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걔 헤어진 것 같던데?”
친구의 엉뚱땅 파는 소리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프사가 바뀌었거든” 아니. 프로필 사진 하나 바뀐 것을 가지고 그런 소리를 하다니! … 정말 배운 녀석이구나. 카톡을 켜보니 친구의 커플 프로필 사진이 사라져 있었다. 카톡을 켠 김에 그동안 연락을 못한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들을 살펴본다. 얘는 취직했고, 얘는 결혼했고, 얘는 아 우리 아빠구나. 등산하셨네.
그렇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프로필 사진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음료에 붙어있는 로고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 마시즘은 카톡 프사 같은 음료들의 로고 변화를 살펴본다. 코크가 잘 사나, 펩시는 무슨 일이 있나, 스벅은 셀카를 찍을 줄 모르나…
로고계의 패피
펩시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이유. 그것은 나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프사를 바꾸는 횟수가 너무 많다면? 그것은 짝사랑에 빠졌거나, 애정결핍이 있거나, ‘펩시’일 확률이 크다. 그들은 관심을 원하며 프사를 바꾼다. 펩시 역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열심히 로고를 바꿔왔다.
1898년 만들어진 펩시의 첫 로고는 지금과 달랐다.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쓰인 펩시콜라라는 글씨는 코카콜라의 로고와 닮았다. 만들어진 당시 유행에 맞춘 로고 디자인일지 모르겠지만 펩시는 이인자다. 로고마저 코카콜라와 비슷하다면 유사 콜라(?)의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때 터졌다.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 것이다. 펩시콜라는 기존의 로고에 빨간색과 파란색, 하얀색까지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병뚜껑 로고를 만든다. 카톡으로 치자면 태극기를 올린 것과 비슷하다랄까? 이후 병뚜껑 모양이 동그라미로 바뀌며 우리가 아는 태극기를 연상하는 펩시가 된다.
현재의 펩시 로고는 병뚜껑도 박스도 없어지고 동그라미만 남았다. 이를 펩시 글로브(Pepsi Globe)라고 부른다. 더더욱 태극기와 닮아진 로고 모양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펩시를 떠올렸다는 후문이 있었다. 의문의 PPL 성공적.
변화보다 한결같음
코카콜라
프사를 보면 배경은 바뀌었는데 얼굴 모양과 각도가 항상 똑같은 친구가 있다. 우리는 이들을 ‘각도기’라고 부른다. 음료 로고계의 각도기는 누굴까? 바로 ‘코카콜라’다. 펩시의 화려한 변신에 맞서서 코카콜라가 택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그렇다. 진정한 맛집은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다.
지난 <지극히 사적인 코카콜라의 탄생>에서 이야기했듯 1886년 존 펨버튼이 만든 콜라에는 멋진 이름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사업 파트너 프랭크 로빈슨에게 작명을 부탁했다. 그가 지은 이름이 ‘코카콜라(코카나무+콜라열매)’다. 드디어 이름이 생긴 코카콜라는 신문광고를 냈다. 그때의 로고는 무미건조한 글씨체로 적힌 COCA-COLA였다. 존 펨버튼은 로고가 필요함을 느끼고 프랭크 로빈슨을 찾았다. 문제는 프랭크 로빈슨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회계담당이었다는 것이다.
프랭크 로빈슨은 C자를 꼬아서 지금의 코카콜라 로고를 만든다. 다만 배경이 되는 빨간색 도형이 바뀌거나, 하얀색 리본이 생겼을 뿐이다. 1985년의 로고만 빼고 말이다. 1985년… 그것은 뉴코크라고 맛도 로고도 변신했다가 폭망한 코카콜라의 암흑기였거든(ㅠ).
다가와 다가와 그만 다가와
스타벅스
어쩌면 코카콜라나 펩시보다 더욱 많이 보는 음료 로고는 ‘스타벅스’다. 스타벅스의 로고는 인어, 그중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을 참고하여 만들었다. 덕분에 한국은 고대 그리스보다 세이렌이 많이 등장하는 던전이 되었다.
