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사표를 던지고 난 뒤에 얻은 깨달음

국립국악원

“선배 어디세요?”

전화기 너머로 무거운 음성이 깔렸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챘다. 아끼는 후배의 전화, 그것도 주일에 온 전화였다.

다행히 마침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다.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에 난 흔쾌히 커피 한 잔하자고 제안했다.

“선배…”

후배를 만났다. 후배의 얼굴은 창백했다. 탈진하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무슨 일 있어?”

후배는 자신과 얽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그러다 내 입을 열게 한 한 문장…

“선배 저 그만 두려고요”

후배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모습이었다. 난 그제서야 입을 조심히 열었다.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난 직선적인 화법으로 조근조근 후배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표를 내라, 마라라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했으면 해. 그만 둘 때 그만두더라도 직장을 구하고 그만 두는 게 맞아. 아무런 대책없이 그만 두고나서 새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착각이야. 만약 네가 나처럼 부양 가족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무책임한 것이지.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사표를 내고 무직 기간을 겪으면서 정말 후회한 부분이 바로 이거거든. 요즘 고용환경이 굉장히 안 좋아. 사표내고 새로운 직장을 쉽게 찾을 것이란 생각은 큰 착각이야. 현실은 냉혹해.”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자신을 응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한 듯 보였다.

“이직을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야. 헌법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어. 네가 현재 속한 직장에서 네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하고 그 외 시간에 이직을 알아보는 것을 가지고 널 나가라고 할 수 없고, 다른 직장을 알아본다는 것을 근거로 널 징계할 수도 없어. 그러니 이직할 회사를 구한 뒤에 직장을 그만둬도 늦지 않아. 그게 현명한거야.”

“선배… 그래도…”

“그리고 또하나. 퇴사한 뒤에 무직자가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와, 현재 적이 있는 상태로 회사에 응시하는 것은 대우 자체가 달라. 무직자의 경우 최종에 합격하더라도 인사과와 연봉 협상 등을 해야할 때 불리할 수밖에 없어.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잖아. 그러니 인사과에서 급여를 박하게 책정해도 ‘그럴 꺼면 입사를 포기하겠다’는 식의 강수를 둘 수 없어. 협상에서 불리하다는 거지. 하지만 현재 직장이 있는 경우라면 연봉 협상에서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지. 이전 직장보다 이직에 대한 프리미엄이 있어야 옮기지. 그러니 인사과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배려를 할 수밖에 없고 말이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일단 사표를 쓰겠다는 마음은 잠시 넣어둬. 진짜 요즘 고용환경 최악이야. 신입보다는 경력이 더 나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아.”

“그렇게 안 좋은가요?”

“이직하려는 사람은 많고 괜찮은 경력구인 공고는 나오지 않으니 바늘구멍이지.”

“저…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지금 직장에서 버텨. 하지만 무능하다는 평가를 들어서는 안돼. 이직을 생각한다면 레퍼런스 관리를 해야하거든. 평판관리 말이야. 일 안하는 사람을 어느 조직에서 뽑고 싶어 하겠어. 조직 내에서 나이스한 사람으로 포지션을 가져가고, 대신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봐.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너가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려야해.”

“네???”

“네가 이직 생각이 있음을 알아야 이직 시장에서 너를 주목하지. 결국 이것도 주식과 같아. 상장돼야 호가가 나오고 매수자가 나타나는 셈이지.”

“아….”

“명심해. 이직과 퇴사가 한 끝차이로 보이겠지만, 막상 퇴사하고 나면 이직과 퇴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야. 주위에서 너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차이가 나고.”

내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던 그는 결심한 듯이 말을 꺼냈다.

“선배를 오늘 만난 건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오늘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선배 말씀 잘 새겨듣고 생각 잘 정리해서 신중하게 결정할게요.”

“사실은…”

오늘 만난 후배가 했던 고민은 내가 했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사표를 쓰기 전 많은 이들이 사표를 쓰지 말고 버티란 말을 해주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힘들어도 버텨라란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핵심 메시지는 동일하지만, 만약 누군가 그 때 나에게 이직과 퇴사의 차이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해 준 이가 있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 또 다르게 전개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누군가 이직과 퇴사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나처럼 섣불리 사표를 던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 경험을 말하자면 이렇다. 사표를 던지고 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인생에서 가장 춥고 외로운 나날들 뿐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이었다.

굳이 그 때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굳이 표현하자면….”
“살다보면 혼자 비바람을 맞을 때가 있다.
온몸이 흠뻑 젖어 피할 곳도 없다.
아무리 소리쳐도 소리가 퍼지지 않는다.
비가 그치나 싶었는데 눈보라가 몰아친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칠수록
살점이 뜯어져나가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뼛속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