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냐 음미하는 거지”

언젠가 술자리에서 뱉고 싶은 말이다. 비록 나의 술자리에서는 맥주와 소주가 요동칠 뿐이지만.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20대의 주류 생활은 이제 끝이다.

앞으로는 참 어른의 술 위스키를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하루의 끝을 적시는 한 모금의 위스키가 필요하다. 근데 위스키가 뭐였지?

위스키의 세계는 토익 같다. 언젠가 꼭 필요하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으니까. 위스키 세계에 갓 입문한 위알못(위스키 알지도 못하는 남자) 마시즘도 마찬가지다. 이봐 제발 위스키가 뭔지 알려달라고!


문제가 있어요
수많은 양주 중 위스키가 무엇이죠?


우리는 바(Bar), 술집, 마트 등에서 많은 종류의 술을 만날 수 있다. 흔히 마시는 소주와 맥주는 바로 구분할 수 있지만, 나머지들은 ‘양주’라고 부르곤 한다. 그래 양주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이 중에서 위스키가 뭔데?

위스키는 보리(를 비롯한 곡물)로 만든 술이다. 맥주가 보리를 발효해서 만든 술이라면, 위스키는 보리에서 발효된 술에서 알콜을 따로 빼서 도수를 높인다. 이를 증류주라고 부른다. 보통 증류된 술은 소주나 보드카처럼 투명한 것이 특징.

하지만 이것을 김장독… 아니 오크통에 담가 숙성을 하면 나무의 색상과 풍미가 배어 나온다. 그것이 위스키다. 응 그래 거기 갈색 그거 맞아.


위스키의 예송논쟁
위알못이 고를 위스키는 무엇인가?

위스키만 고른다고 끝이 아니다. 위스키는 종류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위스키 좀 마신다는 형님들은 ‘싱글 몰트 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를 말한다. 싱글 몰트라고 하면 한 증류소에서 나온 몰트 위스키로만 만든 것. 블랜디드 위스키는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배합한 것이다. 그렇다. 퓨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블랜디드 위스키를 소맥 취급하면 안 된다. 증류소마다 나오는 위스키 원액의 품질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블랜디드 위스키는 마스터 블랜더가 각 증류소의 위스키 원액을 섞어 일정한 맛을 구현해낸다. 내 비록 위알못이지만 아무거나 섞은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개념은 파악되었는데, 알콜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소주와 맥주로는 끄떡없(다고 생각했)던 마시즘은 위스키 스트레이트 한 방에 게임오버가 될 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저도주’라고 불리는 저도주 위스키다. 알콜 농도를 낮춰 강하지 않고 부드러워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다. 그래 봤자 30도를 훌쩍 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져야 할 것
“넌 몇 살이니?”

이것은 너무 비싸서, 이것은 너무 도수가 높아서 고개를 절레절레하던 위알못이 저도주라는 분야를 찾았다. “자 이제 아무거나 마셔볼까!”하다가 삐빅 혼났다. 위스키 원액의 ‘연산’을 따지지 않아서다. 뭐야 알콜의 세계에도 장유유서가 있는 거냐?

그렇다. 와인처럼 위스키에도 나이가 적혀있다. 보통 위스키에는 12년, 17년, 21년 같은 표시가 있다. 와인은 포도를 수확한 년도를 표기하지만, 위스키는 증류된 이후 오크통에서 최소 숙성된 년도를 표기한다.

여러 위스키 원액을 섞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나이를 어떻게 내냐고? 가장 숙성이 덜 된 위스키의 나이를 적는다. 예를 들어 12년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최소 12년 숙성된 위스키 원액이 들어간 것이다.

위스키에게 연산이란 학위 같은 거다. 학위를 인증하는데 중요한 것은 졸업장이다. 위스키 병에 친절하게 연산이 적힌 제품을 구매하자. 메뉴판이나 직원을 통해 말하는 연산은 학력위조일 확률이 있으니까. 누군가는 “위스키에 나이가 뭐가 중요해!”라고 물을 수 있다.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기간 동안 여러 풍미를 얻어간다.

또한 숙성기간 동안 위스키의 일부가 증발한다. 이를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부른다. 연산이 오래된 위스키를 마시는 것은 천사와 한 잔 함께 한다는 의미일까? 생각해보니 분하다. 짜식, 돈은 내가 내는데 말이다.


위알못 마시즘의 픽
저도주, 연산 그리고 하이볼?!

