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 공지영의 독특한 이야기들!

할머니 커버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우리 집.

우리 집이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건 할머니가 땅을 사는 족족 대박이 났기 때문인데요.

그런 할머니가 6개월째 죽어가고 있습니다.

식도암으로 이미 의학적으로는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 할머니.

유산에 탐을 낸 가족들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극진히 보살핍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계속됩니다.

돌아가면서 할머니를 보살피던 어느 날 아침, 막내 외삼촌이 할머니 옆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죠.

그때, 누워서 꼼짝도 못 하던 할머니가 정정하게 앉아서 다짜고짜 외친 말은 “미음 가져와라!” 였습니다.

할머니는 갈비를 뜯거나 새빨간 루즈를 바르고 비단 투피스를 차려입을 만큼 기력을 찾은듯했지만 한 달 정도 지속되더니, 다시 몸져눕고 맙니다.

의사들 말로는 이미 장기의 기능을 모두 상실한 상태.

가족들은 다시금 할머니의 곁을 지키며 매일같이 “어머니!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 돼요!”를 외치는데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다급함에 모여든 날, 나는 할머니의 입술이 달싹이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때 부엌에서 파출부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집니다.

119 구급대가 달려온 소란 속에 할머니가 일어나 앉아 소리칩니다.

“미음 가져와라, 아니 죽, 아니 밥 가져와!”

왜 할머니일까?

이 소설의 할머니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힘없고 약한 노인이 아닙니다.

기존의 가족관 속의 할머니라기보다는 전쟁 후의 가난한 시대에 쥐와 들고양이를 잡아먹으면서 부를 일궈온 냉정한 인격의 표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마치 블랙홀처럼 다른 생명력을 흡수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생기도 없는, 하지만 죽지도 않는 기괴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요,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기는커녕 젊은이들을 착취하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오늘날의 기득권층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기득권 층에 타협하지 않는 공지영의 시선입니다.

공지영은 왜 이렇게 아플까?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단편 소설집입니다.

책 속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눈물이 나서 다음 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대목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공지영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공지영은 유난히 실명의 주인공으로, 때론 화자로 등장하는데요.

상처를 늘 품고 살고, 술을 자주 마시는 그녀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아픈 이유는 아마도 공감능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타인, 특히 약자의 고통과 슬픔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고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녀와 소설의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매우 아끼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공지영은 우리 인간이 공감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서로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이것이 공지영 문학에 담긴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