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업계에서는 PO(프로덕트 오너)라는 직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PO의 부상은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고속 성장하고있는 IT기업의 성공 사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PO는 프로덕트에 대한 로드맵, 전체 일정을 관리하고 개발, 디자인 등 관계된 사람들과 업무를 조율하며, 우선순위 등을 결정합니다. 프로덕트가 고객을 만나기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책임을 갖고 있기에 ‘미니 CEO’라 불리기도 합니다. 

스타트업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인터뷰 시리즈 – 스여일담(談), 이번 인터뷰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소통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굿닥의 PO 신유진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타트업에서 같은 사람들과 꿈을 꾸고 몰입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즐거운 신유진 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진님!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헬스케어 솔루션 굿닥에서 PO로 일하고 있는 신유진입니다. 굿닥에서도 굿닥스토어라는 제품을 맡고 있고, 이커머스와 헬스케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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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닥 사무실에서의 유진님>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커리어를 선택해 왔는데, 스타트업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전공이 사회학이었어요. 수익을 추구하는 일 보다는 사람들의 발전을 위한 일을 하고싶어서 대기업의 HR 부서로 입사 지원을 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발령받은 부서는 영업관리 및 기획이었습니다. 3년 정도 일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고민도 되었구요. 성장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리고 저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사람이라, 이 부분도 중요한 고려 요소였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마리몬드를 알게 됐어요. 이 회사라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생겼어요. 두 달 정도 시간을 투자해 마리몬드 대표님 인터뷰를 모두 찾아 읽고, 오프라인 매장도 방문 해보며 이 회사에 합류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어떠셨나요?

마리몬드에서 일하는 동안 정말 행복하게 일했어요. 17년도부터 2년간 일했는데, 지금까지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가장 저를 불태우며 일했던 시간이에요. 마리몬드의 미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같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모이면 어떻게 회사를 성장시킬지 이야기하곤 했어요. 사람들과 같은 꿈을 꾸고,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당시에 주니어 레벨이라 새롭게 주어지는 일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어요. 사수도 없었고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버거웠어요. 물어볼 사람도 없고 프로세스도 없으니까 무턱대고 찾아서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나요. 입사 후 3개월까지가 제일 힘들었고요, 그 이후부터는 다른 회사에서 같은 직무를 하고 있는 지인들의 조언 덕분에 점점 괜찮아졌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년 쯤 지나니 불확실한 상황에 잘 대처하게 됐어요. 팀이 바뀌며 새로운 일을 할 때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되찾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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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워크샵, 마리몬드 구성원들과 함께 한라산에 등반한 유진님 (와인색 모자)

마리몬드에서 제대로 성장을 경험했네요. 행복했던 조직에서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리몬드에 30번째 멤버로 입사했는데 2년 만에 70명이 되더라고요. 회사가 점점 커지다보니 초기 유대감이나 비전, 미션을 공감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달랐어요. 구성원들과 생각의 차이가 많이 난다고 느끼고 있었죠. 그 즈음 함께 일하던 상사가 ‘어피어’로 이직을 할 예정인데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초기단계의 스타트업 일을 해볼까 싶어서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어피어는 굿닥의 신사업 조직이었고, 모기업이 있으니 조금 더 안정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어피어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아쉽게도 프로덕트 마켓 핏(시장 검증)에 성공하지 못했어요. 배운점도 많았지만 한계도 많이 느꼈죠. 잘 해보고 싶었던 서비스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어요. 무엇을 더 보강할까 생각하다가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대학원에 가려고 했어요. 회사에 말씀을 드렸더니 대표님이 제 커리어를 위해 1-2년 정도 실무를 더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을 해주셔서 굿닥의 PO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사용자와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PO(프로덕트 오너)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여러 직무를 경험하셨는데, 지금의 직무인 PO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동안 회사를 옮기면서 영업관리, MD, 마케팅, 해외영업 등 회사에 필요한 일들을 다 했어요. ‘할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해야지’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PM/PO의 업무를 하게 됐어요. 이 직무에 흥미가 생겼고, 더 깊이 알고 싶어졌어요. 직무 욕심이 생겼다고 해야할까요? (웃음) 다음에 이직을 한다면 직무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고려할 것 같아요.

