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불킥과 정신승리

“저… 오늘 참여가 어려울 것 같아요.”

오늘은 온라인게임 속에서 친해진 이들과 정모가 있는 날이다. 사실 게임을 하며 정모까지 이어간다는 것이 상당히 두려움이 컸다.

국립국악원

‘현실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지만 게임 속에서 연이 닿아 현실로까지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그들이 혹시… 설마… 뉴스에서나 보던 그런, 무서운 사람은 아닐까.’

뭐 그런 많은 생각 속에 반신반의하며 첫 모임을 했고 다행히 이날 나온 모두가 현실 속에서 정상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 속 스트레스를 게임에서 풀어가며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불과했다.

“겁니피곤님 괜찮아요.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이번 모임은 두 번째 자리다. 그렇게 우린 ‘겁니피곤’님이 빠진 채 자리를 가졌다.

이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가성비 좋은 곳에서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바로 ‘충정로역 태능참숯불돼지’다.

이곳은 사장님 인심이 후할 뿐 아니라 지갑이 얇은 이들을 위해 양은 푸짐하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자주 찾는 곳이다. 별도로 블로그 마케팅(?) 같은 것을 하지 않아 검색해서는 도통 알기 어려운 곳이지만 충정로역 인근 식당을 직접 찾아다니다 발견했다. 발품을 통해 알게 된 가게인 만큼 내겐 더욱 애정이 남다른 곳이다. 나만의 맛집이다.

보통 점심때 자주 온다. 둘이서 돼지불백에 김칫국을 배불리 먹어도 1만 6000원! 이곳은 돈가스도 맛있다. 보통 나는 2명일 때는 ‘돼지불백’과 ‘김치찜’을, 3명일 때는 ‘돈가스’를 추가한다. 돼지불백 1인분도 가능하니 이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또한 저녁엔 가성비 좋은 포장마차로 변신한다. 인근에 경기대가 있어 힘들게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저녁 안주로 푸짐한 찌개도 준비해놓았다. 사장님의 센스와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장님, 저희 삼겹살 3인분이요.”

“삼겹살만 시키는 것보다 삼겹살과 항정살을 같이 구워 먹는 게 더 맛있어요. 항정살 하고 같이 섞어서 드릴까요?”

의심 없이,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2년째 단골인 내게 사장님에 대한 신뢰는 두텁다.

사실 난 이전까지 삼겹살이면 삼겹살, 항정살이면 항정살 이렇게 따로따로 주문해서 먹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두 개를 함께 구워 먹을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나름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것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인데, 이런 시도를 해보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밑반찬과 소주가 먼저 나오고 잠시 후 삼겹살과 항정살이 가지런하게 나왔다.

태능참숯돼지갈비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삼겹살… 그리고 항정살…

잠시 살펴보면 삼겹살은 근육과 지방이 세 개의 층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삼겹살 유래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1960년대 소주 가격이 하락했을 때 값싼 돼지고기를 안주로 먹게 되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 시작했다는 설과 탄광에서 분진을 많이 마시던 광부들이 돼지고기의 중금속 해독 작용 때문에 먹기 시작했다는 설 등.

삼겹살은 돼지 한 마리당 12kg 정도 생산되는데, 지방과 근육이 적당한 두께로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좋다. 삼겹살은 국내에서는 주로 구이용으로 이용되며 수육과 보쌈 등 폭넓은 요리에 쓰인다. 우리가 먹는 베이컨은 삼겹살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태능참숯돼지갈비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항정살은 돼지 뒷덜미 목에서 어깨까지 연결된 부위로, ‘개나 돼지의 목덜미’를 이르는 순 우리말이다. 살코기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마블링이 1000개나 된다고 해 ‘천겹살’로도 불린다. 특수 부위로, 시중에 판매된 것은 1995년 무렵부터다.

항정살은 돼지 한 마리당 600g 정도 생산되며, 살코기 사이에 지방이 고르게 퍼져 있어 숯불에 약간 노릇해질 정도로 구우면 숯불 향이 흠뻑 스며들어 최상의 돼지고기 맛을 즐길 수 있다.

항정살은 요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고기 부위이기도 하다. 항정살을 처음 맛본 이후 항정살의 담백하고 쫄깃하면서도 탱글탱글한, 그러면서도 항정살 특유의 부드럽고 아삭아삭한 식감을 못 잊어 자주 찾는다.

소주병을 기울이며 우리는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오늘따라 전부 다 지쳐 보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한 명은 점장인데 몇 달째 이어진 경기침체로 가게 매출이 현격하게 떨어져 아르바이트생과 일부 직원에게 권고사직 통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류둥이(쌍둥이형제)는 코로나19 이후 고객 민원은 더 많아졌을 뿐 아니라 더욱 거칠어진 이들의 톤에 녹다운이 된 상황이었다. 여기에 여기저기 캐러 다닌다고 내가 이름 붙인 ‘캐러다녀’는 요새 회사 내 조직문화 쇄신으로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해 힘들어하고 있다.

