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이번 화부터 웹소설에 대한 글을 10화 정도로 연재를 해 볼까 합니다. 웹소설에 대한 작법책도 많고,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작가님들이나 PD님들께서 알려주시는 실전 팁, 강의 영상도 많기 때문에 이 글은 구체적인 작법 쪽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웹소설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써볼 거예요.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작가가 된다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업계나 작업물에 대한 흔한 편견을 바로잡거나, 사업 기획 단계에서 하실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하거나, 작가나 업계 관계자들과 미팅 전에 숙지하고 있으면 좋을 사전 지식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거예요.

1화는 연재글 전체에서 다룰 개념들을 조금씩 보여줄 거라서, 전반적으로 브로드하게 펼쳐 써 볼 생각입니다. 2화부터는 그 중에서 몇 개의 개념들이 더 깊게 다뤄집니다.

1.우리는 모두 웹소설을 안다

2023년, 지금 현재를 사는 한국인 중에서 웹소설을 전혀 모르시는 분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 것입니다. 한 번도 안 읽어보았거나 잘 모르시는 분은 계셔도, 웹소설이라는 단어를 아예 안 들어보신 분은 거의 안 계시겠죠. (계시다면 이 글도 안 읽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요.)

1-1.웹소설은 MZ의 전유물이다?

이렇게 다들 웹소설이 뭔지 아는데, 정작 ‘웹소설이 뭘까요? 라는 질문에는 그간 견해가 분분했습니다. 웹소설 초기에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의견 중에는 ‘10대가 직접 쓰고 읽는 인터넷 게시판형 픽션’이라는 다소 얕보는 답변도 있었죠. 수준 낮은 문장력을 함께 거론하면서요.

그래서인지 최근까지도 웹소설을 흔히 MZ 세대가 읽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게다가 웹소설에서 드러나는 어떤 경향성을 MZ 세대 특징이 발현된 것으로 진단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웹소설에서 특정한 스토리나 설정이 유달리 자주 반복되는 이유는, MZ 세대가 원해서만이 아닙니다. 일부 경향성은 과잉대표된 것이며, 유의미하게 꼬집어 볼 만한 경향성은 어쩌면 시대정신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MZ 세대라는 분류 자체도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 과연 유효한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데, 웹소설의 특징이 MZ 세대가 발현된 현상이라는 근거는 대체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요? M과 Z세대가 과연 같은 특징을 가진 세대일까요? MZ 세대가 20대부터 40대까지 넓은 나이를 커버한다는 단순한 의미로만 쓰이는 건 아닐 거잖아요. 그럴 거면 그냥 2040이 낫죠. MZ와 웹소설을 연결시키는 분들의 생각은 결국 이거 같아요.

‘MZ는 인내심이 적고, 그래서 가볍고 짧고 흥미 위주의 글을 좋아하며, 인문학적 통찰을 귀찮아하고 사이다에 중독되어 있는 세대다 보니, 딱 그런 특징을 가진 웹소설을 읽고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장력 운운하는 평가가 끊이지 않는 거겠죠. 아무튼 문장만 일견한 뒤 웹소설 전체를 폄하하는 시도는 현재도 여전히 많습니다만, 이는 마치 데셍 하나만 가지고 만화 전체를 비평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아요.

당연히 웹소설은 10대 전용 콘텐츠도 아닙니다. 2020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웹소설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이용자는 16.4%에 불과하거든요. 20대가 25.1%, 30대는 21.4%, 40대는 22.6%죠. 20대, 30대, 40대가 비슷한 수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50대도 읽습니다. 14.6%죠. 남녀 차이도 크지 않습니다. 여성 46.8%, 남성은 53.2% 입니다.

3년이 지난 현재, 다시 조사해본다고 해도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4050의 비율은 조금 더 늘었을 것 같네요. 4050이 꾸준히 늘어 왔거든요. 이런 숫자가 말해주는 건, 웹소설은 남녀노소 모두 비슷한 수준에서 즐기고 있는 상당히 밸런스 좋은 산업이란 뜻이죠. 산업 전망도 좋습니다. 2013년 경만해도 100억~200억으로 추산되었던 웹소설 시장은, 작년 2021년에는 6,000억원 규모로, 최대 60배로 성장하였다고 봅니다. 2022년 이후부터는 대략 1조원으로 추산하죠.

