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타트업에서 나 자신과, 회사, 그리고 제품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고군분투했던 일화들과, 그 시간을 보낸 후에 깨닫게 된 내용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스타트업에서 인생을 갈아 넣는 시간들이 분명 현재 내가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지속적으로 일을 해나가고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어떤 방법이 스타트업에서 성장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래에서 소개할 여러 시행착오와 내 사례를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교훈을 얻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인생을 갈아 넣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시기가 있다.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스타트업을 창업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해야 될 일은 많고, 원하는 스펙의 지원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엔 창업 멤버(또는 대표)가 다 해야 된다는 것을… 그래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람들이나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한 사람들은 본인의 직무는 물론이고, 그 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대부분 기존에 해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회사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쓰고,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타트업에 합류한 초기에는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자는 무식한 목표를 정했다. 그래도 일요일 하루는 쉬니까, 하루 평균 16시간만 일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생 시절 공부할 때도 밥 먹는 시간까지 쪼개면서 자격증 공부를 했었고, 컨설팅 인턴 할 때도 비슷한 시간을 일해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는 일해야 내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식하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었다.
스타트업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동료들과 협업해야 될 일들은 조금씩 늘어갔다.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한 시기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구분도 없고, 업무 영역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R&R이 애매한 업무가 있다면 모두 내가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렇게 일이 늘어나고, 서비스 기획 외에도 마케팅, IR, 인사,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업무들을 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밥먹듯이 야근을 하다 보면, 재미난 에피소드도 생긴다. 한동안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는데, 그 시간 대에 당시 사무실 앞을 지나는 택시가 있었다. 한 달 동안 같은 택시 기사님을 3번을 만나니, 나중엔 내 목소리만 듣고 “연남동 이시죠?”라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는 그렇게 택시 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아까워, 평일에는 회사에서 먹고 자고, 주말에만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동료들은 내가 정말 많은 스톡옵션을 받은 줄 오해하기도 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밤을 새든, 여러 업무를 하든 그런대로 버틸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내 몸을 갈아 넣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성과가 안 좋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시간들이 이어지면 그때는 몸과 함께 멘탈도 가루가 되어 간다. 누적된 피로와 함께 번아웃이 몰려오고, 열정적인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현타가 오기 시작하고, 그동안 멀리한 친구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며 후회를 하기도 한다.
휴식을 갖거나 일에 여유가 생기며 다시 원래 모습을 회복하면, 그때서야 갈아 넣었던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무작정 자기 자신을 갈아 넣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래는 그렇게 내가 깨달았던 세 가지에 대한 내용이다.
Lesson 1: 일에 100% 몰입하는 시간을 통해 성장한다
앞서 인생을 갈아 넣었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실은 그만큼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모든 정신을 일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바꿔서 표현을 할 수도 있다. 일에 정말 몰입하며, 한시도 빼지 않고 어떻게 더 잘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기는 분명 개인의 역량 성장과 스타트업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규모가 작을 때일수록,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제품과 스타트업의 성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먹 남녀에서 2.0 개편 기획을 하면서, 고객에 맞춘 레시피를 추천하고자 한 달 넘게 새벽에 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매주 기획을 디벨롭하다 보니,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는 추천 서비스를 설명하는 PPT 페이지수가 100페이지를 넘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그걸 다 들여다보기도 힘들어 다시 요약본을 만들기도 할 정도로 추천 서비스 기획을 위한 정말 다양한 것들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고객에게 어떤 관점(취향, 날씨, 시간대)으로 추천할지, 어떤 방식으로 추천의 경험을 구현할지, 고객의 취향은 어떻게 수집할지, 추천 로직은 어떻게 구현할지, 추천을 위해 기존 콘텐츠의 레이블링을 어떻게 진행할지, 고객이 제작하는 레시피들의 태깅은 어떻게 자동화할지 등등 정말 많은 내용들을 고려하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굉장히 압축적으로 보내고 나니, 그 이후에 다른 기획을 진행하거나 일을 하게 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제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고객에게 노출되며 고객이 경험하게 되는 영역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로직, 데이터, 구조 모두를 고려하게 되었다. 경영학과 전공의 Product Manager 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던 디자인/기술적인 지식들도 이 시기에 정말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일을 할 때도 이때의 경험을 통해, 정말 100% 몰입하고 있는지 최선을 다하는지 자문하게 되는 기준을 갖게 되었다. 무언가 새로 도전할 때는 내가 부족한 지식이나 경험을 채우기 위해 주변 환경과 시간들을 조정하여 몰입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있다. 올해에 처음 뱅크 샐러드에 실험 플랫폼을 구축하게 되면서도, 다른 실리콘 밸리 테크 기업들이 어떻게 실험 플랫폼을 구축하고 실험 문화를 만들어갔는지 밤낮으로 살펴봤다. 물론, 이때는 무작정 내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관련 아티클과 책을 살펴보며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채워 넣었고, 업무 시간에는 실험 플랫폼 구축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을 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나갔다.
