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이식당을 발견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통영 여행 중, 아내가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는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고 아침에 우리는 “매콤한 게 먹고 싶다.”는 대화를 한 참이었다. 먹을 게 넘치기로 유명한 통영에 와서 매콤한 걸 먹겠다면 해물짬뽕만 수십군데 전문점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생선조림도 있고, 또 그것도 아니라면 철판두루치기 등등, 먹을 게 수두룩하지만, 또 너무나 먹을 게 많고 가볼 곳이 많다보니 무언가 느긋한 그런.
그리고 사실 돈 생각도 하지 않을 순 없다. 여행 초반 몇군데ㅡ 가성비를 챙기며 식당을 골라봤지만 어지간하면 1인분에 만5천원씩은 하는 식당이 흔했다. 늘상 먹는 메뉴를 피하고 통영에까지 온 기분을 내려면 말이다.
우리는 통영의 신도시라 할 수 있는 죽림동, 통영 구도심의 북쪽 한 구석에 머물고 있었다. 통영의 날씨는 한결같이 좋아서 가까이 바라보아도 좋고 멀리 나가보아도 좋았다. 다만 문제는 이제 네살 된 아이의 점심 낮잠 시간을 꼬박꼬박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보다 조금 어렸을 떄는 아이가 졸리더라고 칭얼거림도 덜했고 달래기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어지간한 수준으로 말도 할 수 있고 기운도 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오후 2시쯤이 되면 아이가 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떼를 쓰곤 한다. 그러니, 오전에 아침을 먹고 잠시 외출, 점심에 아이를 재웠다가 잠시 외출. 이 수준으로 우리의 여행은 흐르고 있다.
칼칼한 것이 먹고싶다던 아내는 카페에서 빵을 두 종류를 시켰고 나 역시 배가 고파오는 시간이었다. 숙소의 냉장고에는 김치만이 매콤한 맛을 내는 재료였고 그것이 아니라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만, 숙소에 머물러만 있기엔 너무 화창한 날씨였다. 영상 10도 언저리의 남도의 아름다운 봄 같은 1월.
나는 대강 지도를 둘러보고 아내를 위한 카페 한군데를 먼저 찾아냈다. 그리고 칼칼함이라는 키워드를 만족하는 식당을, 지도를 살피며 찾았다. 그래 여기는, 고성에서 통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당동리의 바닷가 마을. 왕창이식당.
위치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근처에 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고성에서 통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운전자의 입장에선 그러기도 아까운, 애매한 위치에 있는 식당. 이곳을 불현듯 찾아내게 된 것 또한, 우리의 한가하고 느긋한 하루에, 공연히 통영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가자는 발상이 이루어진, 단지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음 그러나.
지역 맛집에 들를 때면 늘 웨이팅은 각오를 해야 한다. 외지진의 입장에서야 시골 오지이지, 왕창이 식당이 위치한 당동리 거류면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갖춘 나름 규모가 있는 촌락이다. 주변에 산업단지가 한창 지어지고 있었고 아파트에 큼지막한 공공기관까지 근처에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도착했을 때 식당 입구엔 막 식사를 마친 손님 서넛이 나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고, 식당 안에는 9,10개의 테이블 중 절반 이상이 차 있었다. 이미 식사시간을 조금 넘긴 뒤였는데 말이다.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다음으론 연탄구이의 불향이 코를 타고 들어왔다. 맛집의 냄새. 연탄구이정식이 1인분에 1만 2천원. 그리고 다른 메뉴들도 몇가지 있는데 기본은 정식구성에 메인인 연탄구이 대신 두루치기를 내주거나 부대찌개를 내주거나 하는 식이었다. 메누는 단촐한 구성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맛깔난 음식을 내어주니, 그래도 지역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성싶다.
흠.
상에 앉은 뒤 얼마 안있어 먼저 상차림이 마련된다.
그런데 흠.
흠.
잡채가 흠.
나는 먼저 잡채를 집어 아이에게 먹여주었다. 그리고 먼저 테이블 다른 한켠에 놓인 섬초 나물을 한입 먹고, 다시 흠.
흠.
흠.
“바깥양반, 이거 먹어봐. 이거 섬초다.”
“남해에서?”
“응.”
정갈한 상차림에 맛깔난 반찬들이다. 맛있다. 잡채는 내가 먹어본 어지간한 한정식 식당에서 나오는 것보다 맛있었다. 계란지단은 대체 왜 고생해서 만들어 올렸담. 그래봐야 만2천원 정식에 낀 구색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오뎅까지 따로 양념을 해서 볶아 잡채에 넣으셨을까. 사람 고기 나오기도 전에 배불러지게시리. 게다가 섬초는, 지금이 섬초 먹을 철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달고 단 나물이라니. 야 지금이 정말, 섬초 맛있을 때다. 그 맛있는 섬초를 맛있게 무쳤다.
