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전통의 재발견Ⅲ’ 5월 11~12일 ‘전통’이라는 ‘통’에서, 새로운 국악관현악을 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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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지난 시대부터 계통을 이루며 전해 내려온 사상이나 관습을 뜻한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2021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시리즈 ‘전통의 재발견’ 시리즈는 이러한 전통-음악이 담긴 ‘통’ 속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전통음악의 미학을 ‘재발견’하는 프로젝트이다. 오래된 ‘통’ 속에 담긴 ‘전통’을 꺼내, 이 시대와 ‘통’하는 음악을 빚는 것이다. 작곡가 유민희, 강은구, 장석진, 강상구의 신작이 오른다.

​그들이 전‘통’에 손을 넣어 꺼낸 것들은 무엇일까. 유민희진도 씻김굿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유의 소리’를, 강은구수제천 속 그리움을 표현한 ‘마음의 소리’를 들춰본다. 장석진유초신지곡에 담긴 ‘흐름의 소리’를, 강상구 ‘너머의 소리’로 북한 서도지역의 음악을 살펴본다. 네 작곡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전통’에서 재발견한 소리의 유산들을 만나본다.


굿이 놀 수 있도록, ‘작곡’이 아닌 판을 만든 ‘작판’의 기법

유민희 작곡_ 아쟁 가야금 인성을 위한 협주곡 ‘씻김(Rede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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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을 짓는다는 게 반드시 무(無)에서 유(有)로 향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기존 유(有)의 어느 한쪽을 틀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이면(裏面)을 드러내는 것도 작곡의 한 기법일 수 있고, 기존에 존재하던 소리의 덩어리를 들어 올려 그간 보지 못했던 그것의 밑바닥이나 심연을 보게 하는 것도 작곡일 수 있다.

​유민희의 아쟁·가야금·인성을 위한 협주곡 ‘씻김(Redemption)은 국악관현악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진도 씻김굿의 이면과 심연을 보게 하는 곡이다. 하여 유민희는 이 곡에 있어 무(無)에서 유(有)를 낳는 전지적 창조자라기보다, 진도씻김굿의 한 덩어리를 국악관현악의 여러 소리로 들어 올려 곳곳을 살펴보게 하는 기중기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 편안한 세계로 가도록 기원하는 진도지역의 굿이다. 원한을 씻겨준다고 하여 씻김굿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상과 함께 하는 ‘종교적 의례’로 태어났고, ‘문화유산’으로 흘러 내려와 오늘날 많은 예인은 ‘공연물’로서 이 굿을 즐기고 연행한다. 굿이 공연으로 행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에는 공연으로서의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이다. 즉 드라마가 흐르는 구조라는 뜻이다. 하여 아쟁 가야금 인성을 위한 협주곡 ‘씻김(Redemption)에서 국악관현악과 함께 호흡하는 진도씻김굿은 원형보다는 ‘진도적인 것’과 ‘굿적인 것’을 추출하여 이태백(아쟁)이 정제하고 압축하고 그 안에 죽음과 안녕을 위한 드라마가 흐르는 버전과 함께 한다. “이런 진도씻김굿과 국악관현악의 만남을 잇는 가운데 씻김굿의 음악적 어법과 문법을 정직하고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민희는 관현악을 통해 씻김굿의 속살이 드러나도록 했고, 관현악의 근육과 진도씻김굿의 핏줄이 자연스레 한 몸을 이루도록 했다. “그래서 협주곡의 형식이지만, 아쟁-가야금-인성으로 구성된 3중주가 실컷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산조 합주인지, 시나위인지, 경계를 흐리며 민속악과 창작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풀어놓았죠.” 하여 유민희의 작곡 방식은 선율이 흘러갈 소리의 홈을 파는 게 아니라, 소리들이 한데 놀 수 있는 ‘작곡’, 아니 ‘작판’의 방식이다. 작판, 즉 판을 깔아주고 만들어준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썼던 곡들에 비해 음표가 촘촘하지는 않아요. 다만 악기 배분과 분량에는 신경을 썼습니다. 때로는 아쟁이 울도록 했고, 때로는 가야금이 분위기를 끌어가고, 어느 대목은 소리꾼의 자유로운 소리와 영혼이 충분히 표출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작곡가로서의 기교보다 (공연 제목처럼) 관객들이 전통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대목’과 ‘순간’이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곡은 죽은 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도입부에는 죽은 자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아쟁의 서정적인 선율이 이를 묘사합니다. 그 선율은 삶의 시공을 떠나는 자,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어요. 후반부에 가면 아쟁이 죽은 자가 들어갈 죽음의 문을 엽니다.”

