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박이 수학적으로, 무한대의 수익을 벌 수 있었음에도,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18세기 수학자, 니콜라스 베르누이가 제기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이죠.

3화

그 도박이란 건 동전의 앞면이 나올 때까지, 뒷면의 횟수에 2배씩 돈을 주는 방식입니다.

여러 가지 경우가 나오겠죠.

각각의 수익은 이렇습니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반반이니깐, 경우의 수들에 대한 확률은, 이렇죠.

확률과 결과를 곱하면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나오는데요.

도박에 참여할 때는, 모든 경우가 가능하므로 이 도박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모든 결과의 기대 수익을 합쳐서 무한대가 나옵니다.

엥?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를 내서라도 참여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 도박에 응하지 않았죠.

수학적으로 기대 수익이 무한대인데 도박을 거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왜 발생했을까요?

니콜라스의 사촌, 다니엘 베르누이는 이 문제를 기대효용가설로 설명했습니다.

가로축이 돈이고 세로축이 효용이라고 했을 때 도박에 기대하는 효용은 도박으로 딴 금액보다 작게 측정되고 금액이 커짐에 따라 점점 작아지는 형태의 함수를 따른다고 가정했습니다.

그가 가정한 효용 함수는 위험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도박은 이익을 낼지 손실을 입을지 불확실한 상황에 베팅을 하는 게임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만원을 그냥 주거나 만원을 내면 1/4의 확률로 8만 원을 준다고 제안했다 칩시다.

도박으로 1/4의 확률로 7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지만, 3/4의 확률로 만원을 잃고 말 수 있다는 위험이 인지되겠죠.

기대수익은 만원으로 같지만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 때문에 이득일지 손실 일지 불확실한 도박에 기대하는 효용이 작게 측정되고 확실한 만원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도박은 수익금이 커질수록 베팅액이 커지거나 이길 확률이 작아지고 기대효용은 더욱더 작아지죠.

이처럼 인간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대하는 효용을 수학적인 기대치보다 작게 측정합니다.

따라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박처럼 아무리 수학적으로 기대 수익이 무한 이어도 기대효용은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값을 가지고 결국 도박을 거절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기는 것이죠.

경제학에서는 기대효용 가설을 토대로 합리적인 인간이란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기 나름대로 위험을 측정하여 기대효용을 계산해내는 효용 함수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선택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기대효용 가설은 게임 이론 등 많은 이론들과 함께 발전해왔죠.

그러나 아무리 인생은 도박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매번 선택할 때마다 도박에 참여하는 것처럼 위험을 인지할까요?

기대효용에 기댄 선택이 진정으로 합리적일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로 시작된 기대효용 가설이 비판받는 가운데 주류 경제학이 전제한 합리성의 근본을 뒤흔든 또 다른 이론이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