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흔들리며 피는 꽃

“그러니까 중심을 잘 잡으시라고요”

후배가 점심 먹자고 불러놓고 엄청 몰아세운다. 요새 게임 속 세상에서 리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거센 질책이다.

“어제 일찍 자고 난 뒤에 올라온 글들 다 읽어봤어요? 안 봤으면 빨리 읽어봐요!”

아니 무슨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픈 카톡 글이 180여 건이 있었고, 귀찮아서 읽지 않았다. 그냥 수다겠거니 했는데…

밤사이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니…

일단 좀 시키자. 배고파

오늘 우리가 찾은 곳은 ‘김밥천국 을지로입구역점’이다. 을지로입구역에서 3번 출구로 나와서 광교사거리 쪽으로 100미터 정도 걸어가다 보면 우측에 전형적인 김밥천국 식당이 나온다.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이곳은 사장님부터 직원분들 모두 친절하고 다른 김밥천국과는 다르게 여기는 감자볶음 등 여기만의 밑반찬이 있다. 물론 물은 셀프다.

이곳은 주변 직장인 분들이 많이 찾는 듯하다. 사원증을 목에 두른 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혼밥족을 위한 테이블도 따로 마련돼 있다. 오후 12시가 넘으면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이들의 대기줄도 볼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온 것은 혼밥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난 혼자 밥 먹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혼자 먹어야 할 때면 그냥 굶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 무언가를 먹고 싶은 날도 있다. 그때가 그랬다. 주변을 서성이다 이곳 김밥천국을 발견하게 됐고, 식당 안쪽에 마련된 혼밥족을 위한 테이블이 보였다. 마음 편히 들어가 그 자리에 앉으니 내 옆자리에도 혼밥 하러 온 이가 앉는다. 나와 같은 혼밥족들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식사를 마쳤다. 그때의 좋은 기억이 있어, 그 이후에도 뭐 먹을지 딱히 떠오르지 않는 날엔 이곳으로 온다.

사실 ‘김밥천국’이라는 브랜드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저렴한 김밥을 파는 곳으로. 김밥천국은 나의 배고프던 대학시절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 여자 친구와 분식을 먹던 기억부터 수험생 시절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던 기억까지…

김밥천국의 장점은 부담 없는 가격과 다양한 메뉴다. 라면과 김밥을 먹어도 5,000원이면 되고 대부분 5,500원이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없는 메뉴 빼고는 다 있다. 푸드코트에 온 느낌이기도 하다. 나중에(?) 외국인 친구가 생겨 한국에 오면 무얼 먹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김밥천국’을 추천할 생각이다. 여긴 정말 수많은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배!!! 뭐 먹을 거냐고요. 어여 고르세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독촉하는 것일까. 지쳐온다.

메뉴판을 본다. 종류가 엄청나다. 앞이 캄캄할 정도다. 지금 배가 많이 고프다.

이맘때쯤 내게 찾아오는 지름신, 그리고 그걸 더욱 부추기는 선택 장애가 강림하셨다. 제육덮밥도 먹고 싶고, 라면도 먹고 싶고, 김밥도 먹고 싶고, 김치찌개도 먹고 싶고, 치즈 라볶이도 먹고 싶고… 다 먹고 싶다…ㅠ_ㅠ

배고플 땐 대책 없이 이것저것 다 시키고 싶어 진다. 마치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날 쇼핑을 하면 종류별, 색깔별로 다 사고 싶다는 욕구가 미친 듯이 용솟음치듯이…

“전 라면하고 오징어덮밥을 먹을 거예요”

“그래 알았어. 주문할게! 사장님 저희 라면하고 오징어덮밥 하고 제육덮밥 부탁드려요”

사장님이 오시자 난 머리를 거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메뉴를 주문했다.

“선배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요”

점심시간 내내 쥐 잡듯 몰아 댈 기세다. 지금 상황을 좀 설명하면, 현재 나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은 없다. 누군가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잠깐 설명하면

게임 속 인연이 10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게임 속에서 더 이상 재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현실 속 우울함,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각자 시작한 게임이지만, 10개월 동안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이제는 게임보다 안부를 물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우리가 됐다.