슬픔과 눅진한 습성으로 누벼진 굿이 우리에게 더욱 확연히 다가오는 순간은 곡 속의 무가(巫歌)가 터져 나올 때다. “이완순 무녀가 부르는 무가 <희설>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어요.” 희설은 무녀가 망자상 앞에서 부르는 노래다. 망자가 극락에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관문들을 잘 통과하기를 바라는 축원이다. “무가는 ‘네 삶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냐?’고 묻고, ‘너는 살면서 어떤 공덕을 쌓았는가?’라고 묻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자기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잠언이자, 산 자들의 인생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죠.” 유민희는 이러한 무가를 원곡에서 한 땀 한 땀 따왔고, 현대어로 각색하여 음표에 달아 넣었다. 종교로 태어난 음악이 근대화와 마름질을 거쳤다 해도, 그 안에는 기복의 기원과 역사가 스며 있다. 종묘제례악도 그러하고, 굿도 그러하다. 죽은 자를 보내고 안녕을 구하며 산 자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승에서의 안녕을 구한다. “이 곡을 통해 굿이란 산 자들에게 반문하는 예술과 음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죽음이 산 자들에게 던지는 반문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리움의 재발견’, 잃어버린 노래를 찾아서

강은구 작곡 – 국악관현악으로 노래하는 수제천 <소중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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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구가 작곡한 <소중(所重)한 빛 >의 악보는 좀 독특하다. 대금, 소금, 피리,해금, 소아쟁, 대아쟁 파트 등의 선율마다 가사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 계신가요. 진흙 길을 걷고 계신가요. 어느 곳에나 무거운 짐 내려놓으세요. 그대 가는 곳에 해 저무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단원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강은구의 답변은 의외다.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심정으로 연주를 해달라 일종의 음악 지시어로 적어 넣었습니다.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라 할 수 있겠네요. 수제천을 모티프로 한 이 곡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읍사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면 악기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의 이면에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흐른다. 마음의 노래가 국악관현악이라는 소리의 수로로 흐르는 것이다. 곡명 앞에 붙은 ‘국악관현악으로 노래하는 수제천 (壽齊天)’ 이라는, 강은구가 직접 붙인 부제 아닌 부제가 와닿는 순간이다.

<소중(所重)한 빛>은 궁중음악 수제천을 원형으로 삼았다. 수제천은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를 노래하는 악곡이었다. 그래서 〈정읍〉이라고도 불렸는데, 노랫말을 잃고 기악곡화되면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궁중정재 처용무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인다. ‘전통의 재발견’은 강은구에게 있어 ‘노래의 재발견’이었다. 없어진, 하지만 그리움의 노래였다는 그 흔적을 강은구는 더듬어 보았고, 이번 곡으로 다듬어 보았다. “수제천의 또 다른 곡명이 중명지곡(重明之曲)입니다. 무겁다라는 뜻의 중(重)인데, 우리가 보통 ‘소중(所重)하다’라고 할 때도 이 한자어를 씁니다. 이 노래(정읍사)는 한 사람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며 부른 노래였고, 그리움의 노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은구는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감정은 이 곡에서 양축으로 표현된다. 한 축은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여창 가곡이다. 전통 가곡조의 노래는 그리움을 차분하게 표현한다. 강은구는 그 여인의 심정을 대변하기 위해 현존하는 백제가요를 토대로 분위기에 걸맞은 가사도 직접 지어 넣었다. 이렇듯 여창이 한 축을 담당한다면, 또 다른 축은 타악기 대열이다.

