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화문덕이다]

국립국악원

#프롤로그: 미워해서 무엇하리

“그대의 치밀하고 치사한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마저 꿰뚫었구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거든 이제 그만 좀 작작해라.” 사람에 속고 사람에 상처 받으며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을 이제 연재를 통해 기록하려 한다. 하늘은 삶을 귀한 덕으로 여긴다. 나는 광화문에 산다. ‘광화문덕’이다. [편집자주]

괜찮으세요?

동료가 말을 건넨다. 전날 술자리 여파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를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동료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말에 대꾸할 힘조차 없어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눈인사로 대신한다.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잠시 눈을 감는다. 세상이 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도는 것인지,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제 일을 가만히 복기해본다. 누군가와 논쟁을 벌인 내 모습이 뿌연 안갯속 너머로 보이는 듯하다.

‘아, 이런… 오늘도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겠군.’

직장생활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업무는 업무대로 잘해야 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람과의 관계도 매끄럽게 이어나가야 한다. 이는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전쟁터임이 틀림없다. 한순간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해장하러 가시죠~

아픈 속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오전 보고서를 마감하고 나니 어느덧 점심때가 됐다. 동료가 뭐 먹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시원하면서도 알싸한, 그러면서도 달달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국물은 필수다.

‘뭐가 좋을까….’

오늘은 여름날 같다, 5월의 여름날. 이런 날엔 시원한 얼음이 있는 ‘김치말이 국수’가 제격이다. 마침 내가 해마다 한 번 이상 가는 곳이 있다. 아쉽게도 내게 이곳은 여름 전용이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내겐 ‘여름’ 하면 떠오르는 곳일 뿐이다.

내가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청역 방면으로 가다 보면 한국프레스센터가 나온다. 신호등을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맥도널드가 보이는 네거리가 나온다. 네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조금 걸으면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보인다. 편의점 앞에 작은 골목이 보이는데 거기가 바로 ‘이북 만두’로 들어가는 입구다. 처음에는 다소 헷갈릴 수 있다.

김치말이국수

점심때는 오전 11시 40분 이전에는 도착해야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일행이 다 오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다. 기다려야 한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모두가 다 와야 앉을 수 있다.’ 이 가게만의 규칙이다.

자리 잡고 서빙하시는 어르신께 “국수 2개요” 또는 “밥 하나, 국수 하나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된다. 메뉴판이 단순하니 가능한 일이다. 혹시 만두를 같이 곁들여 먹으려면 ‘굴림만두’를 추천한다. 개인적 취향일 수 있으니 여유가 된다면 접시만두와 굴림만두를 비교해 먹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점심에 일찍 가게 된다면 빈대떡과 고추전도 주문 가능하다. 너무 많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반 접시를 시키면 된다.

이곳을 알고 3년 정도 해마다 수차례 찾아가지만 이곳은 오래 앉아서 수다 떨면서 먹는 곳은 아니다. 그저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가 먹고 싶은 날 찾는 곳일 뿐이다. 주문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이것 역시 이곳의 풍경이다.

김치말이 국수는 동치밋국이나 열무 김칫국 또는 김칫국을 섞은 육수에 삶은 국수를 넣어 시원하게 먹는 음식이다. 양념해 볶은 소고기나 닭고기 살을 고명으로 얹기도 하는데, 이곳 이북 만두 김치말이 국수에는 오이가 고명이다. 깨소금이 얹어지고 참기름, 설탕이 첨가되는 것 같다.

김치말이국수
김치말이국수

고해성사 시간

그렇게 좋아하는 김치말이 국수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반성의 시간이어서다. 동료에게 나의 어젯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는 아직도 어른이 아니네요. 어른이 돼야 하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뭐랄까, 아직도 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 것 같아요. 사람을 미워해봤자 결국 그 미움이 향하는 곳이 저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누군가를 미워했나 봐요.”

“…….”

동료는 알 수 없다는 듯한 눈치였다. 애매한 나의 말에 뭐라 답할지 난감한 듯 보였다. 이내 자리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로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네요.”

“아, 아니에요.”

더 깊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가득 찰까 봐 겁이 났다.

‘미움은 내가 독을 마시면서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전 회사 선배가 해준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수없이 되뇌었다. 너무도 가슴 깊이 와 닿는 구절 이어서다. 난 그걸 잠시 또 망각했다. 이 문장을 들었을 때 느꼈던 나에 대한 반성을 또다시 잊어버리고 누군가를 미워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다시 반성하며 나를 타일렀다.

‘미워해서 무엇하리. 어차피 그는 그만의 방식대로,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살아갈 텐데….’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이내 앞에 앉은 동료가 어색함을 풀어내려 웃으며 말을 건넸다.

고해성사 시간이군요

“네 ^^;; 안 그래도 요새 첫 번째 글로 뭘 쓸지 고민이었는데 제 반성으로 첫 시작을 해봐야겠어요.”

“네? 다시 글 쓰는 거예요?”

“네 ^^;; 저 연재하기로 했어요. 이번에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 볼까 해요.”

“오, 축하해요. 연재 이름은 정했어요?”

“네! 이번에는 제 온라인 세상 속 이름인 ‘광화문덕’으로 하려고 해요. 영화 ‘매트릭스’ 속 주인공처럼요. 그가 현실 속에서는 ‘토머스 앤더슨’이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네오(NEO)’로 활동하는 것처럼요.”

광화문덕이요?

“네. 사실 단순해요. 제가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하고, 광화문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과거를 지나 현재에도 수많은 변화의 중심이 되기도 하잖아요. 특히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분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하니 ‘광화문’이란 상징성이 잘 맞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여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을지문덕’ 장군의 면모를 닮고 싶어 ‘문덕’을 넣었어요. 라임도 맞는 것 같고요. 을지로가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딴 거라는 것은 아시죠? ^^”

고해성사 시간을 통해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다짐도 되새겼다.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병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고 나오면서 보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가게 앞에 수많은 사람으로 대기줄이 골목 앞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실 이곳에 대한 포털 내 평가는 갈린다. 맛집 리뷰 등을 통해 먼 길의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해도 이곳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내가 해마다 이곳을 찾는 것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 추억 또는 설렘 등을 안고 있을 것이다.

현실 속 나란 존재도 엇갈린 평가를 받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나를 좋아하지만 어떤 이는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딛고 있는 이곳에서 묵묵히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낼 뿐이다. 소신과 신념을 지키고…. 물론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돼야겠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는다면 매년 나를 찾는 이들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어떤 이들은 나를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올 것을 믿어서다.

사실 이곳 김치말이 국수가 특별하진 않다. 그저 변치 않는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뿐이다.

나도 주변 분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기도 하다. 특별한 존재가 되기보다는 늘 변치 않는, 나를 찾아주는 이에게 늘 변함없이 그가 날 좋아했던 그 가치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마음들을 담아 이번 연재를 이어갈 생각이다.

김치말이국수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김치말이국수:9,000, 만두국: 10,000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 무교로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