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전주의 오거리콩나물해장국집을 다녀오고서 약 30시간 뒤에서였다. 나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에서 피곤함과 나른함에 휩싸여있었다.
불현듯 아무 이유 없이 전주에서 먹은 그 콩나물국밥의 강렬한 쓴맛과 매콤한 맛, 아래에 깔린 은은하고 시원한 콩나물 육수가, 갑자기 입 안에 멤돌았다.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지 갑자기 귀에 들려오는 링딩동 링딩동 디기디기딩딩동 로꾸거 로꾸꺼 따따라따따 암욜맨…마치 그런, 불현듯 떠오른 그 강렬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
그것은, 내가 어떤 국밥집에 대해 내렸던 평가를 뒤집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전주의, 아침 6시에 열어 11시에 닫는, 방송을 탔어도 아직 그 맛이 크게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변할 일 따위 없어보이는, 그 콩나물국밥집에 대한.
“흠.”
우리는 토요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막히는 일 거의 없이 전주에 도착한 건 세시간여 만인 아침 8시 25분. 주차를 위해 한바퀴 도는 와중에도 콩나물국밥집에는 손님이 반 정도만 차 있었다.
토요일 아침 8시 반에 절반 정도 차 있는 콩나물국밥집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면, 그것도 그거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은 든다.
그런데다가 이 콩나물국밥집이 자리한 데가 전형적인 쇠락한 번화가다. 가게 앞 오원집도 그렇고 주변의 다른 가게들도 그렇고, 옛날엔 전주의 중심가였던 위치. 지금이야 전주 외곽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주민들은 거기에 몰려 살고 여행객들은 한옥마을에만 틀어박혀 돈을 뿌리고 가지만 전주시청 서편으로 전주초와 전일초, 전주중앙중 등, 사람이 몰리고 돈이 돌았을 구역이었을 게다.
그래서 콩나물국밥집의 이름에도 오거리가 붙을까. 어쨌든 우린 웨이팅 없이 식사를 바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까지는, 나는, 딱히 좋게 써줄만한 부분도 없다 싶고 특색도 잘 알 수 없기에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집이 그렇게 많은데 아침 6시에 열고 낮 11시에 닫는게 뭐 대수인가. 남문시장 현대옥 본점처럼 중앙에 큰 테이블 하나 놓고 먹는 노포인 건 인정. 어쩌다 단골장사로 좀 살아남았나보지 뭐. 하는 정도.
다만 국밥을 맛보기 전에도, 그리고 국밥을 먹어본 뒤 맛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 가게는 꽤나 매력적인 구석들이 있었다.
육수를 끓이는 두개의 솥은 신식 가스 아궁이에 걸려있다. 저게 최소 나보단 나이를 먹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다가 작은 가게의 입구에 면한 조리대 겸 카운터 자리엔 큼지막한 대파가 올려져있다. 오너쉐프인 어머님께서는 거기에 서서 쉬지 않고 파를 써시는데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손님들과 수다를 떤다. 방송 빨로 한동안 바쁘셨을 텐데, 씩씩하기 그지없다.
가게엔 연식을 알 수 있는 다른 여러 장치들- 휙 닦아내기 좋은 스댕 테이블, 작은 나무지게 등등이 정겹게 자리를 차지하고- 에어컨 위엔 왠 말린 수세미가 놓여있다.
그런 구경을 하고 있노라면 콩나물국밥을 삶는 사장님의 날래면서도 여유있는 동작을 내내 구경할 수 있다. 싱싱한 콩나물을 삶아내어 육수에 풍덩 풍덩 담갔다가 사발에 낸다. 그런 뒤에 몸을 돌려 도마에서 타다닥 청양고추를 썰고, 또 몸을 돌려 육수를 부으며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다.
한가지 재미있는게, 단골도 많고 첫 손님도 많았다는 점이다. 단골들은 사장님과 정답게 수다를 떨거나 자기가 데려온 새 손님에게 “그냥 순한맛으로 해.”라는 둥의 조언을 남겼다. 우리의 주문도 마침, 아내를 위한 순한맛과 내가 먹을 보통맛. 그런데 사장님은 “순한맛도 매워야.”하며 보통이냐 순하냐를 고민하는 손님을 보며 껄껄 웃는다.
여기까지만 봐도 사실, 방문할 가치가 넉넉한 집이다. 남부시장 현대옥처럼 콩나물국밥집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현장에서 즐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왱이도 몇번 가보고 현대옥도 여러번을 가보아도, 유명한 콩나물국밥일수록 조미료의 맛보다는 콩나물의 밍밍한 맛의 인상이 조금 더 강하다. 그래서 왱이에 가서도 “어?”하는 경험을 맛볼 수 있었다.
잠시 뒤 먼저 수란이 제공되었다.