PO에 많은 애정을 갖고 계시는 게 느껴져요.  PO로서 어떤 일과를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PO는 자기가 맡은 서비스의 전날 데이터를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는 굿닥 내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직 많지 않아요. 루틴한 일정이라고 한다면 주마다 전체 PO회의 참석하는 일, 그리고 각 팀에서 어떤 기획과 업무를 진행하는지 확인하며 기획서를 피드백 하는 등의 일들을 합니다.

팀의 기획 업무는 투트랙으로 하고 있어요. 팀원들의 니즈나 업무 스타일을 반영해 두 가지로 나눠서 일을 한다는 말인데요. ‘기획 – 디자인 – 개발 – QA – 배포’처럼 일반적인 순서를 따라 업무를 만들어 가기도 하고, 빠른 속도를 원하는 구성원들에 맞춰 기획을 간소화 하고, 바로 개발을 진행하는 등 새로운 프로세스로 업무를 시도하기도 해요. 어떤 방식이 우리 팀에 더 잘 맞는지 계속 테스트하는 중입니다.

PO가 해야할 일이 많네요. PO의 매력과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PO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유저의 입장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할까?’ 일 거예요. 몇 가지 가설을 세운 뒤 프로덕트에 반영하는 작업을 하죠. 그러면서 내가 세운 가설이 실제로 유저들에게 반응이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또 IT 프로덕트를 기획하다 보니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다는 속도감도 좋은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이라면 업계가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에요. 서비스나 기능도 고려하다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속한 산업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산업마다 유저들이 가진 특성이 달라요.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모든 부분을 커버할 수 없다보니 커뮤니티에서 부족한 정보와 경험들을 나누며 많이 배우죠.

PO는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하겠네요. 유진님이 보기에 PO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면 무엇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이 일을 왜 해야하는지 납득시키는 능력,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발자나 디자이너의 리소스는 항상 부족해요. 때문에 그 사람들도 의미있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업무를 원활하게 할 수 있어요. 그들이 원치 않아도 일을 진행해야 할 때는 설득도 해야 하고요. 저도 아직 부족하지만 최대한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해요. 기능적으로 일하기보다 어떤 단계를 거쳐 진행하고, 왜 이런 단계로 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PO는 분야가 다양하고 광범위한데 유진님만의 학습 분야나 방법이 있나요? 

PM/PO마다 잘하는 핵심 역량들이 있어요. 고객의 목소리 (VOC)를 잘 파악해서 이를 프로덕트에 잘 적용시키는 분들이 있고, 프론트 단의 UI/UX를 잘 기획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백 단의 데이터(DB) 구조에 좀 더 관심이 있어요. 

앞서서 제가 굉장히 다양한 직무에서 일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것들의 공통점이 뭘까 생각해보니 ‘데이터’였어요. 영업도 마케팅도 기획도 모두 데이터를 활용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 검증을 하는 업무를 했어요.

예를 들어 영업 관리의 경우, ‘어떤 국가에서 제일 잘 팔릴까? 어떤 고객군에게 판매하는 게 가장 이익률이 높을까?’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데이터로 검증했죠. 마케팅에서는 ‘어떤 채널에서, 어떤 방식으로 광고 집행을 해야 ROAS (Return on Ad Spend – 집행한 광고비 대비 매출)가 잘 나올까?’를 고민하고 가설 검증하죠. 제품 기획 역시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를 했을 때 클릭률이 더 올라갈까, 구매 전환율이 더 올라갈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데이터 분석으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PO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프로덕트가 성공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보면서 계속 바꾸게 되잖아요. 그래서 디자이너, 개발자와 일 잘하는 방법이 중요한데요. 디자이너 개발자와 일 잘하기 위한 유진님만의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요.

