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빌딩 숲을 홀로 가로지른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해외에서 날아온 음료다. 로비에서 사람들 틈에 정체를 숨긴 있는 사이. 택배 아저씨가 그의 등을 두드린다. “음료 시키셨죠?”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도 잠시. 그가 입은 옷이 ‘코카-콜라’였음을 깨닫는다(누가 봐도 음료를 받으러 올 사람이네). 그렇다. 그는 옷부터 음료로 도배된 남자. 음료신상털이 마시즘이다.


중국음료는
한 번 시도해볼 생각이 있으신지

마시즘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연락을 받는다. 주로 자신이 마셔보지 못한 음료에 대한 요청이다. 하지만 문의를 보내는 분들의 정성이 가득해서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문제는 그게 ‘사약‘이나, 엔진오일 같은 것이라는 거. 음료계의 기미상궁은 여러모로 힘든 직업이다.

하지만 이번 문의는 당돌했다. 중국에서 직접 음료를 보내겠다는 것. 한국 못지않은 신박한 음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중국음료는 해본 적이 없었네. 흔쾌히 OK를 날렸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음료가 날아왔다.

(강려크한 포장)

작년에 못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디어 받는 기분이었다. 아니 마시즘 2주년 기념 선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코드명 ‘소피앤보니’님은 중국음료를 종류별로 모아서 보내주었다. 아아 당신은 마시즘의 산타클로스. 마시즘의 문익점…

(0개국어 마시즘을 위한 친절한 리뷰)

심지어 음료마다 소개와 평을 남겨줬다. 이것이 스타들만 받는다는 조공인가. 아니다 음료계의 조무래기. 마시즘에게 오는 명령인 것이다. 자 이제 중국음료의 세계로 가보자. 리뷰를 잘하는 길만이 은혜에 보답하는 거라고(일해라 마시즘!).


중국은
차 음료의 나라 아닙니까

(왼쪽부터 차파이, 캉스푸 산사열매차, 캉스푸 배맛차)

1. 차파이 장미여지홍차
먼저 마셔본 녀석부터 시작하자. ‘차파이(茶π)’ 아이스티다.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구매한 그 녀석. 마라탕이 너무 매워서 여러 병 시켰던 그 녀석이다. 중국어를 읽을 줄 몰라서 ‘장미홍차’라고 불렀는데. 라벨도 맛도 한국에서 좋아할 만한 녀석이다.

장미홍차라는 이름이 제대로 붙은 것은 장미향이 났기 때문이다. ‘미닛메이드 플라워 장미&포도‘에서 느꼈던 장미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맛은 깔끔한 아이스티다. 마라탕에게 뺨 맞고 차파이에게 위로를 받았던 그때가 떠오른다.

2. 캉스푸 산사열매차
다음은 중국의 농심 라면회사 캉스푸(꽝스프, 康師傅)에서 만든 차 음료다. 원래 라면 말고 식용유 회사였다고 하니까 음료로 외도를 이해해주자. 소피앤보니님이 보낸 것은 ‘훈제한 산사열매로 만든 차’다(이상하다며 보내주셨다 아니 왜).

산사열매를 먹어보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자마자 건강식품의 포스가 느껴진다. 어렸을 때 엄마가 건강에 좋다는 식물은 다 넣어서 끓인 물의 포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마셔보니까 싸한 매실음료. 매실음료의 달콤함은 없지만 싸하게 시큼한 맛이 난다. 엄마의 물보다는 맛있는데 맛이 강해서 이건 이것대로 다른 물이 필요할 것 같다.

3. 캉스푸 배차
다음은 배차다. 중국의 ‘갈아만든 배’가 내게로 온 것이다. 뚜껑을 여니까 갈아만든 배의 향이 난다. 향은 더욱 시큼하지만, 갈아만든 알갱이는 없다. 맛 역시 새콤한 느낌이 훨씬 강하다. 아마 배음료라는 사실을 적어주시지 않았다면 레모네이드가 아닐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동양의 레모네이드는 배차였던가.


컵커피 대신에
컵밀크티

(샹피아오피아오 팥맛, 오리지널, 녹차맛)

4. 샹피아오피아오 오리지널
커피보다 차가 더 가까운 나라답게. 중국은 편의점 컵음료도 밀크티가 많은 듯하다. 중국에서는 밀크티를 ‘나이차’라고 부른다고 한다. 샹피아오피아오(香飄飄)는 중국 어딜 가도 있는 차 브랜드라고 한다.

지난겨울 따뜻한 데자와로 단련된 마시즘에게 이 정도는 쉬운 리뷰다. 먼저 오리지널을 마셔보았다. 향은 달지만 맛 자체는 달지 않은 연한 데자와였다. 은은하게 고소한 것이 자판기에서 뽑아먹기 좋게 생겼다. 무엇보다 고소한 음료 속의 알로에 알갱이의 식감이 재미있어서 계속 들이켜게 된다. 본격 코코팜 밀크티 맛.