나는 아이를 먹이느라 반찬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다만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은, 반찬들이 경상도라 그런가 간은 세다. 정갈한 잡채도, 기포 하나 없이 깔끔하게 쪄낸 계란찜도, 간이 세다. 딱 좋을만큼만 세다. 그것이 재밌다. 졸리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식사를 한다. 아이는 졸려하다가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 열심히 밥을 먹는다.
그런 사이에 메인인 연탄구이가 나오고, 아내는 한 팔로 아이를 지탱하는 내게 쌈을 싸주며 자기도 먹기 시작했다.
이 연탄구이가, 예전엔 흔하던 음식이 이제는 이렇게 지역에 와서 먹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연탄구이를 조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위험하고, 굽는 과정에서 생성된 발암물질이 고기에 흡착되어 건강을 해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진 터다. 다행히 이 식당의 경우 실외에서 연탄구이를 조리해서 온다. 그리고 연탄구이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은 일반 숯불구이와 같다고 하니, 드럼통 하나만큼을 먹어야 암에 걸릴까말까하다는 부분은 같다.
정작 연탄구이가 드물어진 것은 건강보다도 도심에서 연탄 자체가 보기 드물어진 탓일 것이다. 건강이 문제였다면 애초에 술담배를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이제는 도시에서 연탄은 극빈층에게서만 소비되고, 그것을 굳이 건강 이슈로 된서리를 맞아가며 가게로 들일 업주는 없는 탓이다. 연탄이 흔하던 시절에나 식당에서도 쓰던 것이지, 연탄 자체가 드물어지고 나선. 다만, 농촌의 경우 연탄은 아직 흔하다. 하우스에서도 쓸 것이고 말이다. 그런 덕분에, 이렇게 지역에 여행을 내려오거나 했을 때 뜻밖에, 이런 제대로 된 식당을 만난다. 불향 가득한 연탄구이와 마치 한정식을 방불케 하는 깔끔한 반찬들 그리고 된장찌개.
이 된장찌개도 쓸데없이 참 맛있다. 아 가자미도, 가자미 얘기를 먼저 하자면 구워진 상태로 식혀져 나온다. 그때 그때 새로 구워줬다면 더욱 금상첨화겠지만, 음- 차림새의 문제도 있겠지만 바닷가 지역이라 그런 것도 있다고 할까. 생선구이가 오죽 흔하면 그냥 구워서 널어놓고 먹겠느냔 말이지. 이 가자미도, 간이 제법 세다. 가성비 넘치는 식사에 과분한 가자미구이에, 그냥 피식 웃음만.
“아 배불러.”
“양이 많네. 된장찌개도이거 다 비우고 싶을 정도야.”
아내는 쌈을 열심히 싸먹고는 진작 숟가락을 놓았다. 아이에게 내 밥을 몇숟갈 덜어주고도 나는 고기와 된장찌개, 맛있는 반찬에 배가 불렀다. 그런데 배가 불러도 연탄구지잖은가. 맛있는 된장찌개지 않은가. 찌개의 개운함에 또 연탄구이에 손이 간다. 그래서 양이 퍽 많은 저 고기를, 거의 밑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싹싹 긁어먹었다.
지난해 여름과 겨울 제주도에 가서 밥집투어를 돌며 으뜸인 가성비 식당들을 여럿 찾아낸 적이 있었다. 제육복음과 생선구이가 합쳐진 맛있는 식당이 많아서, 제주도 물가 무서운지 모르게 지낼 방법을 찾았다고 기분 좋아했는데 왕창이 식당은, 맛과 가성비 모두, 통영 여행을 오는 사람이라면 일부러라도 한번 방문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적어도 지금까진 통영에서 들른 집 중에 여기보다 맛있게 먹은 집이 딱히 없다. 다 그냥 납득될 맛에 그럭저럭한 값이란 정도. 그런데 왕창이 식당은, 제대로 된 맛집이다. 친절함까지 갖추셨다. 그리고 좀 웃긴 것이, 사장님께서 나름 블로그 관리를 열심히 하시나보다.
“자아~ 이거 선물이다 가져가~.”
“와아 감사합니다. 동백아, 감사합니다 해야지.”
“…….”
아이를 안고 신발을 신고 나오는데, 사장님께서 불쑥 비누방울놀이 장난감을 선물이라 주셨다. 놀이공간 가면 3,4천원씩 받고 파는 것을. 놀라며 아이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인사를 거부하는 아에에게 사장님은 웃으며 나무에 매달려있던 사탕을 따서 주신다. 마침 홀에서는 점심장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점심 시간을 다 넘겨 온 손님에게 이런 환대라니. 이 맛에, 쓸데없이 고퀄인 잡채 위 계란 지단 고명에, 충분히 감사했는데.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하게 되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찾는 것이 기쁜 일이다. 그 안에 세상 돌아가는 모습도 있고, 사람의 이야기도 있고, 양심껏 성의껏 음식 차리는 사장님의 마음도 있고. 이 맛있는 연탄구이를, 언제 또 먹으러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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