수란은 한입에 털어넣기 딱 좋은 온도였다. 콩나물국물 세스푼에 김을 넉넉히 찢어서 후룩 맛본다. 그런 뒤에 콩나물국밥이 제공되었는데, 일단 비주얼은, 매우 만족.
일단은 미식의 격전지인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한다고 하면, 적어도 오징어 정도는 이렇게 나와야지. 한 눈에 봐도 오징어의 선도며 데쳐낸 솜씨며…나무랄 데가 없다. 무릎 위에 앉은 아기에게 한 조각 먹이니 뚝딱. 나도 아직 반투명한 기색마저 남아있는 싱싱한 오징어를 먼저 한조각 먹어봤다. 역시나 훌륭하다.
“으악.”
그러나 갓 썰어낸 청양고추와 대파가 가득 들어간 국밥을, 콩나물과 함께 맛보니 그런 좋은 인상과는 색다른 뜨악함이 몰려온다. 일단 쓰다. 맵다. 얼얼하다. 콩나물국밥이 아니라 청양고추를 콩나물 무침에 살짝 얹은 거라고 해도 좋을 쓰고 매운 맛이 입 안 가득했다.
왜때문일까. 나는 콩나물국밥을 인내심있게 먹으며 사정을 따져보았다. 분명히 솜씨는 훌륭한데…콩나물도 육수도 오징어도 모두 나무랄데 없는데…왜 이렇게 쓰고 매운 청양고추에 대파는 왜때문인가…왜 이런 식당이 6시에 열고 11시에 닫을까…하며, 시간은 째깍째깍, 우리 앞에 앉던 아재 두분이 자리를 비우고 다른 손님 서넛이 또 자리를 채운뒤, 이제는 작은 가게 벽면에 대기 손님들이 생겨날 무렵…
딩동. 그래. 여긴, 해장손님과 아침을 해결할 노동자들이 찾던 식당이겠구나.
그러니까 내 생각엔, 이 근방이 원래 전주의 중심 번화가이자 주택가에 속했고, 앞의 오원집처럼 술집들 사이에서 이른 아침에 문을 여는 독특한 입지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니, 해장 겸 새벽에 가게를 들른 사람들은 소울푸드인 콩나물국밥에 “청양!”을 외치며 매운맛의 강도를 높여갔을 것이고, 맨날 먹는 콩나물국밥이더라도 점점 더 맵고 강렬한 맛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이렇게 싱싱한 대파와 청양이 들어가며 이 가게의 독특한 스타일로 정착이 된 것이 아닐까.
다른 어지한간 콩나물국밥집을 가보아도 이다지로 맵지 않다. 밍밍한 맛 때문에 김을 내내 끼고 먹는 것이 전통이 된 집도 많다. 그런데 오거리집은, 정반대로 서울 동대문의 깃대봉 냉면처럼 이 쓰도록 매운 맛이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침을 먹는 동안, 원래 국밥에 매운양념을 넣는 걸 싫어하는 나는 좋은 인상을 받진 못했다. 어느 시점에 이 가게의 정체성을 혼자 파악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그냥 저냥 참아가며 먹을만 했다. 사장님의 수다나 조금 불편한 접객도, 여행자로서 단골손님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할 소리는 아니란 게 내 소견이기에.
그러나 나는 그런 상상을 충분히 해볼 수 있었다. 겨울엔, 새벽의 한기를 헤치고 가게를 찾은 사람들이, 위장에서부터 번지는 뜨끈한 온기와 함께 입안 가득한 풋것들의 쓴맛 매운맛에 신새벽의 활기를 다시 찾고, 여름엔, 줄줄 흐르는 땀에 전날 밤 먹은 술기운들을 용해시켜내는 것. 그것이 이곳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전주사람에게 콩나물국밥이 의미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오거리집을 다녀온 다음날 저녁, 졸린 눈을 치켜뜨며 운전을 하는 내 머릿속에, 내 입안에, 그 강렬히도 싱싱한 푸성귀의 쓰고 매운맛, 그 원형질의 맛이 떠올려지고 나서는…아 나는, 이 맛을 잊질 못하겠다.
어떤 면에서는 이 맛은 대체가 불가하다. 맑은 국물에 아삭이는 콩나물국의 시원함이, 이 싱싱한 오징어가, 이…시큼한 신김치와, 국밥에는 어울리지 않는 깻잎절임이…이 모든 게! 나는 잘 모르겠다. 왜 여기 맛이 지금 다시 떠오르는지.
하여튼, 전주 사람들은 좋겠다. 이런 콩나물국밥집들이 골목마다 있어서, 새벽부터 열어서, 아침마다, 먹을 수 있어서. 아 이런 콩나물국밥이 집 근처에 있다면 숙취란 조금도 고달픈 것이 아닐 것 같다.
원문: 공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