우선 피드백을 많이 받으려고 노력해요. 개발자랑 디자이너들도 각각 사람들마다 업무적 특성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세하게 기획서를 써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자세하게 하면 오히려 기계같이 일하는 느낌을 받으니까 조금 더 큰 범위에서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실상 프로덕트를 만들어내는 게 PO의 역할이니까 제 업무 방식을 강요하기보단 디자이너, 개발자 특성에 맞춰서 진행을 하려고 해요.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어떤 기획자랑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기획자에게 요구 하는 게 무엇인지를 자주 물어봐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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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PO가 되기 위한, 유진님의 추천 도서>

요즘 PM/PO를 꿈꾸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유진님도 대기업에서 일하고 PO라는 직군을 전혀 모르다가 단계 단계를 거쳐 PO를 하고 있으시잖아요.  PM/PO를 꿈꾸는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는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이미준님이 쓰신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사수 없이 시작하는 웹/앱 프로덕트 실전 입문서)과 김성한님이 쓰신 프로덕트 오너(PO가 말하는 애자일 혁신 전략)를 추천 드려요. 작년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이 PM/PO의 입문서로서 PM/PO가 무엇인지부터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가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도움이 돼요. 저도 PM이라는 직무를 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직무가 익숙해진 분들께는 린분석(성공을 예측하는 31가지 사례와 13가지 패턴)을 추천드려요. 어피어 시작 초기에 대표님 추천으로 읽었는데 그 때는 감흥이 없다가 1년 반-2년이 지나 다시 읽었는데 ‘내가 이걸 초기에 왜 이렇게 열심히 안 읽었지, 왜 이 중요한 것들을 빠뜨렸지’라고 생각할 만큼 검증할 수 있는 실질 지표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꼭 추천하고 싶어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지지하고, 현명하게 요구할 줄도 아는 리더가 되는 게 꿈이에요.”

코로나로 인해 재택 근무가 늘고 있는데요. 어쩌면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업무 문화로 정착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재택 근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팀으로는 재택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각자 하고 있는 일을 칸반 보드(Kanban board, 업무 설계 게시판)로 만들어서 서로 공유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이번 주에 조금 놀고 있는지 아니면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서로 다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서로를 지켜보는 눈을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어떤 업무를 마친다는가 집중 업무 시간을 1시~3시로 정한다던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일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후배들이나 개발자, 디자이너들한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좋아요. 굿닥에 갈지 대학원에 갈지 고민을 했었는데 굿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을 때 같이 일했던 마케터랑 디자이너 동료들이 함께 다시 일하게 되서 너무 좋다고 얘기하면서 “대표님한테도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는 말들을 해줄 때가 ‘내가 회사 생활을 그래도 제대로 했구나’라는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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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마케터, 디자이너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하고 있는 유진님 (오른쪽 두번째)>

어떤 리더가 되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2019년도에 처음 팀장이 되었는데 그 때 상사 분한테 혼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리더가 된다는 게 너무 어려웠었어요. 일을 넘기는 것, 피드백을 주는 것 모두 너무 어려웠죠. 게다가 팀원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도 부담 되었어요.

그때 한참 리더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그 중에 도움이 된 책이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과 ‘그릿’이에요. 그 중 ‘그릿’이라는 책에 그릿이 있는 (투지가 있는) 아이를 길러내는 방법으로 사사분면이 나와요. X축이 요구, Y축이 지지였는데 ‘요구와 지지 둘 다 할 수 있어야 현명한 부모다’라고 나오는데 저는 그게 리더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지만 해주고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으면 그 친구는 성장을 못할 것이고, 요구는 하지만 지지를 해 주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네가 이걸 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명확히 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리더가 되려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학습,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등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네요. 이런 열정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한 유진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내가 가는 장소, 내가 읽는 책,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결정한다’라는 괴테의 말 중, 특히 사람이 제게 많은 영향을 줘요. 저보다 열정적인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두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지금 하는 노력은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자연스레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또 그런 사람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다 보니 열정적으로 보인 것 같아요.