Lesson 2: 스타트업과 개인 간 성장 갭은 반드시 생긴다.
다행히 스타트업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제품도 product-market fit을 찾아간다면 제품과 회사, 개인 모두 성장해 나간다. 다만, 이럴 경우 내 경험상으로는 개인의 성장보다는 회사의 성장이 훨씬 빠르다. 스타트업의 성장은 스타트업을 이루는 각 개인들의 성장이 모이기 때문에, 개인 한 명과 비교해봤을 때는 당연히 성장의 갭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유가 어찌 됐든, 스타트업이 규모가 커지고 하는 일의 중요도가 커지는 것에 반해 개인의 역량 성장은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꼭 발생한다.
칙센트 미하이가 몰입의 즐거움을 설명하며 제시한, 과제와 능력의 관계 그래프를 보자. 개인들이 스타트업에서 몰입을 느끼는 단계는 본인의 역량에 맞는 과제를 수행하던 시기이다. 이때, 힘들기도 하지만 잘 버텨내어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과제들의 난이도는 이전보다 더 높아진다. 그러면 몰입에서 각성 → 불안 → 걱정의 영역으로 개인들이 느끼는 상태가 변화한다. 높아진 과제의 난이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의 실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때, 이전처럼 무작정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으면 많은 경우에 번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이전보다 과제의 난이도는 더 높아졌고, 사람들이 거는 기대와 관심도 높아진다. 그리고 개인들의 실력이 성장하는 데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나를 갈아 넣으며, 내가 성장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몸과 정신이 너덜너덜해진다. 분명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회사와 나의 성장 갭을 메우고, 다시 몰입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난이도를 낮추거나, 역량을 올리거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조직의 상사, 대표와 이야기를 하여 업무를 조정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업무를 나눠 갖는 등 R&R을 이때부터 나누어 가져가야 한다. 역량을 올리기 위해선, 좋은 동료를 채용하거나 나를 도와줄 상사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역량을 올리기엔 시간이 필요하니, 대신 역량을 끌어올려준 다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다행히 난이도 조절을 하며 역량을 쌓을 시간을 마련하거나, 부족한 역량을 채워줄 다른 동료나 상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다시 성장하는 경험을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엔 성장에 너무 조급한 나머지, 업무를 조정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장의 핵심이 오래오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친구들도 찾고, 업계 선배들도 만나고, 회사의 동료 들와 이야기를 나누며 본인이 느끼는 불안/걱정의 상태를 공유해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성장을 도와주었다.
Lesson 3 :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100% 쏟아부으며 일에 몰입한다는 의미는 반대로 일 외에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모든 게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아깝고, 운동하는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바쁘니 연애가 잘 될 일도 없으며, 먹는 것도 배를 채우는 용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기간 동안 피부도 안 좋아지고, 살도 찌고, 굉장히 시니컬해졌다.
이런 상황에, 회사와 나의 성장 갭이 벌어지고 다시 나 자신을 갈아 넣다가 번아웃이 왔을 땐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만 하다가, 일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무엇을 해야 될지도 몰랐다. 다들 쉬라고 하는데 어떻게 쉬어야 될지 몰라서, 무작정 고향으로 갔다. 멍하니 하루 종일 바다만 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올레길을 걷기도 하면서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당시의 내 상태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과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내 결론은,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오래 일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 번아웃의 징조는 성장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번아웃이 오면 성장을 위한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그런 노력을 할 수 있을 만한 체력과 에너지(정신)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보고 챙겨줘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의 건강을 돌보아 주겠는가? 나 스스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건강하게 돌봐주어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는 의미에서, 나는 나만의 루틴(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 4가지)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5~6회 운동을 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이렇게 글도 써 내려간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어떤 도전과 성장을 이뤄갈지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내가 업무 하는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명상이나 회고를 통해 내가 어렵다고 느끼거나, 힘에 부치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발견한 이슈들도 ‘부족하면 채우면 되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를 자꾸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를 돌봐주는 서포터가 생겼으니, 오래오래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제품을 성장시켜나갈 일만 남았다. 그렇게 마주할 미래가 기대된다.
장한솔님의 브런치에서 연재중인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기]를 쉐어하우스 비즈니스 카테고리에서 큐레이션 합니다.
EP0. 지난 30년간 나는 특별한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EP1. 성장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1/2)
EP1. 성장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2/2)
EP2.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