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큐를 위해 정전을 쓰려고 한 것이 한 두 해가 아니었다. 그러나 쓰려고 하면서도 자꾸 망설였던 것은, 나 자신이 교훈적인 말을 남길 만한 인간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국립국악원
아큐정전

아큐는 중국의 농촌 ‘웨이장’에 사는 빈민입니다. 집도 없고, 마을 사당에 살면서,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처지이죠. 그런데 이 친구는 자부심이 무척 강한데요, 상대를 보아 말발이 딸리는 거 같으면 욕을 실컷 퍼붓고, 힘이 달리는 사람을 때리기도 했죠. 그러나 대개는 아큐보다 힘이 세서 보통은 마을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하는데 아큐는 이것을 ‘정신승리법’으로 이겨냅니다.

정. 신. 승. 리. 법?!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동네 건달들이 습관적으로 아큐를 놀리거나 때리는데 아큐의 변발을 틀어잡고 벽에 몇 번 쿵쿵 찧고서야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큐는 에휴~ 내가 아들뻘에게 맞은 셈이군. 세상 개판이야 개판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승리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마을의 누구에게 경멸을 당해도 스스로 합리화하고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놀라운 정신승리법이죠.

어느 날 밤은 야바위에 참여해서 솔쏠하게 돈을 땁니다. 그런데 아큐가 너무 잘 따니까 갑자기 야바위꾼들이 구타와 욕을 하면서 돈을 갖고 사라져 버립니다. 아큐는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맞은 것도 서럽지만 내가 땄던 돈들이 전부 없어져서 너무 서러운 거예요. 아큐는 처음에 너무 분한 마음에 오른손을 들어 크게 자기 뺨을 두 대 쳤는데 그게 좀 아프더랍니다. 하지만 때리고 나자 마치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두 발 뻗고 편하게 잠을 잡니다. 분도도 승리로 바꿔버리는 능력자인 거죠.


중국 근대의 가장 유명한 소설가 ‘루쉰’이 쓴 ‘아큐정전’은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입니다. 그가 신문에 ‘아큐정전’을 처음 연재했을 때에는 유머란에 있을 만큼 희화화된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루쉰은 이 소설을 통해 중국인들의 국민성과 당대의 정치 상황을 비판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자존감도 중요하지만 삶 속에서 자기의 패배를 충분히 성찰하지 못하고 빠르게 합리화하면서 정신 승리하는 건 위험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