유진님이 2021년에 목표하는 바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작년에는 다방면으로 목표를 세웠는데 올해는 집중해서 뾰족한 목표를 세우려고 했어요. 가장 중요하게 세운 목표는 업무용 콘텐츠 글을 20편 이상 쓰는 거에요. 작년 하반기에 힙서비(힙한 서비스들의 비밀)을 통해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업무용 콘텐츠를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브런치를 에세이 형식으로만 썼는데 업무 관련된 내용을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20편 이상 쓰는게 가장 큰 목표일 것 같아요. 그리고 업무용 콘텐츠를 잘 쓰려면 굿닥 스토어를 제대로 만들면서 많은 가설 검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 전 임신을 했어요. 미리 걱정하고 꿈을 꺾기보다 주변에 도움 요청을 당당하게 하면서 엄마로서의 삶과 일을 병행할 예정이에요.”

업무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2021년도 개인적인 삶의 목표도 궁금해요.

제가 임신을 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지금 임신 10주차거든요. 그래서 그냥 무사하게 건강하게 아이를 낳는 거가 제 개인적인 삶의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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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남편과 함께>

축하드려요 유진님!  문득 든 생각인데요. 스여일삶이 생긴 것도 그렇고 스타트업에서 여성들이 일과 삶을 함께 영위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임신을 하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 부담되는 결정일 것 같기도 한데 혹시 그런  부담은 좀 없으셨어요?

예전에 여성 리더십 멘토링을 하면서 셰릴 샌드버그의 ‘린인’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을 보면 닥칠 때 까지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와요. 

여성들이랑 커리어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면 아이를 가질 거라 워라밸이 보장된 회사에 가야하지 않을까 또는 육아 휴직이 잘 보장되는 회사를 가야 하지 않을지를 물어본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남자친구도 없는데 미리 그런 걱정을 해서 오히려 꿈을 꺾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거에요.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서 무조건 이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걱정을 많이 안 하려고 해요. 걱정을 하는 대신 최대한 도움을 요청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가족과 이야기해서 남편이 육아 휴직을 쓰기로 했고 회사에도 미안해하기보다는 그걸 위해서 좀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임신 소식 알게 된 다음에는 바로 대표님한테 이야기 드렸어요. 2021년에 진짜 열심히 일할 건데 9월에는 출산 예정입니다. 하지만 3개월만 출산 휴가를 쓸 거고 저는 바로 돌아올 거니까 심려치 마시라고 얘기했어요.

여성으로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요즘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지금도 물론 하고 싶은 게 많지만 기존에는 다양하게 뭔가를 했다면 점점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좁혀가는 것 같아요. 열정적인 친구들 보면 사이드잡도 여러 개씩 하고 바쁘게 무언가를 많이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저는 잘 안 되더라고요.  몸이 한 개고 또 시간이라는 게 제한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 요즘은 정말 일 그리고 가족 이렇게 좁히고 있어요. 회사 안에서 나의 PMF(Product Market Fit)를 찾자. 그리고 집에서 엄마로서 최소한의 역할은 하자 이렇게 두가지에요. 

힘들거나 우울할 때 나아지기 위해 하는 노력이나 나만의 극복 방법이 있나요?

진짜 우울할 때는 남편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힘들 때 남편이랑 같이 밥 먹고 3-4시간씩 계속 얘기를 해요. 얘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풀리고 정리가 돼요. 내가 지금 뭐 때문에 힘이 드는 건지 어떻게 하면 좀 개선할 수 있을지 정리가 되는데 그래도 안 될 때는 친구들 찾아서 조언을 들어요.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힘든 일을 혼자서 안고 있지 않는다는 거예요. 힘이 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움을 요청하고 사람들한테 계속 물어보면서 힘든 순간을 극복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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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엄마와 함께, 2020년 끝을 기록하며 찍은 증명 사진>

지금의 유진님이 있기까지 영향을 준 사람이나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엄마가 저한테 제일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일 것 같아요. 저희 엄마가 굉장히 강한 분이세요. 아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엄마가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시면서 계속해서 경제 공부하시고 독서 모임 하시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셨거든요. 제가 대학교에 간 이후로 많이 부딪히기도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진짜 ‘내가 엄마를 너무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업무랑 관련된 책이 아니어도 괜찮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추천하고 싶어요. 어떤 사회학 교수가 70세가 넘은 1천 명 이상의 노인들을 찾아서 인터뷰를 한 책이에요.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진짜 70세가 넘어서도 우리한테 정말 중요한 일일까, 그래서 정말 나이든 사람들한테는 인생에서 뭐가 제일 중요했을까, 돌이켜봤을 때 어떤 게 후회가 되고 어떤 게 가장 기뻤을까’를 인터뷰한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제가 미래지향적으로 달려가는 성향인데 이 책이 그런 저를 조금은 더 현재지향적으로 만들어준 책이지 않나 생각해요.

