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또 한명의 솔로부대원을 잃었다. 예식장에서 잇몸을 만개하며 웃던 그의 행복함은 진심이겠지. 하지만, 두어달 전 다급한 목소리로 “형, 결혼 전에 새 카메라 질러 말어?” 하고 묻던 그의 질문도 역시 진심이었을 거다. 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들었다.

국립국악원

결혼 전에 게임기와 PC업그레이드를 하자!는 글에 전국 유부남들의 공감이 이어진 것을 보며, 결혼 전에 대비해야 할 것들을 더 찾아봤다. 그렇다. 게임 외에도 우리에겐 다양한 취미생활들이 있었다. 두 달 전 그에게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질러야 덜 후회한다.

1. 사진 “풀프레임 미러리스는 대박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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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년간 아마추어 사진가로 취미활동을 하면서 ‘카메라는 최신형이 깡패’라는 것을 잘 알게됐다. 마침 요즘 캐논 니콘 소니 3사에서 사활을 걸고 각축을 벌이는 시장이 있으니, 그게 바로 최신깡패 풀프레임 미러리스다.

막 대세가 되고 있는 기술이라면 당신이 결혼한 뒤에도,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최소 몇년 정도는 대세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 잔존가치까지 기대하며 구매할 수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사야하냐고? “지금 가진 카메라도 사진 잘 찍히잖아?”라는 아내의 질문을 돌파할 수 있겠는가?

▶ 캐논 EOS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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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의 최신형 그것이다. 타사의 바디가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마빡(카메라 정면 상단)의 CANON에서 풍기는 스웩은 캐논이 짱이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커플사진, 여친사진, 아내사진에는 캐논이다. 게다가 이건 작고 가볍다! 캐논의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겐 아주 반가울 물건이다.

화소는 3,030만. 최대 6,720 * 4,480 픽셀의 해상도. 최대 초당 8회 연사, (비확장)최대감도 ISO 40000, 셔터스피드 1/8000초를 지원한다. 1DX-1DC 같은 프로페셔널급 장비를 제외하면 캐논에서 그동안 출시한 동급 풀프레임 바디들보다 스펙이 후하다. 스펙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4K 동영상도 지원되고, 무게도 580g(배터리 포함시 660g)에 불과하다.

캐논의 심장과도 같은 50mm 1.2L 렌즈가 이 바디(현재시점 기준, 실제로는 캐논 RF 마운트) 전용으로 나왔다는 것만 봐도, 캐논이 풀프레임 미러리스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니콘 Z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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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거의 안 쓰는 말이지만, 한때는 ‘남자는 니콘’이라고 했다. 기계적인 성능에 올인하는 느낌이 강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남성 솔로부대가 많이 써서 그런 것이라는 목격담에 기반한 ‘썰’도 있다. 어쨌든 종합해보면 니콘 Z7은 기계적인 성능에 올인한 남성 솔로부대의 최신식 무기다.

곧 결혼해서 솔로부대를 탈영할 당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니다. 잘 어울릴 것이다. 아저씨는 이유 없이 외로운 법이니까. 아내와 자녀들이 있음에도 산으로 바다로 다니는 형님들을 떠올려 보자. 형님들은 주로 새, 일출, 꽃, 풀떼기, 풍경 등을 찍으신다. 커플 스냅사진 같은 잔망스러운 것은 단호히 거부한다. 모든 번뇌를 뒤로하고 기계적인 신뢰도가 중요한 혹독한 대자연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카메라로 대자연에 맞서고 싶다면? 니콘 Z7을 고려해보자.

4,575만 화소는 대자연에 맞서는 당신에게 크롭의 자유를 준다. 초당 9연사 지원, 최고 감도 ISO 25600, FHD영상 촬영시 초당 120프레임 촬영가능한 점도 장점이다. 5축 손떨림 방지 기능은 은혜로운 수준. 서브셀렉터 조이스틱으로 측거점 이동이나 메뉴간 이동이 편리한 점도 좋다.

