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행한 별에 살았던 걸까

틈만 나면 커피로 시비다. 커피를 달고 사는 나로서는 속상하다.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나는 동네 앞 1,500원짜리 커피를 먹는다. 나도 맛있는 커피가 뭔지 안다. 합정동 근처 어느 카페에서는 커피를 5,500원에 판다. 정말 맛있다. 이따금 그걸 먹으러 간다고 이야기하면 무슨 커피를 그 돈 주고 먹느냐고 하겠지만, 그냥 맛있어서 간다. 대신 자주 못 간다. 나도 그게 커피 값 치고는 비싼 걸 안다.

1,500원짜리 커피에 그윽한 향 따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아침마다 커피를 먹는 이유는. 그래, 내 생활패턴이 그렇게 잡혔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맛대가리도 없는 커피를 그저 카페인 때문에 먹는다. 그걸 먹어야 비로소 몸이 오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이따금 내가 먹는 커피 값이 한 달로 치면 십몇만 원이 된다는 이야길 듣는다. 그 돈을 1년간 모으면 한 달치 월세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 돈 아무리 아껴봐야 고작 한두 달치 월세에도 못 미친다. 이거 아끼면 뭘 할 수 있을까? 한 20년 동안 모으면 차 한 대 뽑을 수 있겠다.

물론 내 커피에 불만을 품은 어른들은 내가 먹는 1,500원짜리 커피를 기준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스타벅스 커피는 4,000원을 넘었고 좀 더 비싼 건 5,000에 육박한다. 휴일 같은 에누리도 없이 깔끔하게 30일을 곱해서 나온 가격은 15만 원. 이제 액수가 적당히 크다. 사치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걸 아껴도 크게 윤택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애초에 그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같이 사 먹을 수 있는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 뭐 상관있겠나. 결론은 정해졌고, 커피 값이야 어쨌든 쟤들이 돈 없다, 힘들다 소리치는 건 그냥 니들이 나약한 탓이기 때문일 텐데.

내가 대학생 때 커피는 생활필수품 까지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어지간하면 밥때를 피하긴 힘들다. 그걸 피하면 커피라도 먹어야 한다. 넓디넓은 캠퍼스에는 생각보다 약속 잡을 장소가 많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공평하게 가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당한 장소로 커피숍을 택했다. 거기서 과제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서로를 흉보며 수다를 떨 때도 있다. 어쨌든 그곳은 우리가 만만하게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대학교 때, 알바를 달고 살았다. 이전의 여러 글에도 남겼지만 정말 오만가지 알바를 다 했다. 그래도 생활비가 빠듯했다. 한 때는 고시공부를 했었는데 이때는 고정적인 알바를 할 수가 없어서 고시원 총무 알바를 했다. 정말 돈이 없더라. 밥 굶다 운 적도 있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비참함이 더 컸다.

제일 슬픈 건 커피 먹으러 나갈 수 없는 거였다. 사소한 약속조차 잡을 수 없었다. 물론 내 이런 사정을 설명하자면 친구들은 그깟 커피 한잔이 대수겠냐고 사준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싫었다. 그냥 그런 상황 자체가 모두 싫었다. 나는 고시원에서 섬처럼 지냈다. 사람들과 단절된 채 둥둥 떠다녔다. 두어 평짜리 방, 사람 몸 하나 뉘이기 힘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들 섬처럼 지냈다. 그래 보였다. 나는 저녁밥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내게 커피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포기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고시원이라는 무인도에 낙오된 나는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었고 인터넷도 할 수 있었으며, 조금 낡은 노트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인도에서 나를 구출해주지는 않았다. 당장 나를 여기서 꺼내 줄 수 있는 건, 고시에 합격을 하든 그걸 때려치우고 회사에 취직하든 돈을 버는 일이었다. 고시를 비교적 빨리 포기했는데 그래도 취직이 쉽게 된 건 아니었다. 그 섬에 나는 4년 넘게 갇혀있었던 것 같다.

유복하다고 한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한 손에는 커피. 나도 젊은 애들이 밥을 굶는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다. 당신네 젊은 시절에 가난을 이기려 물배를 채웠단 이야기는 많이 보았다. 너희들은 우리 때보다 낫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왜 튀어나오는지는 알겠다. 이해도 간다.

빈곤의 양태가 비슷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유복한 시대를 자란 우리에게 빈곤은 사실 다른 양태로 온다. 평균값이 다르다고 해서 뒤쳐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뒤쳐짐은, 비록 양태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박탈감을 주며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끼니를 걸렀던 당신들의 삶이, 빈곤이 곧 관계의 단절로 직면하는 우리보다 나았단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빈곤의 형태가 다르게 찾아온다는 거다. 아 물론, 기사에서 접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세대도 밥 굶은 경우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더 슬픈 일은, 그 뒤쳐짐을 이겨낼 동력조차 녹록지 않다는 거다. 이건 어른들도 기사에서 봤을 거다. 역사상 최고로 취업이 안 된다고 한다. 호봉제의 세상에서 ‘나이 먹음’을 적당한 호사로 누렸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평생 오르지 않는 비정규직의 임금체계를 각오해야 한다. 적당히 좋은 곳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운 좋고 실력 좋은 친구들은 성과연봉 제니 뭐니 하면서, 취업할 때부터 직장에서의 수명이 마흔 중반을 넘지 못할 거란 걸 각오하고 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우리 대부분은 미래를 설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를 사 먹는다. 차라리 커피 값을 아껴서 몇 년 안에 이 지긋지긋한 월세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야 당장 커피를 끊을 수 있겠다. 내 집 마련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이것저것 포기하고 나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론 이렇게 해서 숨 쉴 여유를 만든 나는 내 세대 청년 중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운 좋게 평균 이상의 생활에 안착한 나는 이것저것 꽉 막힌 미래의 과업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 년에 한 번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그게 우리의 사치의 이유다.

우리의 가난이 당신들의 경험으로 치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애 낳으라’는 윽박 그거 하나도 무섭지 않다. 우린 단체로 파업하고 있는 게 맞다. 출산을 빌미로 교섭을 하고 싶으면 요구조건에 맞는 걸 가져와야 할 것 아닌가. 뭐 고스펙 미혼 여성을 어쩌겠다고?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