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런 맛이면 무조건 줄 서서 먹지.

 경주 명동 쫄면에 도착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시간은 이미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아기는 내 품에 안겨있고, 집에까진 네시간 가량을 올라야 한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대기열은 한눈에 보아도 한시간은 기다려야 함을 예고했고, 아이는 배가 고플 시간이고, 이걸 먹겠다고 기다리다간 아이의 컨디션이나 집에 올라가는 시간이나 대체적으로 대대로 꼬일 전망.

“일로 일로 와봐 잠깐.”

“응?”

“어떻게 할거야?”

“왔는데 먹고 가야지.”

 나는 대기열 밖으로 아내를 불렀다. 여전히 아이를 안은 채로, 아내에게 물었고, 아내는 단번에 답한다. 휴. 어쩔 수 없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점심식사가 늦어지면서 아이의 컨디션도 꼬이고 길도 막히고 우리는 두루두루 고생을 했다. 보문단지 벚꽃도 아름답다던데 포기해버렸다. 이리 되었든 저리 되었든 빠르게 점심 한끼 마치고 올라가려던 계획은 포기. 

“배고파!”

 그와 동시에 아이가 배고프다며 칭얼대기 시작했고, 결론은 내려졌다. 마침 쫄면집 바로 근처에 김밥집이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잠시 쉬며 김밥을 먹이기로. 그리고, 두어번 골목을 오가며 대기열을 보아가며, 우리는 생각보단 빠른, 40여분만에 입장을 했다. 분명 대기열은 어마어마했는데 뜻밖. 그거야, 메뉴가 단촐한 덕분이고 메뉴 특성 상, 빨리 식사도 마무리되니 여간 회전율이 빠른 탓이겠지.

“안무서웠어? 아이구 예뻐- 아가- 어디서왔니-?”

 아이와 놀아준다고 둥가둥가를 해주던 나를 보시던 사장님들께서, 우리가 가게에 들어서자마나 환히 웃으며 아이의 손을 부벼주신다. 한 자리에서 수십년을 버티신 사장님들이 정도 많으셔, 잠깐이지만 아이를 보고 눈에서 꿀이 흐르는, 그런 공간의 감각. 붐비는 식당의 안쪽 자리에 자리를 잡고 구경을 하니, 메뉴판에 메뉴가 달랑 셋. 비빔쫄면에, 유부쫄면에, 오뎅쫄면. 냉면은 아직 철이 아니라 가려져있다. 이 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헐한 값에 허기를 달랬을까. 시장의 좁은 골목에 자리붙이고 살아오셨을 어른들의 시간을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재빠르게 우리 메뉴가 나왔다. 

image 8
image 9 jpeg

 쑥갓이 잔뜩 올라간 독특한 쫄면. 그리고 양념장이 유별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곳이다. 그리고 온쫄면 쪽은, 아이를 먹이기 위해 매운 양념을 빼고 받았다. 양념장을 넣은 국물 맛이 궁금했지만, 이때까지, 나는 맛에 대해선 아무런 기대도 없었던 터다. 

 다만 쫄면에 대해선 미리 짚어두고 갈만하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쫄면은 냉면공장이 실수로 만들어낸 면이다. 고구마전분으로 치댄 반죽을 두껍게 뽑아낸 것인데, 탱글한 식감으로 비빔면을 만들어먹는 음식. 부산의 냉밀면처럼, 이런 독특한 식감을 가진 음식으로 온면을 먹어도 즐겁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스러지는 소면의 식감이 가장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뜨거운 국물에 부드러워진 쫄면이 입안에 징징 와닿으며 목을 넘기는 맛. 

 그러나 여기까지도, 기대한 대로의 맛. 알고 있는 맛. 굳이 줄 서서 먹어야 할까.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image 8 jpeg
image 9

 그러나, 비빔 쫄면을 한 입 먹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 야-…이런 맛이면 무조건 와서 줄 서서 먹지. 오길 잘했네.”

 비빔쫄면이 탁월하다. 생전 처음 맛보는 새로운 미각이다. 약간의 양배추와 넉넉한 쑥갓, 그리고 오이. 고명은 그것으로 다인데 양념장에 무슨 조화를 부려놓은 것인지 독특한 끝맛이 내내 진한 인상을 남긴다. 무슨 커피처럼, 와인처럼, 강렬한 후미가 구미를 당기는, 말 그대로의 독자적인 미감. 

 이, 풋내같으면서도 쌉쌀한 것 같으면서도 진동하는듯하고 진한듯하고, 그렇지만 싫지않은. 감칠맛 같으면서도 달지도 짜지도 않으면서도, 자극적인 이 맛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재료를 갈아서 만들어낸 장일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얼핏, 어떤 채소든 즙을 내서 양념장에 버무린 것 같은데 정체를 알 수 없다. 양념장을 지금이라도 살까? 아 참아 내 안의 백종원.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나는 아내가 남긴 쑥갓들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어딜 가서도 맛보기 힘든 쫄면이다. 이쯤이면, 정말로 와서 줄 서서 먹을만하다. 이 맛을 보고 가지 않았다면, 그냥 집으로 올라가기를 택했다면, 모를뻔했다. 

“동백아 맛있어?”

“응. 응.”

 품 안의 아이는, 아빠 무릎에 걸터앉아 핑크퐁과 뽀로로 동영상을 보며, 좋아하는 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그리고 국물을 홀짝, 홀짝. 정말 잘도 먹는다. 결과적으론 아이 역시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으니, 한시간이 되지 않은 기다림은 가치로왔다. 경주까지 멀리 온 것은 우리의 결단이고, 나중에야 아이의 컨디션이 꼬인 댓가를 치르긴 했지만, 음식은 음식대로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디서도 먹지 못했던 이 맛에, 정말 즐거웠다. 

 그냥 식사를 마치며 드는 한가지 애잔함, 아마 지역민들이 더욱 공감할 문제이지만 세상 물가가 이리 오르다보니, 또 친절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보니 가격이 아마도 옛 그 가격은 아닐 터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더더욱 지출이 어려운 값은 아니지만, 오래 명동쫄면을 오갔을 단골 손님들은, 값도 값이 되었고 대기열도 문제일 것이라. 

 옛날엔 아마도, 넓은 선반에 우루르 앉아 홀홀 쫄면을 들이키고들 다시 일하러 가셨을 테지. 세월이 지나 유명한 맛집이 되고 값도 풍경도 그 시절 그 모양은 아닐 것이라. 그것이, 변해가는 세월, 무섭게 올라가는 물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도 대대손손. 이 귀한맛, 그대로일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