그런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결정은 이들의 맹주를 자처한 내게 마지막 결정 권한이 주어졌다.

요 며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어떤 선택도 자신 없어서다. 다수가 만족한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는 떠나게 된다. 그 누군가를 잡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결정했지만, 내가 틀렸다. 누군가를 잡으려고 한 내 선택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해체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

“어떻게 할 거예요?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곧 와해될 거예요!”

멍해진 머릿속 가운데…

시인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떠올랐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 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 나와 함께 남은 이들의 마음을.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은 나도 크다. 앞서 결정을 내렸으나 예상치 못한 결과로 치닫고 있어서다. 모두가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더 나은 답을 찾아야 하지만, 내가 한 선택이 맞다는 확신은 없다. 누군가는 떠날 것임이 분명해서다. 결국 난 모두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됐다.

“나는 모두가 함께 현실 속 스트레스를 게임을 통해 풀어나갔으면 하고, 비록 게임으로 맺은 인연이지만 오래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빚쟁이에게 독촉당하듯 정신이 쏙 빠져나간 상태로 밥을 먹었다. 카페인이 필요하다………

커피 먹으러 가자

우리는 좀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김밥천국 옆에 있는 ‘롤링핀 을지로입구역점’으로 향했다.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롤링핀 을지로입구점은 점심시간인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지만, 그 외 나머지 시간대에는 정말 여유롭게 커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시끌벅적한 주변 커피숍과는 전혀 다른 조용함이 강점이다.
내가 한 때 자주 들렀던 곳이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면 이곳에 와 커피에 바게트 피자빵을 먹곤 했다. 바게트 피자빵을 주문하면 살짝 데운 뒤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는데 무척 부드럽고 달달하다.

겉으로 늘 센 척을 하지만 속마음은 여리고 여렸던, 이제는 같이 하던 게임을 접으면서 현생 삶으로 돌아간 ‘어둠 가득한 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의 말로는 이곳 시그니처는 ‘앙버터 빵’이라고 했다. 이곳은 2019년 10월부터 종로구푸드뱅크마켓센터에 빵을 후원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일단 커피 마시면서 좀 더 고민해보자”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

“엥??? 여기선 왜 고민하지 않아요? 빵 종류가 이리도 많고 커피 종류가 이리도 많은데!!!”

“난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만 마셔. 그러니 고민할 필요가 없지”

“눼눼눼눼….”

사실 김밥천국만큼
롤링핀의 메뉴도 다양하다

나름 커피숍이지만 빵에 대한 자부심과 유명세가 있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빵에 커피를 곁들여 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호화스러움도 내겐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밥은 먹었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러 온 것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난 커피도 ‘아메리카노’만 마시기 때문이다.

후배의 말처럼 의견을 수렴하고 그걸 토대로 결정하고 밀어붙이면 된다. 롤링핀 을지로입구점에 와서 단호하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듯이.

하지만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과정에서 워낙 많은 주장과 의견들을 청취하다 보면 쉽게 결정 내리기가 어렵다. 어떤 것이든 절대 선은 없고, 그에 따른 장단점이 분명해지니 말이다.

후배는 그런 나를 일깨워주려 하고 있다. 조만간 이 문제를 일단락해내지 못하면 게임 속 인연들과 맺어진 연이 흩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위기감마저 드는 순간이다…

선택을 해야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결정해야 한다. 앞서 내린 결정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면 번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위태로워진다.

그래 알았어. 결정했어

그리고 난 그날 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들에게 내 결정을 알렸다. 후속 대응을 위한 준비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아니 그러자… 내 우려대로 내 결정에 반대하던 누군가가 떠났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잡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선택할 수 있고 선택에 대한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서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믿고 싶다. 혼란스럽고 내 그릇의 작음이 한탄스럽지만… 지금 나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