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여우의 세치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벗이다. 예전 직장에서 아픔을 겪었지만 다행히 마음의 병이 들지 않고 잘 이겨낸 그라 더 마음이 쓰였다.

국립국악원

“오늘은 제가 맛있는 계란 프라이 대접할게요”

뭐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광화문 인근 김치찌개 식당으로 안내했다. ‘대독장 김치찌개’.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이곳은 계란 프라이를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되는 곳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그를 위해 정성껏 계란 프라이를 부쳐 그 앞에 내밀었다.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요새 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고용환경이 안 좋다 보니 그래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그의 어색한 웃음을 보니 마음이 더 아려왔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자칫 어설픈 동정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 덕이 있으셔서 그런 거죠. 워낙 인맥이 좋으시니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거 아닐까요?”

그렇지도 않은걸요…
사실….

그는 큰 한숨을 내쉬며 어둠의 기운을 잠시 불러일으켰다.

“자주 만났던 동종 업계 모임이 있었어요. 업계 모임이라 정보도 교류하고 서로 도울 거 있으면 돕고 그런 모임이었어요. 서로 상생하면서 동반 성장하자는 그런 취지랄까요.

그중 한 분이 임원이셨는데, 늘 우리에게 함께 하자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리고 마침 그쪽 회사에서 경력직 구한다고 잡코리아, 사람인 등에 모집공고가 쫙 올라왔더라고요. 은근히 기대했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먼저 연락하지는 못했어요. 모집 분야랑 뽑는 직급이 저랑 맞는 것 같았지만…

뭐… 그냥 솔직히 좀 서운하더라고요. 모임을 자주 주관하셔서 친하다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더라도 연락 한번 정도는 주셔서 안부를 물어봐주실 줄 알았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괜한 말을 꺼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화제를 돌려보려 시도했다.

여기 김치찌개 괜찮아요

“큰 기대 없이 편히 먹고 나가면 되는 곳이랄까요. 무엇보다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렇게 직접 계란 프라이를 대접할 수 있잖아요. 마음을 담은 계란 프라이예요”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모임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사실 업계 모임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모임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 형성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그런데 그분은 그게 아니었나 봐요”

“음……”

“그분은 업계 모임을 자기 과시용으로 생각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업계 모임을 통해 사람을 얻기보다 SNS용 이미지를 얻고자 했던 것 아닌가 싶어서요. 지인 분이 그분께 넌지시 제 이야기를 했나 봐요. 그런데 이런저런 핑계로….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사실상 거절을 당한 셈이죠”

그의 표정에서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그의 도움을 바라고 모임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 모임이 이어지면서 서로 간의 신뢰가 쌓였고, 이는 사람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업무적인 관계에서의 신뢰로도 비칠 수 있었으리라.

사실 난 그 임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와 처음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가 임원이 된 이후부터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SNS도 끊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SNS에 올라오는 그의 타임라인에 거부감이 생겼다고 할까.

그는 모임 사진을 자주 올렸는데, 자신의 능력보다는 회사나 직함의 위세를 빌어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모습이 점점 강해졌다. 솔직히 불편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어쩌면 저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자존감이 낮을 때인 것 같아요. 내 자존감이 낮으면 내가 가진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꾸 내 주변의 잘난 사람, 멋진 환경 등을 호소하더라고요”

나부터 반성했다. 나 역시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부류에 속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저도 무직이었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때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하고 동굴 속에 갇혀 살고 있을 때가 있었죠. 속된 말로 그때 저도 주변인을 팔아서 사람들에게 저를 과시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때가 있으셨어요?”

네. 그럼요

“그런데 그때 알았죠. 이런 때일수록 나의 가치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요. 어차피 주변인을 강조하면 결국 내 자존감은 더욱더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인의 명성에 자꾸 더욱 의존하게 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가 나 스스로를 귀하다 생각해야 해요. 내가 빛나야 저를 귀히 여기는 분들이 생기고 그분들이 제 곁에서 머물러 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 주변에 아무리 멋진 사람, 좋은 환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제가 아니잖아요. 옛말에 ‘호가호위’라는 게 이럴 때 쓰는 것 아닐까요?”

“호가 호위요??”

사실 호가호위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이라서 이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질 측면에서 맞닿아 있다.

“그분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회사의 직함이나 위세를 빌어 여러 모임을 주최하고, 제 아무리 자신의 덕망 있음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곧 한계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여우가 위세를 부릴 수 있는 것은 뒤에 호랑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니까요. 호랑이가 사라지면 여우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호가호위…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 나라에 소해휼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북방의 나라들은 이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가 초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에 초나라 선왕이 대신들에게 물었다.

“북방 오랑캐들이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러자 한 대신이 답했다.

“북방 오랑캐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을 두려워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여우가 호랑이에게 잡힌 적이 있는데, 그때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의 명을 받고 파견되어 온 사신으로 백수의 제왕에 임명됐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너는 뒤를 따라오며 모든 짐승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확인하라’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여우를 앞장 세우고 뒤따라갔는데, 모든 짐승들이 여우가 보이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앞장선 여우 때문이 아니라 뒤에 오는 호랑이 때문이었지만, 호랑이는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만난 이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참기로 했다. 자칫 너무 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겨우 마음을 추스른 그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갈까 걱정돼서다.

“그냥 그분에 대해서는 떨어 버리세요. 그분은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거예요”

“고마워요. 그래도 조금 홀가분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부디 좋은 생각만 하세요.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지금 나 자신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기예요. 남들이 뭐라 하든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큰 일을 겪었음에도 이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난 자신에게 칭찬이 필요한 시기예요.

더 많이 자신을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세요. 곧 좋은 소식이 있으실 거예요. 같이 고민해봐요. 저도 고민해볼게요”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김치찌개: 7,500
주소:서울 종로구 종로1길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