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황금의 제국, 최후의 보루

코로나19의 무차별적인 확산세가 무섭다. 자칫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온 나라를, 아니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만큼 나 역시도 외부 미팅 일체를 금하고 있다.

외부 약속을 줄이니 자연스레 나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이 무료한 나날들을 어찌 알차게 보낼까 걱정인 요즘이다.

그러다 문득 30대 초반에 인상 깊이 봤던 드라마 ‘황금의 제국’이 다시 보고 싶어 졌다.

SBS 드라마 스페셜
‘황금의 제국’

‘1990년 신도시 개발, 1997년 IMF, 1998년 빅딜과 구조조정, 2000년 벤처 열품, 2002년 부동산 광풍,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10년 부동산 거품이 꺼져가는 시기까지…’

90년 초부터 20여 년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격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경제사의 어두운 부분… 누군가는 큰 부를 얻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내놓으며 처절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역설적인 시대적 상황을 그려낸 시대극.

“사인 하나로 수조 원의 투자를 결정하고, 말 한마디로 수천 억 원의 현금을 움직이지. 식탁 앞에서 밥을 먹다가 백화점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 수백억 원의 돈을 날리고도 아버지한테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끝나는 곳이지. 나 거기서 왔다. 다시 거기로 갈 거야. 태주야 같이 가자. 황금의 제국으로”

언뜻 보면 재벌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내게 이 드라마는 ‘인간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인간성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본성, 사람의 됨됨이.

드라마 시작과 함께 한 청년이 등장한다. 이름은 ‘장태주’. 부모님이 운영하는 밀면집 상가가 강제 철거되면서 아버지는 목숨을 잃게 되고,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욕망의 싸움터인 ‘황금의 제국’으로 뛰어든다.

가난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그였지만, 황금의 제국 안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간다.

총 24화. 약 20여 년 세월 속 우리나라가 겪었던 경제 상황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함께 제왕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형제간의 음모, 자매간의 배신, 남매간의 이합집산, 부부간의 애증, 숙부와 조카의 암투.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는 인간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반칙도 오심도 게임의 일부예요… 패한 뒤에 좋은 이미지가 무슨 소용이랍니까!”

30대 초반에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했을 때 느낌은 한 청년의 패기 그리고 권력 다툼에서 승리해나가는 짜릿함이 좋았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라도 되는냥.

“잘못은 당신이 판단하는 게 아니야. 이긴 사람이 판단하는 거지”

하지만 40대 초반이 되어 다시 보니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들 속에,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서 ‘인간성’에 대해 나 자신에게 되묻게 됐다.

“사장님은 밥만 줬는데, 장 대표는 밥도 주고, 정도 주네요”

순수했던 청년 장태주… 강자와 싸워 얻은 전리품을 약자와 함께 나누던 그의 모습…

“승자가 모든 것을 갖게 된다. The winner takes it all. 성공한 쿠데타가 쿠데타가 아니듯, 성공한 사기는 사기가 아닙니다”

“돈을 벌려면 땀을 흘려선 안 돼요. 남의 땅을 훔쳐야지”

“누군 지옥에서도 웃으면서 사는데 태주 넌 천국에서도 금덩어리 줍겠다며 다니겠네”

후반부로 치달을 수록 괴물로 변해가는 ‘태주’의 모습에 보면 볼수록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최동성(돈 있는 자)의 아들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도 운전을 해도 되고 장봉호(돈 없는 자)의 아들은 면허증이 있어도 운전석에 앉으면 안 됩니까?”

“나는 장봉호의 아들, 그들은 최동성의 아들 그것 말고 뭐가 다르죠? 그들과 나?”

“용역들 부르세요. 경찰에 협조 요청하시고요. (농성장에 노인들이 많아서 피해가 클 거야) 잘 됐네요. 진압이 생각보다 쉽겠네. 오늘 중에 진압 완료하세요”

“미사일 단추 증후군이라고 있어. 우아한 방에서 미사일 단추를 누르는 군인은 그 미사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도 자기는 단추만 눌렀을 뿐이라고 하지. 당신도 그랬을 거야”

결국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인 이들과 똑같은 욕망의 괴물이 되고 만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했던 결말일까

아니면 현실에서도 욕망의 노예, 괴물이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태주는 마지막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곁으로 떠난다.

“남의 인생 평가하지 맙시다. 난요. 충고도 조언도 안 합니다. 인생 다 다릅니다”

그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지만, 그가 그토록 바랐던 ‘밀면집’은 지켜냈다. 욕망의 싸움터에 뛰어들 게 된 계기가 됐던 ‘밀면집’. 그리고 가족에게 꼭 마련해주고 싶었던 ‘밀면집’.