​꽹과리, 징, 장구, 북, 모듬북 등이다. 하지만 약간은 모순적이다. 흔히 아정하고 절제된 음악이라 불리는 수제천의 분위기를 유지하려 한다면 타악기들은 덜어내거나 절제시켜야 할 악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으로 인한 힘겨움을 애써 누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끓어오를까요. 간절한 마음과 끓어오르는 마음. 사람은 그리움 앞에 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질 겁니다. 그래서 수제천의 가락이 절제의 자세로 움켜쥔 그리움이라면, 타악기들은 이면에 끓어오르는 마음을 표현하고 상징합니다. 타악 연주에 비나리 가락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어기여차 어강됴리! 정읍사에 나오는 노랫말로, 오늘날 그 뜻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뜻 없는 말놀이 같은 가사도 강은구의 <소중한 빛> 안에는 기다림에 지친 이에게 힘을 주는 주문이 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작품 속 주인공은 (강은구의 표현에 의하면) “소극적인 바램이 아니라, 적극적인 바램”을 품고, 기다리는 자가 된다.

기다림이 주인공이자 연출가가 되는 곡이다. 이 감정 앞에 선율이 흐르고, 악사들의 손이 움직이고, 마음의 노래가 흐르고, 관현악의 화성이 움직인다. 따라서 이 곡은 국악관현악‘곡’이자, 기다림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정”이 연출하는 국악관현악‘극’이기도 하다. 더불어, ‘전통의 재발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리움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곡을 쓰는 동안 현대인들이 수제천에 숨어 있는 마음(그리움)을 재발견하길 바라며 썼습니다. 요새는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교감이 적습니다. 어쩌면 그리움이 없어질수도 있는 세태이기도 하고요. 그 마음의 시작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예로부터 흘러온,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보편적인 이 마음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기를 바랍니다.”


세(細)와 합(合). 작은 소리들로 큰 울림을 빚다

장석진 작곡_ 대금과 피리를 위한 협주곡 <유초신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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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은 향피리가 주도권을 잡고 가는 영산회상의 또 다른 곡명이다. 여기서 ‘유초신’(柳初新)이란 봄에 잎이 돋기 시작하는 버드나무를 뜻한다. 그래서 봄날에 꾀꼬리가 버드나무 사이를 넘나드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궁중정재 ‘춘앵전’에서도 유초신지곡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한다.

​새롭다는 뜻을 지닌 한자어 ‘신(新)’이 곡명에 들어가 있어서일까. 유초신지곡연주자의 즉흥적인 해탄(解彈) 가락에 의해, 때로는 작곡가에 의해 매번 새롭게 태어나곤 한다. 장석진이 작곡한 <유초신지곡>도 ‘전통의 재발견’을 위해 대금과 피리를 위한 2중 협주곡으로 ‘새롭게’(新) 태어났다.

​이번 곡은 장석진의 2중 협주곡 시리즈의 하나다. 작년 12월에 반도네온과 젬베를 위한 협주곡 <풍경화>를, 올해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비행(飛行)>을 발표한 바 있다. 전작들이 ‘악기’의 만남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에는 유초신지곡이라는 ‘악곡’과의 마주함에 방점을 찍었다.

