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재우느라 기진맥진한 필자에게 결혼을 한 달 앞둔 예비 신랑이 전화를 걸어왔다. 단도직입적으로 결혼의 단점을 묻는 그에게 필자는 ‘결제의 자유’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말 없이 흐느꼈다.

국립국악원

결혼을 코앞에 둔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결혼하면, 지갑에서 내 맘대로 돈을 꺼내 쓸 자유가 사라진다! 못 사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당신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취미생활이 아니라면 신혼집에 들어가기 전에 질러야 한다. 신혼집에 내 물건을 자연스럽게 들고 가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결혼 후 상대방을 설득해서 이해시키고 신혼집에 택배로 받는 것이 쉬울까? 답은 정해졌다. 가자.

*참고기사 : 예비 신부(뷰티디바이스) 편

일단 신혼집에 게임기 하나는 껴안고 간다

결혼전에 구매

남자는 자신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결혼 후 당신의 안식처는 낚시터 또는 게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일단 신혼집에 들어갈 때 플스 엑박 스위치 중 하나쯤은 품에 꼭 껴안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건 원래 내 거였어, 새로 산거 아냐” 지문을 덕지덕지 묻혀서 중고처럼 위장하는 건 필수다. ‘게임은 돈 안 드는 취미생활이야’라는 숙어도 외워두자.

▶ 난 게임이 취미다 : 플레이스테이션4 프로

결혼전에 구매

당신이 게임 마니아라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다. 가장 많은 게임 타이틀, 주요 게임 타이틀의 우수한 한글화, 게다가 독점작들도 많다. 소니 특유의 폐쇄적인 시스템도 PS4 이후로는 많이 개선해서 사용자 편의성도 좋아졌다.

플스4 프로는 기존 플레이스테이션4에 비해 그래픽 연산 성능이 2.3배 강화된 모델. 강화된 그래픽 연산 성능을 바탕으로 초당 60프레임 플레이, 4K 해상도 지원, 더 향상된 디테일 등을 경험할 수 있다(이상 지원되는 게임에 한함). 따라서 당신이 혼수로 4K UHD TV를 계획하고 있다면 일반 플스4 보다는 프로를 미리 질러 보유하는 것이 현명하다. 기본 1TB의 용량으로 여러 종류의 게임 타이틀을 삭제하지 않고 보유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 성능 덕후 : 엑스박스 원 X

결혼전에 구매

플스4 프로도 성능이 꽤 좋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녀석도 있다. 바로 엑스박스 원 X다(Xbox One X). 물론 강력한 성능을 거머쥐고 싶다면 희생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엑박은 플스4에 비해 지원하는 타이틀의 수도, 독점작의 수도 부족하다. 플스4 유저들이 재미있어 보이는 독점작을 플레이하는 동안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주요 대작들은 멀티플랫폼으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작 위주로 플레이한다면 단점이 다소 상쇄될 것이다.

엑박 원X는 그래픽 연산 성능이 약 6테라플롭스로 현존하는 모든 콘솔게임기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많은 게임 타이틀에서 업스케일링 4K가 아닌 네이티브 4K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 아름답고 디테일하며 초당 프레임 수도 적절히 확보되는 게임 화면을 경험할 수 있다. 활용성 좋고 진동 피드백이 강력한 패드도 엑박의 장점.

▶ 마리오 덕후 : 스위치

결혼전에 구매

당신이 젤다의 전설이나 마리오 프랜차이즈에 아련한 향수와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면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신혼집에 가져가야 할 게임기는 스위치다.

기기의 성능은 앞서 언급한 두 경쟁모델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 비주얼로 승부하기엔 성능에서 역부족이다. 하지만 휴대가 가능한 게임기라는 매력이 있다. 거치형으로 TV나 모니터에 연결해서 즐길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휴대용 게임기로 들고 다니면서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아내, 자녀와 여가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모션 인식 센서를 장착한 조이콘 덕분에 플스4나 엑박같은 평범한 패드 활용 플레이보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 Wii 시리즈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일부 대작 타이틀에서도 조이콘을 활용해서 직접 칼을 휘두르는 등의 액션을 취할 수 있다. 마리오카트, 마리오오디세이처럼 스위치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독보적인 타이틀도 장점이다.

