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1980년 8월 1일부터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칼국수 전문이란 간판을 달고 시작해 6개 테이블이 전부였다고 했다. 이른 아침 두 개의 커다란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사골 냄새가 인근 직장인들의 아침 출근길을 맞이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지켜왔다고 했다.

19화. 김춘수의 ‘꽃'(FEAT. 전성배)

“으어어어어어 매워!! 매워!!!”

캐러다녀가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은 문배동 육개장 칼국수 집. 문배동 육칼.

“매우면 맵다고 얘길 해줬어야지!!! 아으으으으으 매워!!!!”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왔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빨간 육개장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먹는 식당이었다.

평소 광화문 인근 이화수 전통 육개장을 즐겨 다니며 먹던 터라 아무런 의심 없이 먹었고, 결국 난 지금 땀을 흘리며 입안 가득한 매운 공기를 “후후” 내뱉으며 후배를 원망하는 못난이가 되어있다.

이곳은 남영역과 삼각지역 사이에 삼각지 고가 아래 위치한 ‘문배동 육칼 본점’이다. 예전 동네 명이 문배동이고, 현재 도로명은 ‘백범로 90길’이다.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이곳의 메뉴는 한 가지다

육개장. 여기에 밥과 먹을 것인지 칼국수와 먹을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이날 이곳 식당 풍경은 인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편히 식사를 먹고 가는 구내식당, 기사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커플도 있긴 했지만.

이곳은 1980년 8월 1일부터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칼국수 전문이란 간판을 달고 시작해 6개 테이블이 전부였다고 했다. 이른 아침 두 개의 커다란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사골 냄새가 인근 직장인들의 아침 출근길을 맞이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지켜왔다고 했다.

이곳의 특징은 매콤하게 우려낸 육개장에 다진 양념과 칼국수를 말아먹는 ‘육개장 칼국수’다. 단출한 메뉴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은 제대로 된 하나를 만들고 지키자는 신념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을 늘 한결같이 변함없이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알게 됐다. 육개장이 궁중음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육개장은 맵고 칼칼해야 하고, 나물을 듬뿍 넣어 영양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보양식이라는 것도.

육개장은 소의 양지머리 부위로 파와 나물을 듬뿍 넣고 맵게 끓인 칼칼하고 얼큰한 맛이 나는 음식으로 정의된다.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

육개장도 지역마다 만다는 방법이나 넣는 재료가 다른데, 서울식 육개장은 양지머리를 푹 삶아 결대로 찢고 여기에 대파를 넣고 끓인다고 한다. 대구식 육개장은 토란대와 고사리 대파 등이 들어가고, 전라남도 해남식 육개장은 토란대 대신 머윗대를 넣기도 한단다.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이 잠겨 있던 중, 문득 농산물에 열정을 쏟고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 스타일대로, 망설임 없이 안부 톡을 보냈다.

“성배 씨, 잘 지내세요? 문득 생각나서 안부 인사드려요”

“안 그래도 문덕님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지내고 계세요?”

참 오랜만이다

연락을 주고받은 지 벌써 1년 정도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와 나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나의 인연을 이어준 것은 ‘브런치’였다.

  • 브런치는 다음에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 준 공간이다.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이 글을 쓰면 많은 이들이 그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줘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앱이기도 하다.

“작가님 지금 제가 아침 장사를 하고 있어서요.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용어는 다양하다. 직장 내 직함, 작가, 과거 근무 당시 호칭, 온라인 필명인 광화문덕 또는 애칭인 문덕 등.

그와의 첫 만남은 늘 그렇듯 글쓰기 상담에서 시작됐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전성배’란 이름을 달고 농산물을 주제로 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에 고민이 많다고도 했다.

난 그의 글쓰기 공간에 들어가 그의 글을 읽었다. 그의 글에서 농산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이 좋아 글을 쓰는 이여서 였을까. 그의 농산물 속에 그려낸, 에세이 형식으로 써놓은 그만의 이야기에는 그의 감성이 푹 우려 놓은 사골국물처럼 진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문득 그가 말한 아침 장사가 궁금해졌다.

“실례가 안된다면 아침 장사가 어떤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는 쿨하게 얘기했다

한겨울임에도 그는 직장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아침을 대신할 한 끼 식사용 과일팩을 만들어 판다고 했다. 새벽 시장에 가서 신선한 제철 과일을 직접 골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부담 없는 한 끼 식사에 맞는 양을 정해 정성껏 준비한 ‘비타민 식사’다.

그는 당시 20대였지만 그의 농산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았다. 춥디 추운 한겨울 아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매우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그리고 6년 여가 지난 지금 그의 농산물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고 여전히 뜨겁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성숙한 느낌이다. 농산물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를 공부하며 더 성숙한 느낌이랄까. 난 그런 그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었고 그 마음이 우리를 지금까지 이어가게 하고 있다.

어떤 이에게 난 오지랖 넓은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내 이런 마음을 귀찮아하기보다 고맙다 표현하는 이여서 더 마음이 간다. 그렇기에 이렇게 문득 생각날 때마다 난 그에게 안부란 표현을 빌어 내 생각을 전달하곤 한다. 그 역시도 내가 생각났다며 안부인사를 건네 오기도 한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최근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것이 1년 정도가 된 듯하다. 그의 요즘이 궁금해졌다. 그는 아침 장사를 그만두고 직장에 들어갔다고 들은 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버전이다.

“전 요새는 아버지 일을 도우며 제가 좋아하는 과일일을 병행하고 있어요. 농산물 이야기도 쓰고 있고요”

수년째 농산물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성과 듬직함이 느껴졌다.

좋은 소식도 있었다. 얼마 전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에세이 출간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두 달여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작업한 덕택에 원고를 마감하고 며칠 전 넘겼다고도 했다.

‘농산물 에세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떤 과일과 어떤 이야기가 그 안에 함께 어우러져 내게 깊은 영감을 줄지. 난 그만이 가진 감성을 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가 고른 감각적 표현에 자주 놀라곤 한다.

“이야~ 축하드려요!! 좋은 소식이네요”

“하지만 자신감이 자꾸 안 서는 건 왜일까요 원고를 보내 놓고도 마음이 놓이지가 않더라고요”

막상 원고를 넘기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고 했다. 나는 안다 그 이유를….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건 굉장한 고뇌의 시간이에요. 고치고 또 고치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거든요.

그러다가 정말 더 이상 글자를 보기 싫어질 때가 오면 이제 출판사로 넘겨야 할 시기가 온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다고 걱정 안 해도 돼요. 출판사 에디터님께서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실 거거든요. 소중한 하나의 좋은 책, 양서를 만들기 위한 그의 전문가로서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같은 거죠”

난 그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산물에 대한 애정, 전문가로서 가고자 하는 그의 삶의 긴 여정에 이번에 준비하는 책이 그의 삶의 하나의 모멘텀이 되었으면 한다.

문배동 육칼도 처음엔 삼각지 고가 아래 ‘칼국수 전문’이란 단출한 간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문배동 육칼’이라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시인 김춘수 님의 ‘꽃’이 내 마음속을 적신다.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거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일러스트 = 헤럴드경제 이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