상령산은 유초신지곡의 시작이자, 전반적인 흐름을 좌우하는 첫머리다. 장석진은 도입부 10마디에 상령산의 원가락을 흘려보내 이 곡의 기원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유초신지곡의 가락들은 해체와 재구축의 시간을 유영한다. 그 흐름 속에서 원곡의 가락들은 흐름과 시간의 고리를 끊고, 자유롭게 떠다닌다. “원곡을 보면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빠른 호흡으로 가면서 각 곡을 대표하는 가락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대금과 피리를 위한 <유초신지곡>에 이러한 선율의 조각들이 묘하게 포개지고, 겹쳐지고, 각 곡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만납니다. 발화점이 되는 상령산으로 시작하되, 염불도드리나 타령, 군악의 선율과 소리의 조각들이 뒤엉키는 해체와 재구축입니다.” 유초신지곡에 정격적으로 담긴 시간과 흐름이, 장석진이 파 놓은 소리의 수로를 타고 흥미롭게 흐르는 것이다. “유초신지곡으로부터 얻은 여러 부분과 대목들을 토대로 원곡을 연상시키는 가락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그러다가 다시 원가락이 부분적으로 나오며 이 곡이 유초신지곡에 모티프를 두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원곡이 피리나 대금 같은 관악기가 이끌고 가는 곡이기에 독주(협연) 악기인 대금과 피리가 원선율을 연주할 것 같지만, 독주악기의 선율들도 새롭게 짜인 흐름에 맞춰 장석진이 새롭게 지었다.

음악에는 횡으로 흐르는 수평적 선율이 있고, 종으로 쌓인 화음의 수직적 구조가 있다. 유초신지곡은 향피리가 앞을 트고, 다른 악기들이 뒤를 따라오는 흐름의 음악이다. 하지만 장석진은 이번 <유초신지곡> 협주곡을 수직의 구조를 새롭게 연출하기도 했다. “곡을 쓰면서 신경 쓴 것은 악기들이 표현하는 ‘울림의 넓이감’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의 악기군을 두 개의 성부로 나눴습니다.

보통 국악관현악에서 하나의 선율을 여러 대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여 음량을 확대‧확장한다면, <유초신지곡> 협주곡은 두 성부로 나뉜 더블링 기법을 통해 악기군에 울림의 간격을 두었고, 그로부터 발생되는 넓이감과 확장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초신지곡> 협주곡을 들어보면 웅장하고 장엄하고, 때로는 투텁게 다가온다. 선조들이 마음 수양을 위해 율방(律房)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울리던 소리들이 그 방을 뚫고 나와, 율의 우주를 형성하는 것 같다. 여기에 서양악기의 합세도 울림의 확장에 한몫한다.

​서양의 금관악기인 호른, 트롬본, 베이스 트롬본, 튜바와 현악기인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함께 한다. 장석진은 작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공연 <믹스드 오케스트라(Mixed Orchestra)-충돌과 조화>에서 이러한 동서양 악기들의 조합과 구성력을 실험해보았다.

​“악단의 부피감 있는 소리와 함께 협연하는 피리와 대금도 각자의 선율을 연주하다가 큰 그림에 합류하거나, 어느 때는 대비를 통해 독주악기만의 매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합(合)과 세(細). 향피리가 연출하는 유초신지곡의 거대함(合)을 읽어내고, 작곡가로서 세(細)밀한 기법을 녹여 넣은, 장석진만의 ‘전통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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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너머, 북한음악에 흐르는 ‘지기(地氣)’의 재발견

강상구-서도음악을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 <풍류 그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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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국악관현악단이 방향을 틀어 남쪽의 경상권이나 전라권, 혹은 뭍을 떠나 남서쪽의 섬으로 향할 때가 있다. 이때 소리의 그릇이 되는 국악관현악은 지역에 전래된 음악들을 담곤 하는데, 그냥 담지 않는다. 지역에서 캐낸 소리의 식물들을 작곡가들이 다듬고, 국악관현악이라는 그릇에 알맞게 ‘다시’ 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땅이라는 존재가 자연과 인간의 삶은 물론이고 음악도 낳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음악마다, ‘그 지역만의 음악’을 만드는 지기(地氣)가 담겼기 때문이다. 언어에 ‘사투리’가 있듯, 지역마다 음악의 ‘토리’가 있음도 알게 된다.

