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혼자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편의점 신상 음료다. 오늘도 고객을 기다리던 편의점 사장님은 웃으며 반긴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국립국악원

숲 속 편의점 창가에
작은 토끼 들어와

세상이 동화라면, 편의점은 내게 과자집 같은 존재다. 세상에 이 음료수를 언제 다 마신담? 모과차도 좋고 유자차도 한참 맛있을 시기지만, 오늘의 음료는 핫초코다. 그때였다. 편의점 창가에 있는 컵 음료 사이에서 토끼가 나타났다. “살려주세요. 사냥꾼이 저를 쫓아와요.”라고 말하는듯한 비주얼. 앗 그런데 토끼 이름이 핫초코 미떼다. 찬 바람 불 때 그 녀석?

나는 토끼를 구해주었다. 얼마죠? (네 2,000원입니다) 몸값이 제법 되는구나 아쉽네… (2+1입니다) 그럼 놓칠 수 없지. 가여운 토끼 세 마리는 음료 사냥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으흐흐… 아니지 토끼야 널 구해줄게.

구해줬으면 대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핫초코 미떼


어려서부터 동화 9단을 뗀 나는 잘 알고 있다. 토끼나 사슴, 까치 같은 작은 동물을 구해주면 언제나 재물복이 온다는 것을. “토끼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니?” 나는 알아서 핫초코 미떼 마시멜로의 구성품을 털어본다(?)

핫초코 미떼 마시멜로에는 기본적으로 핫초코 분말이 든 포장과 종이 티스푼이 들어있다. 그리고 토끼가 살고 있는 포장이 하나가 딸려있다. “이래선 도움을 준 의미가 없잖아” 현실에 찌든 동화 9단 앞에 토끼는 순순히 보물… 아니 응모권을 한 장 건네주었다. “그래 이거지”

나는 만족한 미소를 띠며 응모를 했다. 10만 원짜리 외식상품권을 10명에게 준다고? 그 외에도 경품은 많았다. QR코드를 찍고 번호를 입력하면 바로 당첨 여부가 나온다. 따단! 3개 모두 TOP 캔커피. 그럴 줄 알았어.

찬 바람 불 때는
역시 핫초코 미떼지

동화에 너무 빠졌더니 본분을 잊었다. 나는 음료신상털이였지. 나는 핫초코를 만들어본다. 종이컵은 물의 양을 맞추기 어렵다는 게 아쉬워서 따로 잔을 준비했다. 핫초코 분말에 물을 부으니 방 안 가득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가 번진다.

그런데 토끼의 상태가? 이상하다. 마시멜로라는 튜브를 장착한 토끼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저기 들어가고 싶다고?” 아아, 나는 추위에 떠는 토끼를 핫초코 위에 얹어 주었다. 모양이 그럴싸하다.

문제가 있다
귀여워서 마실 수가 없다

핫초코 미떼


핫초코 미떼의 맛은 예상했던 대로 쫀득하고 달콤하다. 심지어 마시멜로가 적당히 녹아 핫초코 위에 하얀 거품을 만든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핫초코 위에 토끼 한 마리가 둥둥 떠있다는 것이다. 자칫 마시다가 입에 꿀꺽 들어갈까 봐 조심해서 홀짝이게 된다.

나에게는 과분한 귀여움. ‘차라리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타 줄 것을’이라고 생각했다가 ‘나는 토끼를 구하는 나무꾼이 아니라 사냥꾼, 호랑이였구나’로 자괴감 콤보가 발동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핫초코 미떼를 계속 홀짝이는 이유는 어마무시한 달콤함 때문이다.

결국 귀여움이 승리했다. ZICO도 마셨고, 칸타타 스파클링도 마셨던 마시즘. 올해 첫 기권을 선언한다.

토끼와의 추억을
기억해줘

나는 자리를 떠났다. 핫초코 미떼 토끼와 친분을 자랑하기 위해 SNS 이곳저곳에 사진을 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의 (토끼가) 귀엽다는 반응에 만족한 나는 다시 토끼를 찾아온다. 그런데 토끼가 없다. 핫초코 위에는 하얀 게 녹은 마시멜로만이 남아있다. 토끼는 녹아 인어공주라도 된 것일까, 아니면 숲을 찾아 떠난 걸까?

토끼가 떠나고 남은 핫초코 미떼를 마셔본다. 달콤한 추억만이 입안에 허전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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