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멘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 일본 여행을 가 본 적도 없고, 평생에 걸쳐 라멘을 먹어본 일이 손에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라멘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순대국이나 국수 포지션이라, 한국인이면 가까운 곳에 있는 해장국, 순대국, 중국집, 국수집을 찾지 굳이 라멘을 수시로 찾을 일이 잘 없다. 규동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인 것이나 마찬가지. 김밥이라는, 같은 포지션의 음식이 있으니.

 그래서 아내가 라멘집을 가자고 할 때 반기면서도 조금 갸웃했던 것이, 아니 남해까지 왔는데 한끼 가성비 좋게 저렴하게 먹으면 좋지만, 평소에 먹지 않았던 음식을 과연 공정하게 평가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짬뽕이나 순대국이라면 즉시 공장제 육수인지 직접 우려낸 육수인지 즉시 가릴 수 있지만 라멘은 내가 맛에 대해서 감별이 어려우니, 남해까지 와서 공장제 육수라도 먹게 되면 어떻게 해?

 나는 그런 우려로 일단 “직접 우리는”이라는 문구를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다행히 메뉴판에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니 뭐, 공장 육수에다가 조미료를 타서 내놓고도 직접 우린다고 써놓을 순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문구 하나만 보아도 안심이 된다. 그리고, 지도 앱의 리뷰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서 나는 점차 마음을 놓게 되었다. 일단 평이 좋은데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남해라는 한적한 곳이라면, 차라리 공장제 육수를 쓰는 게 더 낭비고 귀찮은 일일 것이다. 실력있는 쉐프께서 비교적 여유로운 조리 환경에서 만드시는 거라면, 믿어야지.

 가게는 무난하고 깔끔한 구성. 성수기라고 해도 평일 마감 시간이라 비교적 한산했다. 우리가 머무는 지역이 남해에서도 비교적 한적한 곳이다. 바다 건너에 여수가 바로 보이는, 위치나 뷰는 좋은 곳이지만 독일마을-상주은모래해변-보리암-다랭이마을 코스를 다 지나고 나서 나오는 동네라, 주위에 아난티 남해 말고는 뭐가 잘 없다. 그런 곳에 이런 수준급 식당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으니 그게 신기한 일. 요즘 제주도가 미친 물가로 욕을 많이 먹는데 남해도 쏠쏠하게 대안으로서 기능은 가능할듯하다. 기암괴석이 늘어선 바다도 백사장도 몽돌도 갖추었으니.

 우리는 라멘과 가츠커리, 그리고 차슈와 가라아게를 추가했다. 이렇게 주문해도 2만6천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선 가성비와 양에서 만족. 내가 주로 먹은 라멘도 성인 남성이 한그릇으로 배가 부를 수 있는 양이었고 아내가 먹은 가츠커리도 아이에게 밥을 노나주고 나서 다 먹기에도 조금 배가 부른 정도 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라멘 문외한의 불안함과 우려와 함께 수저로 라멘을 한입 떴는데…응? 맛있네?

 맛있다. 음- 사실상 라멘을 처음 먹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꽤나 괜찮다. 우선 위에 토핑된 세가지 해조류만 해도 남해의 정체성이 요리에 잘 버무려진 것이 보이고, 육수도 고기육수와 해물육수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이게 기본 9천원. 호오.

 아내가 먹은 가츠커리는 무난무난한 맛. 돈까스는 5mm는 넘는 두툼하게 성형된 고기를 맑은 기름에 튀겨낸 것이 눈에 띈다. 밥 하나 라면 하나 시키면 무난할듯. 그런데 리뷰를 보니 다른 메뉴들도 괜찮다고.

 먼저 식사가 제공된 뒤 빠르게 차슈와 가라아게가 제공되었다. 차슈는 3천원에 세조각. 가라아게는 다섯알에 4천원. 이정도면 가성비나 차림새 모두 만족할만하다. 가라아게 역시 혹시나 냉동을 튀겨주는 게 아닌가 불안했지만 고기는 부드럽고 튀김옷도 녹말 비율이 높은지 부드럽게 잘 부서지며 입으로 들어간다. 가라아게와 차슈를 시킨 것이 나이스한 선택이었다.

 라멘을 일부러 가장 기본으로 시켜보았는데 전체적으로 가성비나 만족도가 높았다.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육수로 아이를 먹이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국물까지 싹싹 비워냈다. 차슈는 부드럽게 잘 삶아져서는 간도 잘 배어있다. 하나도 잡내가 안난다. 짭쪼름하니 맛있다.

 만약 집 근처에 이런 밥집 하나 있으면 여길 자주 가면서 라멘에 대한 기준으로 삼을 텐데, 우리의 일정이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라멘집은 어지간하면 안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딜 가든 남해의 일식면예찬이 생각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이곳에 오길 잘했다.

글쓴이

공존의 브런치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