강상구의 <풍류 그 너머에>는 국악관현악의 뱃머리를 북한 서도 지역으로 돌려본 곡이다. 서도 지역은 지도상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이다. 그곳에서 흐르고 피어난 서도풍류와 서도민요 등이 <풍류 그 너머에>의 중요 모티프가 되었다. “단절된 곳이지만, 그곳에는 우리가 몰랐던 이동과 유동의 역사가 스며 있기도 하더군요. 분단 이전에 서로 교류한 흔적들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분단 이전에 경기도 예인들이 서도의 예인들과 교류했고, 그래서 서도 음악에 경기제라 볼 수 있는 요소들도 남아 있었어요. 황해남도 강령탈춤의 음악에도 경기제 음악풍이 은연중 살아 숨쉬기도 합니다.”

​한반도의 허리가 잘렸지만, 북한의 음악과 예술에 관한 관심은 여전하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서도소리를 비롯해 북청사자놀음(함경남도), 봉산탈춤(황해도)이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이북5도 무형문화재’도 운영 중이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도 북한음악자료실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의 음악들은 지역적으로 ‘멀리’ 있고, 감각적으로는 ‘이질적’이다. 강상구의 음악적 상상력은 바로 ‘멀리’와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산염불이나 수심가 등의 서도소리를 살펴보면 대개 ‘도’음과 ‘솔’음을 격하게 떱니다. 다른 음악들에 나타나는 선법도 독특하죠. 이번 공연에 ‘전통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번 곡을 지으면서 남‧북한 전통음악의 차이를 결정짓는 ‘부분의 재발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곡의 중간에는 봉산탈춤을 통해 느껴지는 굿거리풍, 타령풍의 흐름과 장단을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남한 지역에서 익숙한 5음음계와 차별되는 반음 음계도 사용했고요.” 이처럼 강상구는 ‘멀리’ 있는 음악 속 ‘이질적’인 대목들로 <풍류 그 너머에>를 쌓아 올렸다. 곡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국악관현악곡을 다작(多作)한 강상구의 관현악 어법은 대부분 첫 시작을 웅장하게 끊는다.

​그로 인해 관객이 이제 접할 음악은 독주나 중‧소편성의 실내악과는 다른 음향체(관현악)의 소리라는 것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번 곡은 서정적으로 시작하여 우리를 북쪽의 땅으로 이끈다. 작곡가가 다듬고 불어넣은 서도 풍류의 선율이 흐르고, 앞서 말한 ‘격하게 떠는 주법’도 녹여 넣어 서도소리의 특징들을 음악적으로 나열한다.

​음악을 타고 낯선 땅에 왔으니 크게 한판 놀아야 한다. 그래서 두 번째 부분에서 봉산탈춤을 연상시키는 테마가 나온다. 판이 열리고 봉산탈춤 속 사자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관현악의 소리를 타고 튀어나온다. 크게 놀았으니 살짝 공부도 하자. 그래서 세 번째 부분에서는 서도민요의 특징들이 나온다.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여러 화음 기법을 구사해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익숙한 선율들을 화성을 통해 변화시켜 보았습니다.” 서도풍류와 서도민요의 ‘부분’으로 쌓아 올린 곡의 마지막은, 앞서 펼쳐진 서도 음악의 특징과 특질들이 한데 모인다. 그것들은 작곡가가 파놓은 변박의 흐름을 타고 흐르고, 웅장한 끝맺음을 이룬다. 다른 악기보다 소리가 큰 피리와 태평소는 강상구가 확대하여 바라본 서도 음악의 특징들을 확실히 보여주는 수행자들이다. “그래서 피리와 태평소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특히 서도민요의 격하게 떠는 주법들이 피리 소리를 통해 들릴 것이고, 변화의 옷을 입힌 선율들이 어떤 변화를 입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원형의 선율들을 태평소가 들려줍니다. 더불어 생황 특유의 화성과 화음의 음색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요

​” 이렇듯 강상구의 <풍류 그 너머에>는 우리가 몰랐던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게 한다. 하여 몰랐던 ‘전통의 재발견’을 위한 시간이고, 서도 음악 속 특질들을 만나는 ‘부분의 재발견’이자, 북한 전통음악의 음악적 근육과 핏줄에 스며 있는 ‘지기(地氣)의 재발견’을 위한 곡이다.

글 | 송현민 음악평론가

2023 창작악단 정기공연

전통의 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