1-2.모바일에 특화되어 진화된 장르문학

아무튼 그래서 이 뜨겁다는 웹소설이란 무엇일까요? 문학? 다른 콘텐츠의 원천 소스? 일단 저는 ‘모바일에 특화되어 진화한 장르문학’이라고 정의하곤 합니다. 기준에 따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위 답변은 특히 작법과 수용적 특성을 염두에 두었어요.

작법적으로는 장르문학의 유산을 잇고 있고, 장르문학을 찾는 수용자에게 소구합니다. 수용적 측면에서는 모바일에 특화되다보니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문체와 구성이 생겨났고요, 모바일의 스낵컬처 특성이 결합되면서 기존 문학에는 없거나 적었던 새로운 수용자를 개척했죠. 새롭게 유입된 수용자들이 책상에서 읽는 무거운 책이 아닌, 이동성(mobility)이 좋은 모바일(mobile)로 책을 읽는다는, 즉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안에서 웹소설을 소비하게 되면서 새로운 규칙, 즉 새로운 장르들을 탄생시켰죠. 결국 장르문학의 새 지형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스마트폰이라는 매체 하나가 텍스트-콘텐츠 산업이 갈 수 있는 새 땅을 개척한 셈이죠.

매우 신기한 현상 같지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새 매체가 새로운 콘텐츠 지형을 개척한 사례는 그간 얼마든지 있었어요. 카메라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기계적으로 채취하는 것이 무슨 예술이냐며 화가들의 비판이 있었죠. 토키(유성) 영화가 발명되었을 때는, 무성 영화가 가진 진정한 예술적 영역을 좁힌다는 비판도 있었다고 하죠. 종이책-인쇄 양식에 최적화되어 있던 만화가 스마트폰-디지털로 최적화되면서 만화-웹툰이라는 분야가 개척된 걸 우리는 보고 있잖아요. 이제는 AI가 그린 그림이 예술인가 아닌가로 토론을 하는 시대입니다.

국내 웹소설의 조상 격인 통신소설만 보더라도,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통신소설’이라는 한국형 장르문학 지형을 개척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죠.

2.웹소설 이전까지의 흐름

2-1.디지털 혁명이 웹소설이 되기까지

웹소설은 장르문학의 테두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장르문학은 무엇이며,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어떻게 자리잡았을까요?

‘장르’라는 단어 자체야 그저 갈래나 구분이라는 뜻이지만, 문학계, 그것도 가장 보수적인 학문적 영역에서 장르라는 용어를 쓸 때는 가장 원론적인 구분을 의미합니다. 바로 시, 소설, 희곡, 비평, 이런 식으로 나누는 장르 구분이지요. 과거엔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이 장르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도 차이와 반복을 통해 하위 갈래들이 생기고, 영화와 같은 산업도 생기면서 시, 소설, 희곡, 비평이라는 기준만으로는 팔려고 하는 이야기-상품을 브랜딩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헐리우드도 거들어 잘 팔리는 특정 형태의 서사를 실험하는 장의 역할을 했죠. 책, 만화, 영화 판에서 실험이 거듭되며, 소비자들에게 반복되어 어필하는 특정 소재와 캐릭터의 형태, 스토리의 진행 방식을 묶어서, 이제 다른 의미에서 ‘장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로맨스, 호러, 미스터리, 액션, 판타지, SF 등등의 장르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한국은 어땠을까요? 한국식 ‘장르문학’은 PC통신이 없었다면 아마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국의 문학이 제도권 위주의 순문학과 통속소설 정도로 구분되어 인식되고 있었을 때만 해도, 해외에서 말하는 장르문학이란 것의 정체를 명확히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진 못했거든요.

물론 매니아들은 각 소설들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죠. 여기엔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대본소도 큰 역할(?)을 했어요. 영웅문이라는 제목으로 불법으로 출간된 무협 소설을 읽는 사람도 많았고, 반지의 제왕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셜록 홈즈도 많이 읽었죠. 할리퀸 문고를 읽고, 일본식 판타지나 탐정소설도 읽었죠. 정발판, 때로는 해적판(?)들로 쌓아올린 장르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80년대에도 이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서 ‘장르문학’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조금 후의 일입니다.