▶ 소니 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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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억울하다. 풀프레임 미러리스의 원조이며 스펙도 늘 좋았는데 ‘응 쏘니’ 한마디로 무시당했다. 하지만, 소니 A9은 다르다. 고급~프로패셔널의 영역을 노렸고 최고의 스펙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시장을 평정했다. 2017년에 나왔지만 화소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스펙에서 여전히 풀프레임 미러리스 지존이다. 가격도 지존이다.

스펙이 장엄하다. 최고 감도 ISO 51200, 타사의 프레스용 카메라를 압도하는 초당 20매 연사, 뷰파인더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 커버하는 693개의 초점영역, 무소음 무진동 촬영지원, 5축 바디 손떨림방지, 오버샘플링 4K 영상촬영까지.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로 하이아마추어 이상의 사진가를 꿈꾸고 있다면 소니 A9이 좋은 선택지다.

앞, 뒤, 위 어느방향에서 봐도 눈에 띄는 듀얼 다이얼(일명 쌍견장)은 소니 A9의 포인트다. 클래식한 멋과 조작의 신속함을 모두 잡았다는 평이다. 니콘 Z7의 서브셀렉터처럼 소니 A9에도 조이스틱이 있어서 측거점 이동이나 메뉴 선택이 간편하다.

음악감상 : 헤드폰, 이어폰, 나만의 동굴에 들어갈때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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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에서 열받은 날, 배우자와 다툰 날, 운 좋게 혼자 있는 날은 나만의 동굴에서 힐링이 필요하다

결혼해서 유부남, 유부녀로 거듭난 당신. 하지만, 회사에서, 집안일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등등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여전히 생긴다. 이럴때 나만의 동굴에서 힐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결혼해서 누군가와 함께 살면 나만의 동굴에 들어갈 시간도 공간도 마련하기 어렵다. 출퇴근길, 혹은 집에서 잠들기 전에, 주말 낮에 배우자가 외출하고 잠깐 혼자 있을 때, 이런 잠깐의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이 짧은 시간에 나를 힐링해줄 뭔가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음악감상을 추천한다.

▶ 헤드폰 : 유선? 무선? 어쨋든 미리 사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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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성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웅장한 공간감을 느끼며 나만의 음악세계에 빠지고 싶다면 헤드폰이 잘 어울린다. 헤드폰은 결혼 후에 구매하기 어려운데, 헤드폰이라는 물건이 기본적으로 귀마개처럼 생겨서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기 때문에 배우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차단’ 당한 느낌이 들어서 유쾌하지 않다. 그러니 결혼 전에 미리 구매해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때만 이용하도록 하자.

 

고급 유선 헤드폰 중에는 앰프, DAC 없이는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 제품도 많기 때문에, 스마트폰같은 범용 기기에서도 볼륨확보가 원활한지 사전에 후기를 잘 살펴보고 골라야 한다. 전통적으로 이 영역에서는 Ultrasone의 에디션8 시리즈가 작고 예쁘고 소리 좋고 비싼 제품으로 유명했다.

요즘은 블루투스 최신버전을 이용한 고음질 무선 헤드폰이 나오고 있어서, 이런 제품을 잘 이용하면 선에서도 해방되고, 고음질도 즐길 수 있다. 이 영역에서는 보스와 소니가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앞세워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 이어폰 : 출퇴근길을 음악감상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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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어폰이라면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 없어서 안심이다. 요즘은 이어폰도 고급은 수십만 원 이상을 부르기 때문에, 결혼 후 배우자에게 허락받고 구매하기는 좀 부담스럽다. 이정도는 결혼 전에 미리 힐링 용품으로 하나 장만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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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PK-2이지만 PK-1도 똑같다. 외모로는 지구 모든 이어폰 중에 최악의 가성비