5. 샹피아오피아오 녹차맛
다음은 확장 버전이다. 누가 봐도 저것은 녹차라는 것을 알 것이다. 심지어 우유를 넣었으니까 녹차라떼 정도의 맛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맛 자체도 우리가 카페에서 마시는 녹차라떼의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이 음료에는 ‘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오리지널이 알로에 알갱이라면 이번에는 콩알이다. 하지만 보통 콩이 아니다. 콩밥도 못 먹는 마시즘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달달한 콩. 식빵에 박혀있던 초록색 단 콩의 맛이 난다. 사실 콩에 빠져버려서 혼자서 샹피아오피아오 콩맛이라고 부르고 싶다.

6. 샹피아오피아오 팥맛
콩을 넘어섰더니 팥이 왔다. 과연 마시즘의 독자들은 음료를 단계별로 고르는 포스가 대단하다. 팥 특유의 향이 더해져서인지 오리지널보다 나이차의 고소한 향이 가득 풍겼다. 맛도 강하다. 그리고 진짜 팥도 들어가 있다. 다만 문제는 콩보다 싫어하는 게 팥이라서 때아닌 눈물을 흘렸다는 것.

(이해를 위해 만드는 과정도 올립니다)

샹피아오피아오는 커피와 달리 여러 재료가 들어가다 보니(차분말+우유+알갱이) 컵을 채운 재료가 가득했다. 나름 구성품도 마음에 들고 만들어 마시는데도 재미있었다. 중국에 가면 더욱 많은 컵 나이차 종류가 있다고 한다. 역시 중국은 스케일이 다르군. 데자와 힘내라!


중국에서는 스프라이트와
코카-콜라를 뭐라고 부르지?

(스프라이트 아니고요 쉐삐고요, 코카-콜라 아니고 커코우커르어)

7. 커코우커르어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놀랐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의 갈증을 풀어줄 녀석이 필요했다. 바로 탄산음료다. 과연 탄산음료계의 1, 2선발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가 왔다. 아니 중국에서는 커코우커르어(可口可乐)와 쉐삐(雪碧)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아 어려워.

보통의 코카-콜라였다면 나도 마셔봤는데!라고 하려고 했는데 바닐라 커코우커르어로 구해다 주셨다. ‘코카-콜라 오프너, 바닐라 코-크‘편에서도 말했었지만 역시나 강력한 향 때문에 일반 코카-콜라와는 다른 맛이 난다. 중국에는 바닐라 말고도 생강 버전도 있다는데. 생각만 해도 우리가 마시는 코카-콜라가 맛있어지는 효과가 난다.

8. 쉐삐
쉐삐. 일단 욕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이다라고 하면 스프라이트나 칠성사이다를 주지만 이 말은 한국과 일본 한정이다. 중국에서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면 쉐삐라고 불러야 하고, 해외에서 사이다를 마시려면 스프라이트라고 해야 한다(사이다는 원래 사과주다).

우리가 아는 스프라이트는 초록 초록한 게 특징인데 이 쉐삐는(욕이 아니다) 왜 파란색인가. 그것은 바로 제로칼로리 버전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제로칼로리 스프라이트는 파란색이 메인 컬러라는 사실. 중국어를 알지 못해도 정체를 알아냈다는 사실에 으쓱해진다. 왠지 모르게 달달함이 좀 적은 느낌. 역시 제로인가. 이런 쉐삐.


선물리스트 중에
하나인 홍콩두유

(비타소이 초코, 비타소이 오리지널)

9. 비타소이 오리지널
비타소이(Vitasoy)는 이름을 많이 들었다. 홍콩에 가면 꼭 마셔야 할 녀석으로 알고 있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두유이기도 하다. 중국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두유를 정말 정말 많이 마신다는 소피앤보니님의 현지피셜 말씀.

비타소이를 마셔볼 차례다. 한국 두유는 담백한 맛과 고소한 향의 존재감이 강한 음료다. 하지만 비타소이의 경우는 콩의 존재감이 더욱 크다. 비 오는 날 콩밭에 가면 나는 풀냄새 같은 게 났다. 맛 자체는 담백함의 상징인 베지밀A보다 더 담백했다. 다 마시고 난 후에 약간 단 맛이 점을 찍고 가는 정도였다.

10. 비타소이 초코
비타소이 초코는 거의 초코우유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한국의 초코우유들이 (초코에몽을 시작으로) 단맛의 비중이 상당히 강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랜만에 만난 민간인 초코우유 느낌이었다. 다만 맛이 폭탄처럼 달지 않다는 것이지 음료의 무게감 자체는 두유라 조금 무겁다.

중국에서도 나처럼 두유를 잘 못 먹는 사람이 있다면 초코버전으로 마시면 될 것 같다. 비타소이에서는 이 외에도 보리맛, 멜론맛, 커피맛, 코코넛맛 등 다양한 두유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끄악).


비슷한듯
다른 중국의 음료

중국. 가까이에 있는 나라였음에도 어떤 음료를 마실까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차의 본고장이니까 다양한 차를 우려 마실 줄 알았는데. 몹시 간편하면서도 다양한 종류의 차 브랜드에 굉장히 새로움을 느꼈다. 심지어 다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들었어.

국민음료 하나를 보았을 때는 맛의 품질을 보게 되지만, 음료의 종류들을 한 번에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취향이나 생활을 살짝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점이다. 음료만 마셨는데 세계여행을 한 기분이다. 한국음료에서 이제 중국을 찍은 음료계의 부루마블 마시즘. 다음 행선지로 주사위를 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