이렇게 제도권 문학(이 글에서는 흔히 순문학이라고 불리는 문학을 ‘등단 제도’를 통해 제도에 편입된다는 의미에서 제도권 문학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장르에 제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을 제외하고 보면, 대중을 염두에 둔 소설에서 두 가지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통속소설(초록색 라인)이라고 불리던 흐름과, 해외에서 온 어떤 특정한 규칙을 가진 무언가(파란색 라인)의 흐름으로 말이죠. 이 특정한 규칙들은 때론 낯설고 신기했지만, 마탑이니, 중간계니, 동사서독 남제북개니 하는 세계 자체의 규칙이 아주 재미있었죠.

웹소설
제도권 문학 바깥에서는 ‘기존의 통속소설’과, ‘해외에서 온 특정한 규칙의 소설’로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존 통속소설과는 달리, 이렇게 특정한 규칙을 가진 쪽은 다소 진입 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규칙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런 소설을 각개적으로 수용하던 사람들이 PC 통신을 통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PC통신의 동호회는 전국의 장르문학 마니아들끼리 정보를 교류하며 취향 집단을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니아 중 일부는 동호회 게시판에서 장르적인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장르물에서 배운 규칙으로, 그러나 한국 작가 이름으로 출판된 적은 없는 그런 소설을요. 동사서독 남제북개, 드래곤과 마법사 같은 규칙과 설정을 이어받았죠.

이렇게 PC통신의 힘으로 IMF를 전후하여 한국에는 걸출한 장르문학 작품이 많이 출간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pc통신소설입니다. 한국 장르문학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해서 출간된 기념비적인 작품이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와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 등입니다.

웹소설
여전히 대본소(대여점)은 호황이었고, 장르소설이란 단어가 슬슬 등장하며, 통신소설이 부흥합니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이 지나pc통신소설 부흥기가 가라앉은 뒤에는, 장르문학 커뮤니티들도 인터넷으로 둥지를 옮겨 틀었습니다. ‘고무림 (후에 고무판)’ 같이 장르소설을 써서 올리는 장르 전문 인터넷 커뮤니티가 몇몇 곳 생겨났죠.

제가 했던 경험도 비슷하네요. 제가 천리안 시절에 쓴 소설이 당시 인기가 좀 생겼는데, 그것을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로 퍼가겠다는 제의가 있어서 퍼가게 했던 기억이 나요. 한창 연재하던 중에 다음까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음까페로도 퍼가게 했고 저도 거기로 옮겨가면서 결국 다음까페가 본진이 되었죠. 나중엔 펀딩처럼 제작 비용을 미리 받은 뒤 개인 출판해서 하나 하나 직접 배송했었고요.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간 실시간 경험이 있는 셈이랄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카페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인터넷 소설이라고 불리는 로맨스 장르가 한국형 장르물의 명맥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이 대표 작품입니다. 기존의 멜로 드라마적 통속소설이나 할리퀸 문고와는 달리, 10-20대에 소구하는 산뜻한 로맨스 장르였죠. 작법적으로 보자면 순정만화의 유산도 물려받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19금 동인 소설이나 요상한 ‘체벌소설’, 하드코어한 소설들도 꽤 있었어요. 한창 흥하다보면 다음 까페 등에서 블라인드 처리되어 있곤 했죠.)

웹소설
소위 ‘인소’의 시대입니다.

이렇게 pc통신소설과 인터넷 소설을 거쳐가고 있을 무렵, 스마트폰이 등장합니다. 로맨스나 동인소설 등이 많던 인터넷 소설 외에도, 고무림처럼 무협이나 판타지 등의 장르문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몇 곳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곳에 스마트폰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재의 웹소설이라는 산업적 잠재력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스마트폰 형태와 크기에 최적화된 뷰어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같은 소설인데 스마트폰으로 보다보니, ‘어라, 문장이 길면 한 화면에 몇 문장 못 들어가네?’ 큰 화면으로 볼 때와는 달리 작은 페이지로 나누다보면 연속성이 떨어지니, ‘초반에 너무 긴 빌드업은 불리하네?’ 이런 식으로 디바이스 사용 경험에 맞춰진 개선이 거듭됩니다.

