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가득한 극장에서 빨대를 쪽쪽거린다. 옆사람의 손을 잡지도. 팝콘을 짚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음료. 영화관 콜라일 뿐이다. 안주가 될 영화는 최근 재개봉한 <러브레터>. 하얀 설원의 풍경에 콜라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옆자리의 여자친구는 내 손등을 치며 말한다. “이렇게 마실 거면 2개를 시키던가!”

국립국악원

그렇다. 음료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가족도 연인도 없는 자.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음료쟁이. 마시즘이다.

그 겨울, 어묵이 온다

어묵티


영화를 보고 나오니 하늘은 까맣고. 땅은 하얗게 눈 덮여 있었다. 절로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를 외치고 싶은 날씨. 영화에서는 2시간 동안 눈밭에서 구르고 뛰어도 잘 다니던데. 현실세계는 2분 만에 세상은 녹록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너무 춥잖아.

허나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살아날 오아시스가 있는 법. 바로 코 앞에 있는 포장마차다. 춥고 목마른 자들을 위해 ‘어묵 국물’을 내려주는 따뜻한 곳. 여자친구는 어릴 적 포장마차에서 어묵 하나를 시키고 손님이 열명 지나갈 동안 국물만 마신 자린고비… 아, 아니 아름다운 국물덕후였다. 나 또한 마시는 거라면 질 수 없다. 가즈아!

“장사 끝났어요. 안 팔아요.”

밤 12시. 어묵 국물 한 잔 없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랭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어묵티백

어묵티


왜 우리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묵 국물을 마실 수 없는가? 또한 어묵 국물을 위해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어묵을 시켜야만 하는가? 죠스떡볶이에서 만들어진 ‘죠스 어묵티’는 이런 물음에서 만들어졌다. 시작은 관심을 얻기 위한 페이크였으나 인기가 높아 실제 상품으로 출시해버렸다.

마치 오설록의 차 세트를 연상시키는 단아한 포장. 마치 ‘어묵티에 어묵 따위 없어도 뭐 어때’라고 윽박지르는 듯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오설록은 제주도에 가야 살 수 있지만, 죠스 어묵티는 동네 죠스떡볶이 매장에서 살 수 있다. 한 박스에 5,900원.

쓸고퀄이라 쓰고 감성이라 읽는다

어묵티


죠스 어묵티는 선물하기에 (나만) 좋은 세심한 포장이 있다. ‘이 겨울, 당신 잘 계시나요?’라는 따뜻한 안부와 ‘오뎅끼데스까?’라는 위트 있는 카피가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죠스 어묵티 상자를 열어보면 각각의 티백 12개가 한차례 따로 포장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과자였다면 ‘또 질소를 위해 공간 창출을 했구나’라고 욕했겠지만 어묵티였기에 ‘감성’으로 이해되었다. 이토록 섬세한 감성이라니! 나 또한 예의를 갖추어 어묵티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어묵국물 맛을 찾아서

어묵티


그 많은 어묵탕 중에서 포장마차의 어묵 국물을 으뜸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료의 차이다. 어묵 국물을 우려내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멸치와 다시마’다. 거기에 무와 파, 양파를 준비한다. 매콤한 맛을 위해 고추나 통마늘도 통통 넣는다. 이 모든 것을 면 주머니에 담아 끓는 물에 담근다.

그 위에 끝판왕 ‘혼다시(일본 다시마)’를 첨가하면 된다. 뭔가 허무하지만 마법의 가루를 무시하지 말자(?) 가끔 꽃게나 북어를 담근 곳이 있는데 그런 곳은 놓치지 말고 국물을 마셔야 한다.

면포가 티백으로 줄었을 뿐. 죠스 어묵티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멸치와 다시마가 기본으로 들어가고 새우나 고추씨 등 고개가 끄덕여지는 재료들이 들어갔다. 물론 밴댕이나 헛개나무 같은 재료는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엑스트라 한 둘로 어묵 국물 전체를 판단하지 말자.

오뎅끼데스까한 맛이 난다

어묵티


죠스떡볶이에서 권장하는 용량(185ml)에 맞춰 어묵티를 담갔다. 취향에 따라 1~2분 동안 우려내라고 했지만, 물에 닿는 순간 황사처럼 노오오오오랗게 번져나가는 어묵 물결을 볼 수 있다.

참을 수 없어 당장에 마셔보았다. 새우 향이 은은하게 나며 입에 닿은 어묵티는 실제로 포장마차 어묵 국물 맛이 났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먹거리 X파일에서 ‘나쁜 식당’으로 규정할만한 강력한 다시다 맛이 났다. MSG를 썼다고 몸에 나쁜 것이 아니다. MSG는 ‘마시쪙’의 약자니까.

맛은 제대로 구현했다. 하지만 본디 어묵 국물이란 추운 날씨에 밖에서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법인데. 장소가 바뀌니까 마실수록 괴리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짭조름한 뒷맛이 아쉬움을 남긴다. “오뎅끼데스까!”라고 포장마차에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그 맛.

당신과의 어묵을 세어보아요

어묵 국물. 누군가에게는 꼬치어묵의 옵션 정도로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겨울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음료 중 하나다. 죠스어묵티는 이런 필수 음료를 집안에서 마실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음료다. 이불 밖이 두려운 사람들도 모두 어묵 국물의 참맛을 알 수 있게 해주었으니.

국물덕후. 여자친구는 죠스어묵티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 텀블러에 넣고 밖을 돌아다니며 마시겠다고 말한다.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한가지 생각을 했다. 만약 죠스어묵티가 없었다면 나는 올 겨울 내내 포장마차 주인 눈치만 보며 어묵만 먹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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