국에는 여전히 사람이 붐비고 있다. 우리 순대국이 나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10여개의 테이블이 모두 차, 밖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좀 기다리셔야 하세요-.”

 바쁜, 너무나 분주한 주방과 홀을 오가는 사장님이 양 손에 순대국을 들고서 서빙을 한 다음, 문 앞에 서 있는 새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주방으로 뛰어들어간다. 나는 나대로, 뜨거운 순대국에 정성들여 토핑을 한다. 청양고추 약간, 고추양념 약간, 들깨 가루, 새우젓, 골고루. 

 언제 먹어도 훌륭한 순대국이다. 이게 8천원이라니. 이 가격에 이 양에 이 맛이라니. 팔팔 끓는 국물에, 적당히 쫄깃 탱글하게 삶아진 머릿고기를, 훌훌 입에 털어넣는데…

“어? 야야.”

“왜?”

 나는 마주앉은 대학 동창을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야 어머님. 어머님이시잖아!”

 세-상에. 세상에. 진짜로, 어머님이 계셨다. 외대 앞 버드나무 순대국에 매일 다니며 플라스틱 사발에 코를 박고 마시던, 내 스무살 때 뵙던. 그 어머님이. 여기, 의정부에, 똑같은 버드나무 순대국에, 다시.


 잠시 숨을 돌리고, 앞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나는 딱 20년 전 스무살 때, 외대 앞 버드나무 순대국이란 낡고 허름한 식당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하루에 두번도 갔었다. 군대를 제대하고선 나도 자주 찾지 못하게 되었고, 당시 사장님 내외분들도 이미 50세를 넘기신 터라, 몸이 따라주지 못해 그 장사 잘되던 가게를 다른 분들에게 넘기셨다. 

 그리고 2023년, 나는 내가 사는 의정부에 그, 버드나무 순대국과 이름이 똑같은 식당이 있어 발견하고, 그 맛이 더욱 맛있어지기도 했고, 가게 스스로도 외대 앞 버드나무 순대국이 옮겨온 곳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매번 가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아니, 세상에, 오늘 그, 어머님을 직접 가게에서 만났다.

“어머님-. 어머님-.”

“응? 어-.”

“어머님 저희 외대 앞에-.”

“아이고! 아이고 알겠다 알겠다-. 야 어떻게. 여기 왔어-?”

“아니 어머님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어떻게-.”

“나? 아하하. 아냐 나이 먹었지. 너희는 그래 알아보겠다 그래도 다 있네 얼굴이.”

“네에. 저희 직장이 둘 다 여기라서. 벌써 몇번 왔었는데.”

그리고 우리를 두 손으로 감싸주시며, 행복한듯 흘러나온 어머님의 한마디.

“아이구우 알아보겠네. 애들아, 내가 내 가게에서 장사하는 게 꿈이었거든- 근데 이제 내 가게에서 장사하니까 지금 너무 좋아.”


나는, 식사를 마친 뒤 몇번 어머님의 그 말씀을 곱씹었다. 어쩜, 우리를 보자마자 그 말씀부터 튀어나오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한 평생 꿈을 이룬 한 사람이, 20년 전에 알던 옛 사람들을 다시 만나, 그것도, 딱 당신의 작은 조카뻘 되는 대학생 아이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 시절에 대한 감회가 젖어든, 그런 자연스러운 반응 아니었을까. 

 어머님의 그 함박웃음과 호탕한 목소리에 섞여든 진한 인생의, 김 같은 것을 느끼며 나는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어? 이제 어머님 가게…건물 사신 거예요?”

“응. 샀지.”

“허얼-.”

 어쩐지. 그래서 이렇게 싸구나. 그래서 이렇게 양이 많고…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맛있어졌어.

“지금도 고기랑 김치랑 다 내가 하는 거야.”

“아아 맞아요 딱 그 맛이예요.”

 다른 것보다도 이 새우젓을 보면 20년 전 허름한 식당의, 그 새우젓이다. 나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이 새우젓의 색채를 보고 아 그집 맞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절 외대 앞 버드나무는, 족히 30년은 된 가게에서, 좁디 좁은 화장실과 너댓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낡아빠진 식당이었다. 그 식당에서 어머님은 겨울엔 만두국, 여름엔 냉면, 순두부와 비지찌개 등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을 이것저것 두루 만드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순대국이 입소문이 나버리고, 순식간에 순대국 전문점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바람에 원래는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술장사도 하시다가, 그만 저녁식사손님만 받고 일찍 문을 닫아버리는 방침으로 바뀌었었다. 

 그 작은 식당에서의 시간들, 50세를 넘긴 나이까지 허름한 식당에서 순대국을 끓여내던 어머님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사꾼이 되어 노년을 즐거이 보내고 계셨다.

“친구들한테 보내주려고요 어머니, 사진 좀 한장만 찍어도 돼요?”

“사진? 푸하핫-.”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어머님의 사진을 찍었다. 혹시 이 사진을 본 외대생들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길 바란다. 어머님은 고개를 두어번 돌리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나는 즉시, 선배들과 모인 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그 선배들이랑 밤에 술 마시며 노래 부를다 쫓겨난 적도 있다. 내 친구도 회식 하다가 그만 먹으라고 쫓겨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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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식사를, 어머니의 미소처럼 행복하게 마쳤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하기 전, 버드나무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50세를 넘기도록 낡고 허름한 식당에서 순대국을 끓여 파는, 그런 삶을 이제 한창 꿈꿀 나이인 열일곱의 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삶을 이겨내고, 나이 70을 넘겨 건물주가 된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삶인지를. 

 나는 아이들에게, 힘겨운 10대, 더 힘겨울 20대, 더더 힘겨울 30대를 보내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 내 이야기를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어떤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의 하루하루가 삶의 종착점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 뒤에도 뒤에도 삶은 이어진다. 그 뒤에, 이렇게 행복 가득한 삶을 살게 될지, 또 모르는 것이라며. 너희들은 그 때 그 때의 자신의 모습으로 그 한계를 가늠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살아달라고. 

 혹 그러다보면, 나이 70을 넘어서 건물주가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사, 내 말을 기억하는 애들이 한명이나 있으려나. 

 그나저나, 덕분에 순대국을 더 자주 먹게 생겼다. 다음엔 소주에 술국에 수육을 먹으러 갈 것 같은데 또 버드나무가 어머님이 수육이 또..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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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브런치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