이것이 웹소설의 시작이죠.  

웹소설
웹소설은 이런 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 문학계에서 바라본 디지털 글쓰기

문학 이야기로 잠시 돌아와 봅시다.

통신 동호회나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문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에서부터 아닌 사람까지 다양했기 때문에 수준은 들쭉날쭉했습니다. 이는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웹소설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이죠.

이에 대해 1999년 김병익 평론가가 논평한 문장을 인용하겠습니다.

끔찍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추세이며 안타깝지만 투항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역사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수웅, 2012, 재인용)

90년대 중반만 해도 여러 문예지에서 이런 현상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서구의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소개하는 등의 문학계의 활동이 있었습니다만, 다소 즉자적이었으며 이것이 결국 무엇이 될지 전혀 가늠하지 못한 채 ‘컴퓨터로 글쓰기’나, ‘통신문학’에 국한되었던 논의였습니다. (박유희, 2005)

김병익 평론가의 글을 계속 인용해 보겠습니다.

컴퓨터 문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기술적 숙련성의 차이이고 하찮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 하찮은 기술적 숙련성의 차이가 일으킨 정신적 결과는 의외로 크다.

 (문학의 미래는)
첫째, 영화, 비디오, TV 등 갖가지 뉴미디어의 확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문학의 위치는 축소되고 작가의 신분은 초라해진다.
둘째, 문학에서 문학성의 의미가 약해지고 대량 판매의 가능성, 유행성, 소비성 등이 우선 순위가 된다.
셋째, 문학이 위락적 소비의 대상으로 변한다.
넷째,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텍스트는 자유로이 고쳐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학은 언어만의 것에서 해방되어 기존 문자 언어의 확실성과 구체성이 흔들리게 된다.(김재국, 1997, 재인용)

또한 김성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박유희, 2005)

멀티미디어 컴퓨터에 매료되어 모든 것을 영상 모드로만 처리하며, 컴퓨터를 모르는 활자세대의 인문주의와 낭만주의를 경멸한다.

이렇듯 이 당시 비판들을 요약하면 ‘흥미 위주의 상업성과 통속성, 원색적이고 엽기적인 표현, 독자추수주의, 노출증, 관음증, 인간미 결여, 통신 언어의 사용, 선정적인 소재주의 함몰,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의 미숙한 습작품 이상의 의미를 가지가 어렵다’는 말들이 등장합니다. (최수웅, 2012)


그러나 그런 비판 속에서도 그 가능성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도 물론 있었죠.

‘디지털 공간에서 행해지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등장은 단순히 표현방식의 변화라는 차원을 넘어 문학의 존재 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학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양방향성, 실시간성, 대중성, 익명성과 공동창작, 무한한 상상력 등의 특징은 기성 문단과 차별을 낳으며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김재국, 1997)

어떤가요? 현재 웹소설을 향해 한 마디씩 비평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거의 똑같죠? pc통신의 시대에도 똑같은 시선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3.웹소설의 입장과 관점

지금 웹소설을 알고 있는 여러분들은 위 논평들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상업성, 통속성, 수많은 해시태그로 드러나고 있는 소재주의, 소시오패스 같은 사이다 캐릭터의 시대, 약육강식의 세계관과 잔인한 묘사들, 가벼운 목숨들, 정제되지 않은 수준 차이, 쉽게 수정 가능한 속성 등등은 위에서 말한 대로 웹소설의 일부 경향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죠.

그게 문학의 위기, 또는 문학의 대안과 무슨 상관이 있죠?

물론 이해는 갑니다. 통속소설조차도 글맛이니 문장력이니 해학적이니 토속적이니 인간의 본성이니 하면서, 제도권 문학의 평가 기준 아래 두는 것이 당연하던 때였으니까요. 그러나 현재의 눈으로 보자면, 광고 디자인을 보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미술’이라고 평가하는 듯한, 동어반복적인 비평으로 보이죠.