그동안 마시즘을 연재하며 독자들에게 위스키 추천을 많이 받아왔다. 위알못임을 숨기지 않았던 나에게 독자들은 ‘조니워커 블랙라벨’이나 ‘듀어스’ 등을 추천하곤 했다. ‘캪틴큐’를 추천해주신 형님도 있는데 용서하지 않겠다.

주류 매대를 한참 서성이다 일단 선택한 녀석은 ‘W 시그니처 12’다. 가성비도 좋고 저도주였으며, 무엇보다 병이 예쁘게 생겼다. 보기 드물게 나이를 숨기는 저도주 세계에서도 민증… 아니 연산을 표기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W는 바로 윈저의 약자다. 마시즘에서 ‘한국 위스키 100년사(클릭)’를 소개할 때 등장한 녀석이기도 하다. 검색을 해보니 요즘에는 하이볼로 만들었을 때 최고라고 하여 냉큼 집었다.


허둥대지 않고
위스키를 마시는 방법

자 이제 윈저… 아니 W 시그니처 12를 마실 시간이다. 맥주는 벌컥벌컥 마시고, 소주는 탁 털어 마시지만 위스키는 버퍼링에 걸린 듯 순간순간을 멈추면서 마셔야 한다. 색깔을 보고, 잔을 흔들어 향을 맡고, 한 모금 머금다가 마시고, 입 안에 남은 향을 즐기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어떤 재료를 섞느냐에 따라 맛과 느낌이 다르다.

먼저 ‘스트레이트(Straight)’. 스트레이트는 말 그대로 위스키를 잔에 따라서 마시는 것이다. 스트레이트 잔(30ml), 더블 스트레이트 잔(60ml), 짧고 굵은 텀블러(200ml) 등에 따라서 마신다. 잔마다 향을 보관하거나 닿는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종이컵만 아니면 모두 가능이다(종이컵에서는 종이향 남).

두 번째 ‘온 더 락(On the Rock)’. 영화에서 많이 봤던 바위 같은 얼음이 잔에 들어있는 그것이다. 얼음을 사용하면 알콜도수가 낮아지며 위스키가 부드러워진다. 바에서는 멋진 아이스볼을 깎아주지만, 집에서는 그냥 사각 얼음을 써야 한다. 대신 냉동실에서 꺼내고 바로 잔에 넣지 않고, 상온에서 얼음들을 놔두어 결정이 단단해진 다음에 넣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은 ‘물(Water)’이다. ‘무슨 술에 물 타 먹는 소리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위스키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다. 주로 일본에서 위스키를 물에 타서 마시는데 ‘미즈와리(みずゎり)’라고 부른다. 위스키를 물에 타면 알콜도수는 낮아지지만 독한 알콜에 숨어있는 위스키의 향과 풍미가 높아진다.

꼭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만이 정석이 아니다. 똑같은 위스키여도 마시는 방법에 따라 바뀐다. 아직 취향을 가지지 않은 위스키 초보라면 하루하루 바꿔가면서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탄산러는
위스키를 하이볼로 마시지

스트레이트, 온 더 락, 미즈와리… 하지만 요즘 대세는 ‘하이볼(Highball)’이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넣는 것이다. 위스키 덕후의 나라 일본에서는 맥주보다 하이볼이 더욱 젊고 대중적인 술이 되어가고 있다. 나 또한 하이볼이 좋다. 프로탄산러라면 위스키 역시 탄산으로 즐기고 싶은 법이니까.

특히 W 시그니처 12는 하이볼에 있어서는 어떤 위스키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 물론 다른 건 안 먹어봤다는 게 함정. 단순히 탄산수와 이것은 4:1로 탔을 뿐인데 청량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난다. 여기에 레몬즙이라도 뿌리는 날에는 난리가 난다. 그렇다 마시즘은 결국 스트레이트로 시작해 하이볼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이볼은 위스키를 어렵게 생각하는 위알못들에게 제격이다. W 시그니처 12, 코코팜 복숭아, 탄산수를 1:1:1로 도원결의 시키면 굉장히 달콤한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이런 스윗한 녀석을 보았나.


뜨겁고 아름다운
위스키의 세계 속으로

겨우 한 달이다. 이제 갓 입문한 위스키의 세계는 모르는 곳이 훨씬 많다. 배운 점이 있다면 평소에 마셔본 위스키들도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는 것, 그리고 마시는 방법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위알못이지만 더 이상 위스키를 마실 때 앞사람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은 끝이다.

제품과 연산을 따져보고, 내가 좋아하는 최적의 맛을 찾기를 바란다. 새로운 알콜의 세계가 우리 눈 앞에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