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가 뭐예요?”

마시즘을 시작하고 가장 친해진 사람은 편의점 사장님이다. 매일 보는 우리는 거릴 것 없는 사이로 편의점의 먹고사니즘은 물론 한국 음료의 현실을 논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였다.

“편의점에서 많이 팔리는 음료? 박카스인데”

세상에. 코크도 펩시도 칠성사이다도 아닌 박카스F가 가장 많이 팔리다니(실제 GS25, 세븐일레븐에서 올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음료가 박카스F).

과연 노동의 나라 대한민국(펄-럭). 아니 워라밸을 논하는 지금도 1등인데 대체 옛날에는 박카스를 얼마나 많이 마신 것일까?


한국 최고의 포션
박카스는 원래 알약?

박카스의 역사가 곧 한국 노동의 역사다. 박카스는 1961년 출생으로 산업화가 진행될 때 태어났다. 당시 박카스는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자양강장제였다.

밤에는 소주로, 낮에는 박카스로 달리는 다이나믹 코리아. 생각해보면 이름부터 술의 신 박카스(바쿠스, 디오니소스)아닌가.

(박카스가 알약으로 그대로 남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초기의 박카스는 알약(박카스-정)이었다. 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알약의 껍데기가 녹아 대량 반품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만든 것인 작은 유리병의 앰플(박카스-앰플). 하지만 이 녀석은 운송, 보관 중에 쉽게 깨지는 제약업계의 쿠크다스였다.

결국 1963년이 되어서야 우리가 아는 드링크제의 박카스가 나온다. 이름하야 박카스 D(Drink). 음료판 D의 의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박카스와 야근은
동의어다?

1967년, 박카스D는 출시된 지 4년 만에 동아제약을 제약회사 정상에 올려놓았다. 특히 광고를 공격적으로 했다. ‘음주 전후 간 건강에 박카스 드링크’라는 문구는 60년대 산업역군의 감성을 터치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1976년 정부에서 ‘자양강장제’들의 광고를 금지시킨다. 너님 텔레비전 아웃.

광고가 막히자 박카스는 많은 자양강장제의 도전을 받게 된다. 1993년 광고 봉인이 풀리자 다시 한번 피로회복시장을 평정한다.

바로 박카스의 광고 ‘새 한국인’ 시리즈다. 환경미화원, 버스 운전사, 대학생 등 보통사람의 일상을 담는 박카스의 광고들은 연일 히트를 친다.

(사실상 광고계의 청학동 훈장님 같은… 죄송합니다)

제품 광고를 하려면 있을 수 없는 내용들의 광고다. 하지만 박카스는 이 공익광고스러운 스토리에 한 줄의 문구를 더한다.

“그 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아 맞다. 사실상 한국인의 일상 자체가 박카스를 원하는 거였구나. 결국 박카스는 제품의 맛과 효능보다 박카스라는 이미지 자체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킨다.


약국에서 슈퍼로 쫓겨가다
박카스 VS 비타500

피로회복제의 대명사가 된 박카스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1년, 정부에서 박카스를 의약외품으로 지정(박카스, 가스명수 등 48개)한 것이다.

그전까지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는 광고를 했던 박카스가 이제는 슈퍼에도 판매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박카스가 약이 아니라니.

판매처가 늘어났으니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하는 약사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여러모로(?) 박카스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던 일본의 리포비탄이 1999년에 슈퍼판매가 되었다가 망한 사례도 있었다.

판매망이 넓어졌지만 동시에 다른 건강음료와 계급장을 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녀시대 모으려고 열심히 마셨는데… 모으지 못해서 넣지 않았다)

약국 밖 세상의 강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광동제약의 ‘비타500’이다. 한국 최초의 마시는 비타민을 표방한 비타500은 첫 해에는 박카스 매출의 1/10밖에 팔지 못했지만, 몇 해만에 박카스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따라잡는 저력을 보여줬다. 약국에서는 박카스, 슈퍼에서는 비타 500이라고 할까?

동아제약은 박카스D는 약국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박카스F(과거에 D에서 F가 되었다가 사라졌음)를 부활시켜 편의점과 마트에 공급을 했다.

그렇다면 비타500은 어떻게 이겼냐고? 아니 여전히 둘은 치열한 맞수다. 박카스에게 역사와 감성이 있다면, 비타500은 수지… 이제 워너원이 있거든.


캄보디아 진출
그리고 박항서… 형이 왜 나와?

노동이 있는 곳에는 피로회복제가 필요하다. 일찍이 일본은 1962년 다이쇼제약에서 나온 리포비탄이 시작을 열었고, 한국에는 박카스가, 중국에는 리커라는 피로회복제가 있다. 태국의 끄라팅 댕 역시 비슷한 길을 걷다가 레드불로 리뉴얼된다.

(받아랏 이것이 한국노동의 맛이다)

한국의 야근러로 만족하지 못한 박카스는 글로벌 시장을 두드린다. 그중 캄보디아는 박카스의 해외진출기지다.

2009년 캄보디아에 상륙한 박카스는 2011년에 52억 원의 매출로 에너지 드링크 시장 1위인 레드불을 제쳤고, 지난해에는 626억 원을 기록했다. 캄보디아의 사회분위기가 우리나라의 6-70년대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국, 캄보디아 그리고 세 번째 흥행은 의외의 국가에서 나왔다.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의 승승장구 덕분이다. 그리고 박항서와 박카스의 이름이 비슷한 덕분이다.

박카스는 캔 표면에 박항서 감독의 사진과 사인을 인쇄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4개월 동안 베트남에서 박카스가 약 280만 캔이 팔렸다. 아마 지난 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전에서 박카스는 한국 말고 베트남을 응원하지 않았을까.


오늘도 수고한 당신에게
박카스가 함께하길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박카스의 맛과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메시지는 달라졌다. 과거 박카스가 도전과 패기를 말했다면 요즘에는 “난 오늘 나에게 박카스를 사줬습니다”라는 위로를 건넨다.

여전히 밤을 새워 공부하는 학생은 많고, 야근으로 하루의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그들의 고단함의 끝에 박카스가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