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이 노래 모르는 사람 솔직히 없다..ㅇㅈ? 함께 추억 속 음료 살펴볼까요?

국립국악원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혼자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거리에 나온 이유는 오로지 하나. 새로운 음료수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가 지나가자 귀청이 떨어져라 노래를 부르던 선거운동원이 춤을 멈추고 외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언젠가
마주칠 거란 생각은 했어

(동네마트의 황금코너. 짜잔!)

편의점이 아닌 마트에 오길 잘했다. 가끔씩 내가 멀리 마트에 음료수를 사로 오는 이유. 그것은 편의점에서는 볼 수 없는 옛날 음료들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주 단단히 운이 좋은 날이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니. 글씨체 하나 바뀌지 않은 디자인에 타임머신이라도 탄 기분이다.

심지어 싸다. 한 캔에 300원. 대한민국 음료계에 한 획을 그은 음료가 이토록 싸다니. 나는 매대에 있는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를 모두 장바구니에 쓸어담았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 녀석을 보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추억만이 가득했으니까.


이준기, 이준기 
그리고 이준기

(사진만 봐도 노래가 들리는 기적)

초록매실에게 ‘조성모’가 있다면,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에게는 배우 ‘이준기’가 있다. 그가 없었다면 이 음료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석류로 만든 게 뭐가 그리 특별한데, 아니 그전에 석류가 뭔데?

이 역사적인 만남에는 비화가 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원래는 소녀는 석류를 좋아해였다)’는 출시 한 달 전까지 광고모델을 구하지 못했다. 일단 큰 맘먹고 접근한 송혜교가 모델을 거절했다. 찾고 찾아서 음료와 어울리는 여배우를 구했지만 역시 거절. 광고 제작자는 결심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자다.

그렇게 당시 신인이었던 이준기가 피아노 앞에 앉히게 되었다. 자 그리고 급하니까 일단 따라 부르세요.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자꾸자꾸 예뻐지면 나는 어떡해…” 음이탈이 일어나도 오케이. 만든 것만 해도 어디냐는 제작자의 기대와 달리(?) 이 광고는 히트를 쳤다. 출시 한 달만에 100억 원의 매출. 그리고 그 해의 음료가 되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는 히트를 쳤지만, 이준기에게는 흑역사가 되었다. 아직도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질문은 “석류를 좋아하세요?”라고. 나 또한 그의 고통을 이해한다. 고등학교 동아리 미팅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가 혼자 집에 갔었거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험. 그 충격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성 앞에서 말을 절었다.


광고로 흥한 음료 
광고로 망할지니

(한국 광고에서 가장 무서운 작품이다. 클릭하면 재생)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해의 음료와 광고를 석권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는 다음 해부터 판매량이 귀신 같이 줄어들었다. 이 녀석이 불 붙인 석류 열풍으로 수많은 석류제품이 쏟아졌다. 석류 음료는 기본이고 석류 스테이크, 석류 팩도 나왔다. 석류 발모제도 나왔으니 나올만한 것은 다 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가훈 내지는 좌우명이 모두 같다는 것이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거의 선거구호급의 문장 아닌가.

내부의 문제도 있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의 제조사인 롯데칠성의 후속 음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Queen’이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 뒤 새로운 음료를 많이 냈는데 큰 반응이 없었다. ‘비오기 전 봄녹차’라거나 ‘내몸에 흐를류’라거나(당시에는 이름이 길어야 마실 맛이 났다).

소비자의 입장도 중요하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의 다음 광고가 준 충격이 재난급이었다. 이준기를 모델로 순정만화 버전의 광고를 만들었는데 파괴력이 대단했다. 심지어 허세 넘치는 소년만화 럭키짱을 달고 살던 나도 깜짝 놀라 손과 발을 확인했을 정도다. 네티즌은 말한다. 이 광고로 인해 이준기 팬들 중 반절이 손발이 잃고 떠났다고.


미녀는 아니어도 
추억은 석류를 좋아해

물론 지나간 일이다. 이제는 추억이 된 음료일 뿐. 모든 오글거림과 광고를 뒤로 하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를 마셔본다. 무더운 여름이니까 얼음도 동동 띄웠다. 그때는 이렇게 색이 고운 음료인지 몰랐다. 아마 인기가 지금까지 계속되었더라면 ‘마시는 홍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적당히 상큼하고 달달한 석류의 맛. 평범하지만 모난 부분 없이 준수한 맛이다. 그런데 탄생부터 절정, 사라짐까지 정말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다. 이야기가 담긴 음료는 언제나 특별하다. 잘 익은 와인은 아니더라도 ‘그땐 그랬었지’라고 추억하며 음료의 시간을 마셔야겠다.

… 는 무슨 뒷면을 보니 유통기한이 6월 29일까지다(오늘은 6월 11일). 젠장 속았다! 어쩐지 300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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