사실 나 역시도 며칠 계속된 술자리로 간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이어서 기운이 없긴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아재 개그’로 기운을 북돋워 주고 싶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그저 서로의 현실 속 애환을 공유하며 다음 자리를 기약했다.

그러고 몇 주 후….

지난번의 아쉬움을 달래려 우리 중 한 명이 다시 ‘벙개’를 쳤고 제일 먼저 ‘겁니피곤’님이 화답했다.

“이번에 도전을 해볼게요. 지난번처럼 갑작스러운 일만 안 생기면 갈게요.”

“겁니피곤님은 올해 한 번만 참석하셔도 충분해요. 그 먼 곳에서 어떻게 번번이 와요. 부담 갖지 마세요.”
서울에서 근무하다 경기도 외곽으로 발령 난 상황이어서 사실 오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터라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우문현답으로 되받았다.

“저도 매번 가는 건 어려운데, 그래도 최대한 자꾸 나가려고 노력해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리적으로 서울이란 곳이 멀게 느껴지네요.”

겁니피곤님은 요새 서울이란 곳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고 했다.

“시간 될 때 편하게 편하게~! 뭐든 부담이 관계를 망치잖아요. 여기서 망치가 ‘hammer’ 아닌 건 알죠?” 나는 그에게 아재 개그를 섞어 재차 당부했다.

“어떤 관계도 노력하지 않으면 소원해지죠”.

명언이다. 난 재빨리 받아 적었다. 그리고 ‘광화문덕’ 2화 주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겁니피곤님의 말에 ‘어둠 속 가득한 기운을 지닌 그’가 말을 보탰다. 요새 직원들에게 악마 역할을 해야 하는 그.

“어떤 관계도 아무리 노력해도 소원해지더라고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소원해진 관계에 대해서는 후회나 아쉬움이 남지 않아요. 갑자기 훅 떠올랐을 때 이불킥 대신 ‘난 할 만큼 했어’라고 정신 승리가 가능하니까요.”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어둠 속 그’와 ‘겁니피곤’님의 대화로 이어졌다.

“과거에 그렇게 최선을 다해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던 이였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끊은 인연이 있는데, 요새는 꿈에도 나와요.”

“음… 그렇다면 그건 후회나 아쉬움보다는 깊은 ‘빡침’ 아닐는지요.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네가 어떻게 이렇게 내게 할 수 있어?’ 이런 느낌이요. 그럴 땐 ‘이렇게라도 너와의 질긴 인연 끊어져서 다행이다. 이제라도 보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정신 승리를 해보시길….”

그제야 ‘어둠으로 가득한 그’는 수긍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라는 짧은 탄성만 남기고 대화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모임 날짜를 정하고 현실 이야기는 뒤로한 채 다시 게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이 모임은 ‘광화문덕’이라는 온라인 이름으로 맹주가 돼 연맹을 만들고, 나와 함께 연맹을 꾸려나가면서 자발적으로 하나둘씩 모이게 된 이들로 구성됐다. 서로의 현실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게임 속 자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기게 됐고 우리는 온라인 인연을 현실 세상으로 이었다.

사실 우리는 서로 안 보면 그만인 사람들이었다. 그저 현실 속 스트레스를 게임을 통해 해소하고자 게임을 시작했던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목적도 없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동고동락하다 보니 그것이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오랜 시간 함께 게임하면서 그건 ‘호감’으로 발전됐다. 만약 우리가 이 모임 구성원 중에 ‘누군가를 이용하겠다’거나 ‘누군가와 목적이 있어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모임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 모임은 역시도 사람에 실망하고 사람에 상처 받고 그래서 떠나는 이가 생기는 그런 모임이 됐을 것이다.

사실 ‘태능참숯불돼지’ 가게는 갈 때마다 푸근한 사장님의 정(情)을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좋다. 번번이 얼굴을 기억하고 인사해주는 사장님께 감사하다. 또한 식사하는 동안 뭐가 부족한 게 없는지 바쁘신 와중에도 직접 물어봐줘서 그 또한 감사하다. 메뉴를 선정할 때도 자세하게 코칭해주시는 모습도 감사하다.

이곳은 충정로역 9번 출구로 나와서 70m 정도 걸으면 ‘떡볶이 만세’란 가게가 나오고 우측으로 작은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에서 10m 거리 왼쪽에 있다. 저녁에 6명 이상 예약하면 가게 안 작은방에서 회식을 할 수도 있고, 또 사장님께 회식할 것이라고 예약하면 좋은 고기도 준비해준다.

사장님께서도, 우리 모임 구성원도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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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항정살: 15,000, 삼겹살: 15,000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