PC는 미리미리 업그레이드하거나, 몰래 업글할 때를 대비한다

결혼전에 구매

예비 신부가 풀옵션 144Hz를 고집하는 헤비 게이머가 아니라면, 당신이 수십만 원짜리 그래픽카드를 구매하겠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가진 PC도 인터넷과 드라마 감상 정도는 잘 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어겠는가? 그렇다. 일단 최소 몇 년은 옵션 타협하며 버틸 정도로 알맹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때가 아니면 지를 수 없다. 지른다 해도 최고급 부품은 못 지를 것이다. 대작 게임을 최하옵으로 즐기는 당신의 모습, 상상이 되시는가?

▶ 최소 5년을 대비한다 :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80 & 2080 Ti

결혼전에 구매

아이가 태어나면 신랑신부 취미생활을 위한 지출은 크게 줄어든다. 아이가 기저귀도 떼고, 말도 잘하게 되고, 어른과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나이(3~4세)가 되어야 잠깐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결혼 전 업그레이드의 포인트는 최소 3~5년은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픽카드의 성능향상 주기를 보면 약 5년 전 최상급 그래픽카드가 5년 후에는 중급 그래픽카드 수준이 된다. 예를 들어 2013년의 최강자 GTX 780Ti는 현재 GTX 1050 Ti와 비슷한 성능이다.

자, 견적이 나온다. 3년을 버티고도 상옵 이상, 5년을 버티고도 중옵 이상으로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정답은 최상급 그래픽카드다. 메인스트림 급의 그래픽카드를 사서 그때그때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3D 최신 게임을 하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사고 싶다’고 말해서 허락받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결혼전에 구매

▲ MSI 지포스 RTX 2080 Ti 벤투스 D6 11GB

RTX 2080 Ti 중에서 가성비로 손꼽히는 모델이다. 경쟁모델들이 3팬으로 화려한 모습을 뽐내는 가운데 2팬의 수수한 모습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당신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신혼집 PC의 크고 화려한 그래픽카드는 배우자의 경계심만 더 키울 뿐이다. 최대한 수수한 것으로 가자.

코어 클럭은 1,350MHz, 부스트 클럭은 1,545MHz로 비싼 고급형 RTX 2080 Ti에 비하면 부스트 클럭이 낮은 편. 하지만 낮은 부스트 클럭은 작은 크기라는 장점이 상쇄할 수 있고, 성능을 원한다면 추가적인 오버클럭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 제조사 설명 기준 268mm의 짧은 길이 덕분에 크고 넓은 케이스가 아니어도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제품의 장점이다.

external_image

▲ 갤럭시 GALAX 지포스 RTX 2080 WHITE LABEL D6 8GB

RTX 2080 Ti가 부담스럽다면 RTX 2080도 있다. 4K 해상도에 욕심내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도 5년은 거뜬하다. 심플하고 멋진 2팬 디자인과 LED 효과, 갤럭시 특유의 화이트 감성까지 장착한 이 그래픽카드는 화이트 컨셉 본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고사양 그래픽카드가 될 것이다.

코어 클럭 1,515MHz, 부스트 클럭 1,800MHz로 래퍼런스 대비 오버클럭 되어 있고, 제조사 설명 기준 268mm로 이 제품 역시 길이가 짧은 편이라 케이스를 가리지 않아서 좋다.

▶ ‘몰래 업그레이드’를 위한 큰 그림 : 크고 평범하게 생긴 케이스

결혼을 앞둔 당신에게 케이스란 당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작고 화려한 것보다 크고 묵직하고 투박한 것을 고르는 것을 추천한다. 괜히 배우자의 경계심을 키울 필요도 없거니와, 투박한 케이스는 내용물을 나중에 몰래 바꿔치기해도 티가 안 나서 좋다!

결혼전에 구매

▲ CORSAIR OBSIDIAN 750D Airflow

일단 크다. 굉장히 크다. 케이스 길이 560mm, 높이 546mm, 너비 235mm, 무게 9.7kg을 자랑하는 빅타워 케이스다. 크기가 큰 만큼 확장성은 최상급이다. 광활한 내부공간에 5.25인치 전용 베이 3개, 2.5인치 전용 베이 4개, 3.5/2.5 콤보 베이 6개가 마련되어 있다. 남아도는 SSD 베이는 당신의 비상금을 숨겨두는 수납공간으로 활용해도 되겠다.

그래픽카드 장착 최대 사이즈는 450mm. 가장 큰 그래픽카드가 보통 400mm 전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공간이 남아도는 수준. 몇 년 뒤 최고의 그래픽카드를 몰래 장착하더라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우직함이 매력이다.

