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의 얼음이 음료수를 바꾸다
떠나야 가치를 깨닫는 것들이 있다. 집은 나가서 고생을 해봐야 안락함을 알 수 있고, 여자친구는 헤어진 다음날에서야 그녀가 사려 깊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얼음 또한 그렇다. 그토록 지긋지긋한 얼음은 겨울의 반대편 여름이 돼서야 소중함이 느껴지곤 한다.
운 좋게도 우리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냉장기술의 발달로 한여름에도 얼음이 들어있는 시원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얼음은 진작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소수 권력자의 것이라는게 문제. 암만 생각해도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따가운 땡볕 아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이 증발하는 기분인걸.
1806년 카리브해에 있는 마르티니크 섬에 얼음을 실은 배가 도착한다. 훗날 얼음왕이라고 불리는 프레데릭 튜더(Frederic Tudor)가 처음 닻을 내린 것이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이 더운 카리브해에서 얼음을 즐기면 좋겠다.’ 그렇게 보스턴에서 카리브해까지 2,400km를, 그것도 3주 동안 낑낑거리며 온 것이다.
하지만 얼음이란 존재를 모르는 마르티니크 섬사람들은 시큰둥했다. 그야말로 얼음을 못 알아먹으니 팔 방법이 없는 상황. 그렇게 첫 번째 얼음판매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우리의 튜더는 얼음을 들고 장거리를 이동했다는 사실에 희망을 얻는다. 사실 당시에 얼음은 공짜였기에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다고.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 특히나 더운 날씨에서 얼음 택배는 지나칠 수 없는 법이다. 프레데릭 튜더는 쿠바를 시작으로 멀리 인도까지 얼음 판매처를 늘렸다. 음료왕 프레데릭 튜더. 그가 세계에 뿌린 얼음들은 칵테일과 아이스티,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 음료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1904년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 인도 차생산자 연합회의 리처드 블레친든(Richard Blenchyden)은 홍차를 홍보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안타까운 사실이라면 만국박람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는 것이고,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은 여름철 갈증을 날리는 데에 따뜻한 홍차가 제격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따뜻한 홍차를 외면했다. 비싸게 주고 가져온 로오얄 홍차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 상황. 그는 차 세계의 하나의 금기를 어기게 된다. 따뜻해야 하는 홍차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판매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파리만 날리던 그들의 홍차에 사람들은 줄을 서서 마시게 되었고 현재의 아이스티가 되었다.
차의 탄생은 중국이고, 홍차를 알리는데 영국이 앞장섰다. 그들의 차가 예와 형식이 중요시되었다면, 미국은 실속 위주의 차를 탄생시켰다. 그중 하나가 아이스티, 그리고 티백인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이를 비판하는 정통파가 있지만 역시 쉽고, 시원한 것이 최고인 사람들이 많다.
미국인의 음료 실용주의는 아이스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보스턴 차 사건’ 이후로 완전히 식어버린다. 그들은 새로운 음료를 찾아 떠났고, 홍차의 대체재로 커피를 택한다. 그들에게 커피는 애국이요. 자유의 또 다른 이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커피의 표준인 에스프레소는 미국인이 먹기에는 너무나도 썼다. 2차 세계대전 커피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의 병사들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마시는 미국 군인을 보았다. 마치 김치를 물에 헹궈서 먹는 것과 같은 상황. 그들은 미국인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그 커피를 아메리카노(미국인들)라고 부르게 된다.
물에도 탔는데, 얼음이라고 못할쏘냐. 그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를 내놓는다. 물론 우리에게는 익숙한 메뉴이지만 여전히 유럽에서는 뜨악한 메뉴 중 하나다. 유럽에서 이런 커피를 주문했다가는 아이스크림이 올라와 있거나, 뜨거운 커피에 얼음 몇 조각이 동동 떠있을 확률이 높다. 그럴 때는 가까운 스타벅스를 찾자.
칵테일, 아이스티,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 얼음은 음료의 온도를 낮춰주고, 맛을 희석시켜주는 보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얼음이 음료 자체가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슬러시(Slurpee)의 탄생이다.
슬러시의 탄생은 우연한 사고였다. 1950년대 미국 캔자스시티에 사는 오마르 크네들릭(Omar Knedlik)은 탄산음료를 차게 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것을 너무 오래 두었는지, 아니면 냉장고의 온도조절이 고장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탄산음료는 시원함을 넘어 살얼음이 끼게 되었다.
살얼음을 맛본 그는 이것이 놀라운 발명이란 것을 깨닫고 음료를 만드는 장치에 냉각기를 달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료는 “ICEE”로 우리에게는 슬러시로 익숙하다. 시원한 얼음의 촉각을 느낌과 동시에 새콤한 맛, 그리고 컵에 그려진 스포츠 스타와 만화 캐릭터들은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았다.
얼음은 다양한 음료수를 만들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음료사에 더욱 중요한 것을 만들었다. 바로 편의점이다. 최초의 편의점은 얼음을 만들고, 판매하는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사우스랜드 제빙회사(Southland Ice Company)다.
1927년 사우스랜드 제빙회사에 다니는 제퍼스 그린(Jefferson Green)은 다른 많은 직장인처럼 식료품점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 내가 퇴근하면 식료품점 사장님도 퇴근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도 신선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그는 얼음공장에 식료품을 두고 팔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사우스랜드 제빙회사는 일반 식료품점이 문을 닫는 저녁, 그리고 휴일에 빵과 우유를 판매했다. 이를 갸륵하게 여긴 사장 조 톰슨(Joe Thompson)은 급기아 8개의 제빙공장과 21곳의 얼음창고에서 식품과 음료를 팔게 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동네의 냉장고’로 여겼고, 오늘날의 편의점처럼 사용했다. 몰려드는 손님에 결국 사우스랜드 제빙회사는 이름을 바꿨다. 그 이름도 익숙한 세븐일레븐(7-Eleven)이다. 참
얼음이 음료사에 가져다 준 것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얼음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그 존재 자체가 어려웠고, 절대 타서는 안되는 금기였다. 따뜻하기만 했던 음료수의 온도를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고, 얼음자체가 음료가 되기도 했다. 얼어붙어 있던 것은 음료를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얼음은 음료의 세계를 다양하고 넓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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