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이 이거 모르면 간첩인데?

뉴스에서는 연일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떠든다. 이는 곧 나의 예비군 훈련일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다 조기퇴소는 커녕 군복 입은 채로 전쟁터에 쿠팡맨 로켓배송이 되는 게 아닐까. 아아 눈치 없이 왜 미사일은 발사해서. 이런 세계평화의 층간소음 같은 녀석.

계속되는 신경과민에 예비군에 간 꿈을 꾸었다. 중대장님은 우리 주변에는 간첩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심지어 우리 중에 숨어있는 간첩을 찾으면 일찍 집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거 사실이지요? 마시즘은 간첩을 구분하기 위해 PX로 향한다. 음료수만 있다면 난 간첩을 구분할 수 있거든.

오늘은 음료수로 간첩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본다. 이거 모르면 진짜 간첩인데.

헬로 팬돌이(이하 팬돌이)로 대표되는 어린이 음료를 마실 때는 입구로 병나발을 불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팬돌이 뚜껑에 음료를 담아 소주를 들이키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팬돌이를 원샷 한 후에 ‘캬~!’하고 머리에 뚜껑 잔을 털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격식이 제대로다.

하지만 25~30세 남성이 팬돌이의 뚜껑을 버리고 그냥 마셨다? 그는 분명 유년기를 외국에서 보내고 국내에 침입을 했을 확률이 크다. 이 녀석 생김새는 신토불이였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한국인이 절대 읽지 못하는 문구가 3가지 있다. 미세요. 당기세요. 그리고 바나나맛 우유다. 1974년부터 우리는 이 우유를 바나나 우유라고 부르고 있다. 가끔 뚱바, 단지우유, 항아리우유 등의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바나나’맛’ 우유라고 스타카토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목욕탕이나 편의점에서 이 우유를 보고 바나나맛 우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람은 암암리에 ‘맛’을 묵음처리를 하기로 했는데 이를 발음해? 당장 가까운 국립국어원에 신고하자.

요플레는 우유에 유산균을 발효시켜 응고시킨 음료다. 요플레는 뚜껑을 열면 요플레가 묻어 나오는데,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뚜껑을 먼저 핥아먹는다. 흙수저부터 금수저까지 요플레 앞에서는 수저보다 혀가 먼저다.

평소에는 민간인처럼 보였는데 요플레를 먹을 때 뚜껑을 핥지 않는다면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필요가 있다. 지난 정부에서 밝힌 간첩식별법 중 하나로 ‘갑자기 생활수준이 높아진 자’를 들고 있기 때문. 재벌 총수를 넘어 요플레 뚜껑을 버리는 자가 되었다니.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고대상감 아니겠는가?


음료수에는 ‘마시고 난 후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봉봉, 코코팜, 잔치집 식혜 등에 적혀있는 ‘흔들어 드세요’라는 문구다. 우리는 왜 이 문구를 늦게 발견해서, 음료수 안에 알갱이들을 푸짐하게 남겨놓는 것일까?

하지만 봉봉을 자연스럽게 흔들어서 마시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캔의 구석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문구까지 달달 외워서 침투한 간첩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매사에 꼼꼼한 믿음직한 친구겠지?


요구르트가 언제 가장 맛있는지 아는가? 배가 고플 때? 얼려 먹을 때? 아니다. 요구르트는 거꾸로 뜯어 마실 때가 가장 맛있다. 이는 한국인들의 집안 대대로 전래된 비기다. 요구르트 어디에도 거꾸로 마시라는 안내는 적혀있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구르트에는 왜 뚜껑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요구르트를 거꾸로 마실 줄 모르고, 똑바로만 마시는 간첩들을 잡기 위한 국정원의 함정이다. 요구르트를 똑바로 세워 마신다고? 당신은 이미 국정원의 손아귀에 걸려들었다.

소주의 독소제거는 일종의 총검술이다. 화려함의 정도만 다를 뿐, 소주를 마신다면 모두 독소를 제거할 줄 안다. 제식은 다음과 같다. 소주병을 두어 번 흔들어 회오리를 만든다. 소주를 뒤집어 밑등을 팔꿈치로 찌른다. 뚜껑을 열고 두 손가락으로 소주의 목을 쳐 절도 있게 독소를 빼낸다.

아무리 술자리라도 상대가 독소제거 없이 술을 마신다면 의심하고, 순순히 국가기밀을 넘기지 말자. 뒤늦게 하는 말이지만 소주에는 독소가 없다. 위와 같은 행동은 옛날 소주. 그러니 코르크마개로 뚜껑을 막던 시절에 소주에 떨어진 코르크 조각들을 날리는 역할이었다. 쉿 이것도 국가기밀이다.

그래! 간첩은 바로 당신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잠에서 깼다. 조기퇴소를 할 수 있었는데! 허나 생각해보니 음료수에도 적혀있지 않은 행동을 못한다고 해서 간첩취급을 하는 것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인 것만 같다. 간첩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음료수에 있어서는 간첩인 그들을 발견하면 곧장 마시즘에 신고하자. 음료사랑은 나라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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