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나는 좋은 리더인가

“저… 오늘 참여가 어려울 것 같아요.””오늘 뭐 먹을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우리는 시청역 인근에서 만나 무얼 먹을지 의견을 나눴다.

요즘 내가 꽂혀있는 닭갈비 아니면? 비가 오니 파전? 그것도 아니면 고기류를 좋아하는 동생들을 취향 저격 등갈비? 우리는 각자 의견을 냈고, 그 결과 전(부침개)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언제 인지부터….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 정신 세계엔 ‘비=전’이란 공식이 자리 잡았고,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비만 오면 전을 먹어야 한다는 걸신이 들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어려서부터 주변, 미디어 등을 통해 세뇌된 탓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은 부침개를 지칭하는 단어다. 부침개는 기름에 지져낸 음식을 통칭하는 것으로, 파전이 대표 선수 격이다.

교동전선생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과거 밀가루와 기름이 귀하던 시절 부침개는 잔치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고려 중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 당시 송나라 사절 중 하나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한다.

“고려에는 밀이 적어 화북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밀가루가 비쌀 때에는 녹두나 메밀로 만든 빈대떡이 부침개의 대표 격이었다고 한다. 빈대떡은 녹두를 주재료로 해서 그 안에 고사리, 쇠고기, 돼지고기, 나물 등을 넣고 기름에 부쳐낸 것이다.

부침개(전)라는 개념이 헷갈린다면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반죽해서 기름에 부쳐내면 다 ‘부침개’구나라고 말이다.

해물을 듬뿍 넣고 파를 길게 넣어 부쳐낸 것은 해물파전, 동태포를 넣고 노릇노릇 부친 것은 동태전, 매콤한 김치를 넣어 부쳐내면 김치전, 매콤한 고추는 고추전, 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전 등 재료에 ‘전’자를 붙여주면 된다. 정말 셀 수 없이 무수히 많다.

그럼 도대체 왜 비 오는 날엔 전일까? 찾아보니 다양한 설이 있었다.

정리해보면…

그 첫 번째 설은 ‘소리’다. 부침개를 부칠 때 나는 소리가 빗방울이 떨어져 내는 소리와 닮았고, 그것이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우리는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면 부침개가 먹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은 ‘몸이 원해서’다. 우리의 몸은 습기가 많고 기온이 떨어지면 혈당이 떨어지게 되고, 몸은 뇌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달라고 전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탄수화물(전분)이 가득한 밀가루 요리인 파전이 몸속에 들어가면 당으로 바뀌게 돼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의학적 근거를 들기도 한다. 게다가 따끈하기까지 하니 으슬으슬 비가 내려 쌀쌀한 날에는 제격 아닌가.

이런 이유도 있지만, 내 생각엔 무엇보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찾는 이유는 바로 ‘특별한 재료 없이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간식’이어서 아닐까 싶다.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는 식재료를 가지고 밀가루에 반죽해 부쳐먹으면 그 어떤 것이든 먹음직스러운 ‘전’으로 재탄생되니 어찌 마다하겠는가.

예전 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을 상상해보면 비가 오는 날엔 논일과 밭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런 날에 그동안 쌓였던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려 부침개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 잔 하지 않았을까…

마치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만난 우리처럼…

그리하여 찾아가게 된
‘시청역 교동전선생’

시청역 4번 출구에서 내려 우측으로 쭉 내려와 맥도널드 사거리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보인다.

교동전선생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이곳은 테라스가 매력적이다. 일하시는 분께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아직 저녁 7시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미 자리는 만석이다.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가성비’이고 하나는 푸짐한 안주와 함께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막걸리가 있어서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아니… 좋아했던 막걸리는 ‘잣 막걸리’였다. 10년 전 남양주에서 처음 맛 본 잣 막걸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술을 못하는 아내마저도 반하게 할 맛이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잣 막걸리’는 2018년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맛보길 권한다.

아쉽게도 이날 찾은 시청역 교동전선생 메뉴에서는 잣 막걸리를 찾을 수 없었다. 지점마다 들여놓는 막걸리가 다른 듯했다.

‘몇 달 전 찾았던 ‘교동전선생 서여의도점’에서는 맛볼 수 있었는데…’

일행들에게 잣 막걸리 찬양론을 펼쳤던 내가 무색해졌다. 하지만 이내 대신할 막걸리를 찾았다. 바로 ‘배 막걸리’다. ‘배 막걸리’가 이 곳 인기 메뉴인 듯 보였다.

물론 이날 난 ‘배 막걸리’ 향만 맡았다. 향긋한 배향에 군침이 돌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날에는 금주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깨지 않기 위해 당당하게(?) ‘사이다’를 시켰다.

안주(?)로는 모둠전과 골뱅이 소면 무침을 선택했다. 4명이서 먹기에는 이 정도가 알맞겠다고 생각했으나… 조금 부족한 감이 있어 나중에 막걸리를 추가하며 육전도 추가했다.

다들 잘 지내지?