어느 시점의 나라고 딱히 지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잘하고 있어!!”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열심히 살아서 힘들었던 사람들은 과거로 안 들어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저는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는 건 아닌데 과거로 돌아가도 또 그냥 그렇게 열심히 살 것 같아요. 순간 순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고 그래서 어느 순간을 살고 있던 ‘ 잘하고 있어’라고 해주고 싶어요.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은데 최종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셰릴 샌드버그가 제 롤모델이에요. 능력 있는 리더가 되서 제가 살아온 것들을 사람들이랑 공유할 수 있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 

제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7개월 정도 인턴을 했었는데 그때 지역 총괄 공보과라는 곳에 있었어요. 지방에서 주최하는 세미나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는데 여성 리더십 세미나를 했었거든요. 여성 리더십 세미나에 초대한 분들이 잘 알려진 여성 리더들이 아니라 지방에 있지만 여성 리더라고 뽑을 수 있는 분들이었어요, 예를 들면 종갓집 3대 며느리, 김치 가게를 하시는 여사장님과 같은 분들이요. 그 분들이랑 같이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우리가 앞으로 서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참석자들이 “나는 인생에서 한 번도 리더라는 호칭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서로 힘이 되어 주는 모임이 있으니까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걸 경험하고서 훗날 여성 리더십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스여일삶 인터뷰 공통 질문이 있는데요. 유진님을 표현하는 키워드나 물건 3가지를 뽑아주신다면? 

키워드랑 물건을 합쳐 세 가지를 생각해 봤는데요. 

1. 제라늄

2. 민트 초코

3. 영양제

물건으로 저를 키워드로 뽑아 보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생각을 해 봤어요.

먼저, 제라늄은 사시사철 피는 꽃이에요. 빨간색 핑크색 꽃이 예쁘게 피는데 봄에도 피고 겨울에도 피고 계절과 상관없이 계속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해요. 제라늄처럼 어떤 상황에 놓이든 항상 제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거를 표현하고 싶어서 제라늄을  꼽았어요.

그리고 민트 초코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인데 호불호가 있어요. 누군가는 민트 초코를 굉장히 좋아하고 누군가는 민트 초코를 싫어하고요. 민트 초코가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민트 초코만의 강렬한 색깔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색깔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민트 초코를 뽑았어요. 

마지막은 영양제인데요. 저는 영양제를 대학생 때부터 챙겨 먹었어요. 약이랑은 좀 다른게 약은 아플 때 찾아서 먹지만 효과가 강력하다 보니까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영양제는 항상 꾸준히 옆에 두고 먹으면서 내가 부족한 부분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도 다른 사람들한테 영양제처럼 옆에서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서 영양제를 뽑았어요.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여성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끝까지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까 함께 끝까지 힘을 냅시다! 하다 보면 나보다 잘나가 보이는 사람도 너무 많고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하면서 해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잖아요. 나이가 많으신 어떤 여성 임원분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 나는데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남은 여성이 자기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온 게 아닌가라고 하셨는데 그게 진짜 와 닿았어요. 그래서 부족해 보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끝까지 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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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으로 진행된 스여일담 인터뷰>

2021년 스여일삶 슬로건이 Better than yesterday인데요, 유진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제 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보 한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여성으로서 ‘임신’, ‘출산’,’육아’라는 언덕들이 바로 눈 앞에 놓여 있지만 걱정을 하는 대신 도움을 요청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에너지를 받고 응원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길인지 몰라 여러 일을 하며 여러 길을 가고 있어도 괜찮아요!  답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과정일 수 있어요. 혼자가 어렵다면 스여일삶이 함께, 끝까지  나아가길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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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여일삶 김민지, 신연선 에디터
편집: 스여일삶 구아정, 김지영 에디터
사진: 신유진 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