‘하필 왜 하고많은 식당 중에 밀면집이었을까’

작가는 밀면집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밀면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밀면…

밀면은 밀가루에 전문을 섞어 만든 면인데 밀면은 탄생 배경을 살펴보니 시대적 상황에 얽힌 서민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밀면은 1950년대 초반 6•25 전쟁 시기 부산에서 탄생했다.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 음식인 냉면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는데, 냉면 재료인 감자나 메밀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구호물품으로 지급되던 밀가루로 면발을 만들어 먹은 것이 그 시초다. 이후 부산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밀면은 냉면처럼 물과 비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밀면을 삶아 건진 국수에 육수를 붓고 볶은 오이, 양념한 무채, 배, 삶은 달걀, 돼지고기를 고명으로 올려서 먹는다. 고춧가루와 간장, 생강즙 등 숙성시킨 양념과 겨자, 식초를 곁들여 먹기도 한단다.

밀면집이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며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소박하지만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을 꿈꾸는 서민들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밀면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마지막 24화가 끝나고… 화면 사이로 사라지는 태주… 20여 년이란 세월 속에서 발버둥 치듯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을 쫓은 뒤의 허망함… 잠시 멍한 상태가 찾아왔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 자신을 돌아봤다. 40대 초반인 나를…

아직 이뤄놓은 것은 없지만, 있다고 해도 아주 작고 미미한 성취감일 뿐일진대… 나의 인간성은 어떤 모습일까… 30대 꿈 많던 나를 잘 지켜내고 있는지…

태주의 옆에는 태주의 젊은 날의 ‘인간성’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그런 태주의 ‘인간성’을 좋아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태주는 성장을 거듭하게 되고, 실패하고 좌절해도 그들과 함께 의기투합해 다시 일어났다.

태주는 가족을 지키려 애쓰고, 태주의 친구들은 태주를 지켜내려 서로 의지하며 고난을 이겨냈다.

욕망의 노예, 괴물이 되어가는 태주 옆에서 그들은 떠나지 않고 그를 돌아오게 하려 애썼다. 함께하며. 그 덕택에 괴물로 변한 태주가 모든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주인공 ‘태주’가 황금의 제국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성’ 때문이고, 마지막에 괴물에서 다시 ‘그’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주변의 ‘인간성’ 덕택이었다.

“나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남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더 중요해”

“옆집 사람이 아파트 사서 돈을 벌면 더러운 세상이고 내가 아파트 사서 돈을 벌면 좋은 세상입니다.”

“착한 놈은 못 이기는 세상입니다. 모진 놈이 이기고 제일 뻔뻔한 놈이 다 먹는 세상이죠”

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나이기에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깊다.

크고 작은 사회 곳곳에서
암투는 늘 존재한다

암투의 격렬함 정도는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성에 반비례할 뿐이다. 인간성이 나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일수록 암투는 더욱더 격렬하고 졸렬해진다.

마치 도박장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도박장을 잔인함 정도는 그 안의 ‘인간성’에 좌우되듯이 말이다. 판 돈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최근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이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을 말한다.

그는 소위 낙하산 수장의 최측근으로 군림하며 온갖 권력을 휘둘렀다. 조직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질 눈앞에 이익만 좇았다. 막강한 뒷배가 있으니 모두가 그의 눈치만 보기 급급했고, 그 주변에는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이리 떼’들로 득실거렸다. 그는 자신의 하명(?)에 불복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 꿇을 때까지 치욕을 안겨줬다. 끝내 저항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왕국에서 내쫓았다. 마치 그 조직이 자신의 왕국 인양.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모든 권력은 임기가 있다. 하지만 왜 다들 권력을 잡으면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낙하산 수장 임기가 다됐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후 호랑이 앞에서 호가호위하던 그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그에게 덫을 놓은 건 그를 따르던 이리 떼들이었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간의 전횡을 일러바쳤다. 그의 몇 년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그야말로 황제였다. 빠르게 승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결국 그도 회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그가 내 보낸 수많은 이들처럼.

이후 주변 이리 떼들은 또 다른 여우를 물색하며 저마다 자기 살길 찾느라 바빴고 결국 여우와 이리 떼로 가득 찼던 왕국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는 그 자신도, 그 주변도 지키지 못했다.

“처녀를 바치면 비가 오고 아이를 바치면 장마가 그치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재물을 바쳤죠. 근데 강 이사님 인간은 말입니다. 그 누구도 재물이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사를 주도하는 사제가 되고 싶어 하죠”

“아름다운 사랑, 사랑이 아름답다면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필요할까요? 진실된 우정, 우정이 진실하다면 수식어가 필요 없겠죠. 화목한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새언니, 어쩌면 위선이 가장 최선인지도 몰라요. 현실에서 가능한 최선”

지금 내 인간성은 어떤 모습일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인간성은 무엇일까. 진흙탕 같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내가 꼭 지키고 싶은 보루가 뭘까.

밀면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