1971년, 커피 애호가인 고든 보커, 제럴드 제리 볼드윈, 지브시글은 스타벅스를 창업한다. 그들은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처럼 커피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포부로 로고를 만들었다. 의도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심의가 문제였다. 초기 스타벅스 로고는 세이렌의 상반신 노출이 심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87년, 스타벅스는 한 가지 꼼수를 냈다. 세이렌의 머리카락을 길러 상반신을 가리는 것이다. 그랬더니 자세가 문제였다(다리를 왜 그렇게 펴?). 1992년 스타벅스는 세이렌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두 꼬리(다리)가 무엇인지 모르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냥 빼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뺐다. 2011년, 스타벅스는 로고에서 세이렌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빼버렸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들의 마지막 선택이 스타벅스도 커피도 아닌 세이렌이라니! 게다가 로고를 바꿀때마다 세이렌이 점점 다가오는 기분이 들잖아!
반면 사우디 아라비아의 스타벅스 로고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스타벅스 로고 속 세이렌이 물 속에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스타벅스 로고를 바꾼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결국 스타벅스만이 아는 일이다. 왜 세이렌을 물 속에 숨겼는지. 아니 왜 세이렌을 그렇게 고집하는지.
100년 만에 여친을 만난
조니워커
스타벅스가 세이렌에 대한 무한 사랑이라면, 세계 1위 스카치위스키 ‘조니워커’는 근성의 걷는 남자가 떠오른다. 알렉산더 워커(존 워커의 손자)와 점심식사를 하던 삽화가 톰브라운이 냅킨에 그려준 그림을 100년 동안 사용한 것이다.
톰 브라운이 그린 이 캐릭터의 이름은 ‘스트라이딩 맨(Striding man)’이다. 그는 그림 밑에 ‘Born 1820 – Still Going Strong’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그림과 문구의 조화로 조니워커는 1820년부터 오직 위스키 외길을 걷는 이미지로 각인이 되었다.
스트라이딩 맨은 그림체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걷고 있다. 하지만 2000년에 걷는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는 일생일대의 변화(?)를 시도한다. 그동안 조니워커가 전통을 바라보고 걸어왔다면, 이제는 미래를 향해 걸으며 진보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선언이 아닐까?
2018년 조니워커의 로고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했다. 지난 2월, 조니워커 최초로 걷는 여성 ‘제인 워커’가 만들어진 것이다. 스트라이딩 맨 걷기 인생 100년 만에 드디어 여성이 등장했다.
제인 워커는 그동안 남성 중심이었던 위스키 브랜드의 변화였다. 실제로 조니워커를 만드는 위스키 제조 명장 중 50%는 여성이었음을 밝히며, 제인 워커의 판매금액 일부를 여성운동에 후원하였다. 덕분에 조니워커의 변신은 이슈도 되고, 소비자층까지 확대한 로고 변화의 좋은 사례로 남았다.
깜빡깜빡 붉은 별
하이네켄
수많은 편의점 맥주에서 ‘하이네켄’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로고다. 다른 애들이 갈색병일 때 초록병으로 나온 패기. 거기에다가 빨간색 별이 주는 신호는 어서 와서 하이네켄을 고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정신 차려, 맥주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잖아.
하이네켄의 라벨은 변화가 적은 편이다. 초록색 테두리에 별 모양.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별 모양이 빨개졌다가, 하얗게 되기를 반복한 것이다. 1930년대, 하이네켄을 별 모양을 붉은색으로 바꿔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했다. 사람들은 빨간 별을 보면 하이네켄을 연상하겠지?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빨간 별을 보면 하이드ㄹ…아니 공산주의를 떠올렸다.
공산주의에 상징을 빼앗긴 하이네켄은 울며 겨자먹기로 별을 하얀색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붉은 별 모양을 되찾는다. 이제 아무도 하이네켄의 로고를 보고 공산주의자라고 할 사람을 없을 테니까(아쉽게도 헝가리에서 하이네켄의 로고가 공산주의를 떠올린다며 퇴출될 뻔했다).
하이네켄은 별의 색깔만 바뀐 것은 아니다. 하이네켄을 자세히 보면 알파벳 ‘e’가 뒤로 살짝 구른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e를 기울여 웃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 것이다. 평소 모르고 마셨던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하이네켄에서 e만 보이니 주의할 것. 심지어 e가 3개나 된다고!
예쁘다고 다가 아니야
음료 로고의 의미
음료에 붙어있는 로고는 단순히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로고가 변했다는 것은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 바뀐 것이다. 맛은 여전할지 몰라도, 브랜드의 분위기가 바뀌면 느껴지는 감흥이 다르다. 우리가 음료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맛이 아니라 로고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우리가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문득 프사에 주목하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