오늘 모임은 게임 속 인연이 현실로 이어진 이들과의 세 번째 정모다. 이날은 ‘어둠 속 기운이 가득한 그’와 ‘어디론가 끊임없이 캐러다니는 캐러다녀’ 그리고 류둥이 형제 중 형으로 호떡을 좋아하는 호떡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자리를 함께 했다.

매일 수다를 떨며 게임을 함께한 지 10개월째가 되어가고 있다 보니 이제는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주제가 되어버렸다.

이날 대화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10개월 동안 함께 해 온 게임을 그만둘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와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다.

우선 게임 유지 여부에 대해서는 비교적 쿨하게 결론이 났다. 이만한 게임이 없고 우리의 결속력 유지 차원에서 게임을 계속 이어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이어진 진지한 대화 자리. 진지한 표정으로 어느새 무장한 ‘어둠 속 기운이 가득한 그’가 입을 열었다. 듣고 나니 요새 그를 둘러싼 어둠의 그늘이 얼마나 짙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동안 그에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그의 말과 행동에 먹구름이 꼈구나… 그랬구나…’

점장으로서의 고민

‘어둠 속 기운이 가득한 그’는 요새 심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너무 피폐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제가 예전에 직원이었을 때 점장님이 참 존경스러웠어요. 매장 구석구석 궂은일을 늘 함께 해주는 모습이 멋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나중에 점장이 되면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점장은 ‘함께 하는 리더’였다. 직위의 높고 낮음이 없는 모두가 평등한 조직문화라고 할까.

그는 그런 자신이 이상적 점장의 모습을 닮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매장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윗분의 질책뿐.

매장 내 직원들의 불친절함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점장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을 받은 것이다.

그는 ‘직원들의 관리자로서 자신의 역량, 리더십’에 대해 고민이 컸다.

‘사이다’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정리해 설명했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리더는 실무 업무형 리더가 아니라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해결사라고 생각해. 점장은 윗분들에게 직원들의 우호적인 인상을 주고 그로 인해 직원들의 연봉과 처우 등이 높아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물론 일부 직원에게 갑자기 일이 몰려서 허둥지둥할 때 일을 배분하고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건 기본이고”

워낙 짙은 어둠이 그의 얼굴에 가득하다 보니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삼국지를 보면 말야. 리더인 조조가 있고 전투를 참전했어. 조조는 좌군, 우군, 중군 이런 지휘 체계를 만들고 지휘해. 조조는 전투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펴고 전투 상황을 지켜보며 지휘하곤 해. 전투 상황에 따라 좌군, 우군, 중군 등에 적절한 변화를 꾀해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기 위함이지.

점장이란 그런 지휘관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내가 너네 가게를 갔을 때 본 너의 모습은 늘 설거지를 하거나 커피를 내리거나였어. 넌 말 그대로 지휘하는 리더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실무를 하고 있는 리더의 모습이었어. 전쟁터에서 칼 들고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 문제는 그렇게 되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잖아. 윗분들은 지금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적했던 것을 아닐까”

늘 무언가를 캐러다니는
‘캐러다녀’도 말을 보탰다

“전 생각이 좀 달라요. 10여 명의 적은 인원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점장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실무에 투입해 일손이 부족한 상황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점장이라고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도 직원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던 거고요.
저도 ‘그’를 백번 이해하고 지금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쨌든 ‘그’도 고용당한 입장이니 어쨌든 지금 본인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수정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윗분들에게 직원들의 평가가 좋지 않다는 것은 점장으로서 고민해야 하는 건 맞으니까요. 결국 직원들의 연봉과 처우를 올려주는 건 윗분들의 결정이니”

“문덕 형, 캐러다녀 형 고마워요”

*참고로 요새 게임 속 나와 함께 하는 인연들은 나를 ‘문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이름 앞에 ‘문덕’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문덕 ㅇㅇㅇ’하는 식이다.

‘어둠의 기운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서 먹구름의 그림자가 살짝 걷혔다. 그리고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도 그는 이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리라. 이전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과 현실 속 점장인 자신의 모습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역할 갈등일 것이다.

“너무 낙심하지 마. 넌 좋은 사람이고 좋은 점장이 될 거야. 이전까지 넌 좋은 직원이었고 좋은 직장 선배였을 수는 있는데 이제는 점장으로서 네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지. 그건 누구도 네게 가르쳐줄 수 없어. 모두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다 다를 테니까. 그런데 그건 네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네 몫일 거야. 때론 상처 받고 때론 상처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장해야 하니 잘 버티며 이겨내리라 믿어. 힘내자”

어느새 그들 앞에 놓여진 소주병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사이다 한통과 콜라 한통’.

음료수를 마시며 저녁자리를 하면 그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내가 취했던 것은 그날의 분위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도 난 이들과 삶을 이야기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날 깨달았다. 우리에게 술을 마시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가끔 이렇게 만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격려해주며 성장하도록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바로 삶이란 것을…

삶이 고단하고 위로가 필요하면 술이 땡기는 것은 어쩌면 위로받은 싶은 마음이 술을 빌미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비 오는 날 파전을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 역시 파전이 먹고 싶다기보다 당신이 그립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교동전선생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