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가 소재한 이문동에는 50년 가까이 되어가는 식당 하나가 있다. 순대국집, 이라고 콕 찍어 말하지 않고 식당,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식당이 원래 보신탕도 취급하고, 하여튼 잡다한 밥거리를 다 취급하는 그런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

버드나무 순대국

내가 처음 그 식당을 갔던 2002년, 아하, 2002년 월드컵 시절에는 순두부찌개와 청국장 등, 여러 음식을 두루 취급하던 곳인데 학생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순대국 전문점으로 탈바꿈한 곳이었다. 사실상 나의 순대국 라이프의 시작이 되었던 곳인데, 나는 외대 앞 버드나무 순대국을 참 자주 찾았다. 그 시절엔 월화수목금금금 술을 먹으러 다니던 시절이기도 하고, 점심 때든 저녁 때든 버드나무에 가서 술안주로 순대국과 수육을 먹었다. 

 그러다가 만물유전의 법칙으로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더 많은 순대국을 먹게 되고, 학교에 머무는 시간도 줄고, 그러면서 자연히 버드나무 순대국과는,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 나는 주로 서대문으로 순대국을 먹으러 다녔다. 서대문 경찰서를 중심으로 양편에 “아바이 순대”와 “보신제 순대”가 있었다. 보신제 순대는 할머니들께서 노쇠하셔서 내가 딱 두번 갔는데 폐업을 해버리셨고, 아바이 순대는 아드님께서 이어받으셔서 아직 성업중이다. 반대로 당시 외대 앞 버드나무 순대국은, 어머님(사장님을 우린 당근 어머님이라 불렀다)께서 나이가 드시면서 식당을 넘기고 쉬시다가, 소일거리고 주변에 김치찌개집을 차리셨다고. 그런 식으로 내 입맛도 변하고 내가 찾던 식당도 변하고 하다보니 버드나무 순대국은 졸업과 동시에 영영 이별이 되었다. 그 뒤로도 나는 잘만 순대국집을 찾아다니며 내 미각의 지평을 넓혀갔다. 

 그런데.

 그런데?

 나와 작별했던 순대국집이, 우리 집 근처까지 따라왔다. 

버드나무 순대국, 의정부.

버드나무 순대국
버드나무 순대국

 하…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면은, 그날도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순대국집을 검색해보고 있었는데, 응? 버드나무? 응? 별점이 높아? 응? 사진 보니까 머리고기인데?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오랜 시간 맛집과 순대국집을 찾아온 직관에 따라 이곳을 방문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외대를 나온 동기, 다시 말해 나와 버드나무 순대국을 한창 다니던 친구와 함께 그곳을 찾았는데 으아니 세상에? 외대 앞 버드나무 식당이 옮겨왔다고?!

 차마 사장님께 물어보진 못했지만, 가게 스스로 외대 앞에서 옮겨왔다고 밝히고 있었다. 뭐 대단히 이름난 식당도 아니고, 대학가에 좀 잘 팔리는 순대국집 정도인데 그런 이력을 굳이 꾸며낼 일은 없을 것이니, 사실일 것이고, 그런데 사장님은 적어도 내가 가선 시절의 어머님은 당연히 아니시고, 그럴 연세도 아니시다. 스타일로 봐서, 정말 내가 가던 버드나무집의 그 모습 그대로긴 한데, 아니, 정말로 네가 나에게 온 것일까? 

 그런 나의 의심을 뒤로 하고, 상이 차려지고 순대국이 나온다. 

 그걸 본 나의 마음은…허 이것 참. 허어어어어 이것 참…아니, 왜…이렇게…근본인 것일까?

버드나무 순대국

 순대국 맛집의 원칙, 뼈가 아닌 고기 육수. 머릿고기로 직접 우린, 그리고 8천원에, 이렇게나 양이 많을 수 있다는 것. 원래 순대국은 이런 음식이다. 퍼먹고 퍼먹어도 또 볼살이 집히고 귀가 잡히고. 거기에 김치와 깍두기, 양파와 고추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외대 앞 그 버드나무의 모습 그대로다. 이 빨간 새우젓을, 순대국에 넣고부터 시작이라지. 

 첫 술을 입에 넣으니 과연 그 맛이다. 아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외대 앞 버드나무의 그것보다 훨씬 맛이 좋다. 그 당시 어머님께서는 돼지뼈로 국물을 좀 내셨다. 당시 내가 다니던 서대문 아바이 순대는 콩나물이 담긴 고기육수를 쓰셨는데, 여수의 그 나진국밥보다 좀 더 짭짤하고 고기 향이 진한 맛이다. 내 입맛에는 지금도 그 서대문 순대국이 원탑인데, 의정부에 새로 생긴 버드나무 순대국을 먹어보니, 야 이게 제대로 된 머리국밥이다. 최고다. 이 순대국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반갑다. 

버드나무 순대국
버드나무 순대국

 스무살 시절에는 여기에 들어가는 당면 순대도 좋다고 먹었지만, 입맛을 좀 따지게 되면서 부터는 나는 당면순대가 들어가는 순대국밥은 절대 먹지 않는다. 그래서 버드나무 순대국에서도, 나는 당연히 머리국밥만 먹는다. 머리국밥이 호불호가 있는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이 식당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미어터지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머리국밥의 약점을 보완해, 살코기국밥을 따로 팔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국밥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살코기국밥을 먹는다. 고기 부위는 다르나 양은 그에 버금간다.

 맨 위에 올린 사진이 1만원짜리 특국밥이다. 어지간히 많이 먹는 나도 저 한그릇을 먹고 하루 종일 다른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어떻게 이런 영업방식이 가능한가 보니, 순대국밥 식당이면서, 무려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저녁 장사를 위해 새로 육수를 내는 시간이라고. 그렇다면 인정이지. 머리고기와 살코기들을 그때 그때 삶아내서 순대국을 만드니, 그 옛날 그 시절처럼 양은 정말 넘치도록 많고 가격은 저렴한, 최고의 맛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버드나무 순대국

 그래서 이 버드나무 식당은, 점심 때는 늘 웨이팅이 있다. 비오는 날에도 화창한 날에도 사람이 쉬지 않고 끓는다. 어릴 때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니 정말 멋진 사람으로 뒤바뀌어 있다는 이야기- 낭만적이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건…내 순대국의 첫사랑이, 거의 탑 연예인이 되어 등장한 기분이다. 반갑고, 즐겁고, 행복하다. 이래서 인생, 알다가도 몰라. 

내 가게에서 장사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 너무 좋아 – 버드나무 순대국 어머님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