YUIN PK-1 이어폰은 천원샵에서 파는 이어폰보다 더 못생겼다. 그런데 믿기지 않겠지만 비싸다. 약 20만 원이다. 게다가 소리도 나름 오픈형 끝판왕급으로 대우받는다. 깜빡하고 카페에 놓고와도 아무도 안 주워가는 것은 장점. ‘내가 음악감상에 조예가 깊다’고 우겨도 아무도 안 믿어 주는게 단점. 이걸 20만원에 산다고 하면 배우자가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다면 필히 결혼 전에 구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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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LENTO REMOTE (셀렌토 리모트)는 헤드폰 시장의 강자 베이어다이나믹에서 만든 신형 이어폰이다. 베이어다이나믹의 하이엔드 헤드폰인 T1의 소리를 그대로 이어폰으로 옮겼다는 평을 받는다. 일단 소리가 좋고, 예쁘고, 고급스럽다. 작은 이어폰이지만 여러 파츠가 분리형이라서 유지관리가 수월한 것도 장점. 최소 몇 년 정도는 최고의 음질로 귀호강하며 힐링할 수 있겠다. 100만 원이 넘는 가격때문에 배우자가 구매를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단점. 그러니 미리 구매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피규어, 프라모델 : 이건 돈 드는 거 아냐, 재테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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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재테크입니다

몇년 전에는 피규어, 프라모델 수집이 취미라고 하면 “어…음….네…”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오~” 하는 경우가 늘었다. 대신 이런 ‘수집형 취미’가 돈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일 터, 그와 그녀의 디펜스를 돌파할 좋은 키워드는 바로 ‘재테크’다.

요즘 피규어 제품은 대부분 한정판이거나 일정 기간 동안만 생산하고 단종한다. 그래서 실제로 단종된 후 수요가 꾸준하다면 가격이 점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단, 모든 피규어가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고 일부 인기모델만 그렇다. 게다가 해당 모델을 재생산하거나 캐릭터의 인기가 떨어지면 가치가 크게 떨어지기도 한다니 대박 노리다가 쪽박 찰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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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도 크게 보면 수집형 취미이므로 피규어와 비슷하다. 건담 프라모델이 제품도 많고 수집가도 많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외 건축물, 밀리터리, 자동차 등 실존하는 물체의 축소판 프라모델도 나름 매니아들이 있다. 피규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프라모델은 재발매, 재생산이 잦기 때문에 미개봉 재테크는 드물다는 점. 그리고 구매하면 끝나는 피규어와 다르게, 프라모델은 직접 조립하고 후처리를 해야 한다는 점.

장점은 프라모델 만드는 것에 순수하게 몰입하므로 건전한 취미생활로 인정받기 좋다. 단점은 자신이 조립 후 후처리(도색이나 디오라마 제작)의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면 재테크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가 ‘재테크’를 좋은 수집 핑계로 삼을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덕분에 평소 눈여겨본 고급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하나쯤 구매해서 신혼집에 장식해둘 수 있겠다. ‘이건 취미생활겸 재테크야’ 라는 문장은 숙어니까 외워두면 좋다.

취미생활도 지키면서 행복한 신혼을 맞이하자

결혼한 두 사람이 서로의 생활방식을 하나로 조율해가는 과정에서 자잘한 마찰이 생기는 경우는 신혼 초기에 흔한 일이다. 만약 결혼 후 배우자가 내 취미생활을 100% 지원해주지 않을 것 같다면? 이 글에서 소개한 대로 결혼 전에 한방(?) 지르고 “원래 내것이었어”를 외치며 신혼집에 가져가는 방법 뿐이다.

허락보다는 용서가 쉽다며 결혼 후에도 ‘막 지르라’는 명언도 있지만, 정도가 과도하거나 빈도가 잦다면 부부사이의 큰 문제가 된다. 그러니 애초에 질러서 결혼 초반의 취미생활을 윤택하게 꾸려가자.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둔 그대들이여, 결정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제와 결재의 자유를 모두 가진 찬란한 시기가 끝나기 전에!

 

기획, 글, 사진 송기윤 iamsong@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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