예컨대 웹소설은 문학의 자손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방계인 장르문학 시절에 가문을 나와 플랫폼-상업성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의 집안입니다. 문학 가문에 풍파를 일으키거나, 위기를 극복해주는 적자가 아닙니다.

예술 영화가 상업 영화와 구분되어 자연스럽게 수용되듯이, 광고미술이 파인아트와 자연히 구분되듯이, 웹소설은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픽션-콘텐츠입니다. 제도권 문학과는 최종 결과물이 ‘문자’라는 형태가 같을 뿐, 존재 목적 자체가 다른 남의 집안이죠.

그래서 웹소설계에 있는 사람들은 웹소설을 기존 문학의 용어로 비평하려 하거나, 기존 문학에 포섭된 영역으로 표현하거나, 기존 문학이 선심쓰듯 허가해주려는 듯한 용어를 쓸 때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SNS를 둘러보다보면 가끔 웹소설계에 있는 분들이 어떤 행사나, 문예지나, 누군가의 비평에 화를 내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구체적인 이유야 다 다르지만 크게 이런 배경을 알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왜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그럼 그렇다고 웹소설은 아예 인문학적인 소양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글쓰기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소위 인간과 세계의 탐구, 문장의 아름다움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글쓰기라도 어느 정도의 인문학적 통찰력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 없거든요. 반대로 순문학이라고 해도 통속성을 가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야기겠죠.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이, 무한히 수준 낮고 저속하고 통속적이고 저질일수록 상업성이 좋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많은 대중을 움직이려면 그런 것 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대중을 얕보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장르문학계나 웹소설계에서 이를 열심히 주장하고 항변할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문학적이다!’라고 사례를 들어 반박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인문학적 탐구나 한국어의 아름다움의 실험, 이런 것이 주 목적이 아니므로 애초에 그런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해서 그리 황공할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를 또 광고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광고를 통해 매출을 올리면 존재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미술로써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있는 광고도 당연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굳이 순수미술계에 애써 증명할 이유는 없다. 광고 미술의 미학적 가치조차도 광고계가 마련한 기준으로 평가하겠다.’ 정도겠네요.

4.끝으로

그렇다면 장르문학, 그리고 웹소설은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소구하는 걸까요?

이를 알려면 웹소설은 장르문학이 그러했듯, 욕망을 일정한 규칙을 통해 다루는 콘텐츠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르물은 무엇보다도 욕망과 규칙이 중요하죠. 그래서 장르 규칙이 있는 것이고, 웹소설의 경향성이 생기는 것이죠.

때론 ‘장르문학-웹소설에서는 상업성이 중요하다더니, 규칙이 너무 많다. 규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더라, 규칙을 모르는 대중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정서더라. 이렇게 진입 장벽이 있는데 어떻게 대중문학이냐?’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장르문학과 (너무 넓은 정의인) 대중문학을 혼동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중문학은 순문학의 반대항이란 개념에 가깝지만, 장르문학은 단순히 순문학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거칠게 예를 들자면, 그 동안은 색을 기준으로 빨간 것과 파란 것으로 나눠왔는데, 동그란 것만을 묶는 기준이 따로 있는 셈이죠.

요약하면 장르문학은 단순히 대중문학의 하위에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장르문학은 ‘순문학-대중문학을 가르는 기준’이 아닌, ‘욕망과 규칙을 다루는 기준’으로 구분한 문학이며, 그렇게 해서 필연적으로 상업성이 따라 온 문학입니다. 웹소설은 거기서 상업성 자체가 좀 더 중요해진 것이죠.

다시 정의해 보겠습니다. 장르문학은 정확한 욕망을 가진 독자들과 약속한 규칙으로 움직입니다. 순문학보다는 보드게임과 더 비슷합니다. 엔터테인먼트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순문학보다는 대중문학에 더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보편적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게임의 규칙을 알고 학습하는 사람끼리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장르문학과 대중문학, 제도권 문학의 더 구체적인 차이는 후에 다시 다루겠습니다.

지금까지 웹소설에 대해 가벼운 소개와 웹소설이 되기 전까지의 흐름을 짧게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각각의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고,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들을 추가로 작성해 볼 예정입니다.

역사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맥락이 삭제되거나 편집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첨언하거나 틀렸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알려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글 02.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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