LED팬이 기본 장착되어 있지만 아주 화려한 팬은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좌측면이 투명 패널인 것은 본체를 방 왼쪽 벽에 붙여서 해결하자. 다행스럽게도 우측면은 투명이 아니라 불투명 철판이다. 만약 아내에게 PC 업그레이드를 본격적으로 허락 받는다면 투명한 쪽을 드러내서 화려함을 뽐내는 본체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제품의 장점이다.

external_image

▲ Fractal Design Define XL R2

크기는 앞서 살펴본 커세어 케이스와 거의 동일. 그런데 무게가 훨씬 더 무겁다. 16.4kg이다. 왜 이렇게 무거운고 하니, 저소음을 장점으로 내세운 케이스이기 때문. 곳곳에 차음재가 적용되어 있고, 각 부분의 두께도 일반적인 케이스보다 훨씬 두껍다. 크고 묵직하고 조용하고, 측면도 모두 철판으로 막혀 있어서 눈길도 끌지 않는다.

차음성을 좋게 하기 위해 사이드 패널과 전면 패널의 두께를 늘려 내부 공간에서 손해를 봤지만, 그래도 태생이 빅타워인지라 작은 케이스들보다 훨씬 여유롭다. 5.25인치 전용 베이 4개, 3.5/2.5 콤보 베이 8개를 지원하며, 그래픽카드는 평상시 330mm, 최대 480mm 크기까지 장착할 수 있다.

제조사 실험 결과 부팅 후 평상시 소음이 1.4db로, 거의 무소음 상태에 가까운 저소음을 실현했다고 하니, 조용하게 존재감 없이 고사양을 즐기고 싶다면 이 케이스를 신혼집에 싸 들고 가는 것이 좋겠다.

소소한 주변기기도 이참에 욕심을 부려야 한다

external_image

화려한 게이밍 기어, 고가의 주변기기의 필요성을 배우자에게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 나도 고오급 키보드란 것을 좀 써보자 : ABKO AR96 CNC 풀 알루미늄 키보드

external_image

ABKO에서 큰맘 먹고 직접 기획 개발한 CNC 가공 풀 알루미늄 키보드. 이미 키덕키덕 영상 리뷰에서 살펴본 바 있지만 이건 제법 물건이다. 물건인 만큼 가격도 물건이긴 하지만.

CNC 가공한 무게 2.1kg의 풀 알루미늄 하우징은 속이 꽉 들어차서 통울림을 상당히 잡아준다. 덕분에 저소음 스위치와 조합하면 어린 자녀와 아내가 깰까 조심조심 몰컴하는 상황에 딱이다. 스위치 교체형이기 때문에 질리면 언제든지 다른 스위치로 바꿀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 RGB 효과도 화려하고, 넘버패드까지 모두 갖춘 배열이기 때문에 문서작업에도 불편함이 없다.

▶ 헤드셋, 한방에 끝판왕으로 : 젠하이저 GSP600

external_image

헤드셋 같은 오디오 주변기기도 결혼 후 고급 제품을 쉽게 들여놓을 수 없는 분야다. 보급형 제품도 최소한의 소리는 다 내주기 때문에 고급형을 사겠다는 당신을 아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추천해보는 이 제품은 젠하이저에서 올해 새로 출시한 고오급 헤드셋이다. 마이크가 딸린 게이밍 헤드셋으로는 가격과 고급스러움의 끝판왕이라고 보면 되겠다. 검빨 감성 살린 디자인으로 게이밍 헤드셋임을 뽐내지만 과하지 않다.

가상 7.1채널 서라운드를 지원해서 어느 방향에서 적이 접근해 오는지, 총소리와 발소리의 방향을 정확히 알려준다. 마이크는 배경 소음과 숨소리를 최소화하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해서 대화 전달력을 향상시켰고 음향기기의 명가 젠하이저의 물건답게, 음악감상 용도로도 출중하다.

행복한 결혼생활, 평온한 가정을 위한 준비물

만약 이 글이 막무가내씩 뽐뿌 같다면 다시 한번 숨을 고르며 냉정하게 생각해 봐도 좋다. 과소비를 막기 위해 여러 번 다시 생각해 봐도 좋다. 결론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혼 후 당신의 지갑에 닥쳐올 위기는 환상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다! 신혼집에 택배로 받아 부부싸움 일으키지 말고, 애초에 질러서 입주할 때 내 물건으로 가져가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얻을 수 있다! 가즈아!

기획, 글, 사진 송기윤 iamsong@danawa.com

(c)가격비교를 넘어 가치쇼핑으로, 다나와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