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틀렸어. 포장도 이미 마감이야.”

“으응 그렇지 뭐.”

“대기는 지금 두 시간이래. 어떡해?”

“타 일단. 다시 앞으로 갈게.”

국립국악원

 방송이 또 하나 대박집을 만들어냈나보다. 연말연시를 보내기 위해 양양을 찾았는데 마침 딱, 누룽지 오징어 순대를 주종목으로 하는 식당이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누룽지 오징어 순대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원래 이런 핫플을 따라가길 좋아하는데다가, 원래 누룽지도 좋아하고, 또, 오징어순대도 좋아한다. 그래서 속초에 오면 이리 저리 한 끼 쯤엔, 거의 매번 끼워서 먹게 된다. 한마리, 한 접시에 만오천원이나 하는, 값비싼 음식을. 

 그런데 웬걸,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열한시 반쯤 도착해서 보니, 이미 어마어마한 인파가 좁은 시장바닥을 꽉 메웠다. 포장은 마감 웨이팅은 두시간. 저 좁은 골목에 사람은 다닥, 다닥. 

나는 얼른 바깥양반을 차에 태웠다. 그런데 오징어 누룽지 순대라. 나는 전날부터 바깥양반이 여길 꼭 가봐야겠다며 수선을 떨기에 한번 검색을 해서 사진을 보고는, 더욱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흔한 음식 아닌가. 오징어순대를 눌러서 먹는 거라니.

누룽지 오징어 순대

 두 해 전 겨울, 속초에 반달살이를 왔을 때 중앙시장에서 오징어순대를 세마리에 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사서 집에서 며번 조리 해 먹었다. 식당에서 당시 만2천원쯤 했을 것이다. 그때 사장님께서 오징어 순대를 맛있게 먹으려면 “기름 없이 계란 물 묻히지 않고” 후라이팬에 눌러서 먹으라고 귀뜸을 해주신 일이 있다. 

 이치를 따지고 보면 그렇다. 오징어 순대 안의 찹쌀밥이 기름에 눌러지며 그윽하게 누룽지가 만들어지면, 계란물을 묻혀 먹는 것보다 훨씬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숙소로 돌아와서 사장님이 알려주신대로 그대로 해보았는데 웬걸, 그때는 또 쉽지가 않았다. 이유는 두가지였는데 오징어순대를 너무 얇게 썰면 그것을 다시 후라이팬에서 익히는 과정에서 쫄아들면서 밥과 분리되기가 쉽다. 또 하나는 기름을 묻히지 말라고 해서 곧이곧대로 했더니, 누룽지는 잘 안만들어지고 밥이 팬에 자꾸 붙는 것이었다. 

 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계란물에 묻혀서 익혀먹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회귀를 했는데 또 계란물이란 것이 이치를 따져보면 그렇다. 분명히 속초 사람들 사이에 알음알음 이렇게 계란 없이 누룽지로 만들어서 먹는 방법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왜 그 많은 식당들은 누룽지로 안 내어주고 계란 지짐으로 내어주고 있었는가? 

 그것은 아마도, 함경도 사람들이 아바이 마을에 정착해 이북 순대를 차용해 오징어 순대를 만들어서, 식혀둔 뒤 다시 먹는 방법의 하나로 발전했을 것이요, 먹을 것이 귀했던 1950년대 이후의 시대상황에서는 계란물에 부쳐서 먹는 것이 귀한 호사의 하나였던 것이 한 원인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오징어 순대를 먹는 최상의 방법으로 계란부침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아온 역사가 있다. 손님에게 내어줄 때, 흔히 먹는 누룽지 스타일보다는 계란물 풀어서 거기에 부쳐주면 그게 마치 잔치음식 같은 품격이 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 

 어쨌든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다. 나는 바깥양반을 다시 차에 태운 뒤 망설이는 그녀에게 잔잔히 말을 걸었다.

“다른데에서도 팔아. 그리고 내가 만들어줄 수도 있어.”

“다른데서 팔아?”

“어. 저기 봐.”

누룽지 오징어 순대
누룽지 오징어 순대
누룽지 오징어 순대

 방송을 탄 대포항의 모녀가리비 식당 인근에 벌써 수십개의 점포가 모두 누룽지 오징어 순대를 취급하고 있었다. 당연히, 엊그제까지 계란물에 풀어 부치던 것을, 계란을 빼고 기름은 늘려 바싹 구우면 끝나는 음식이다. 이것이 어디의 특허일 리도 없다. 오징어 순대에 별다른 비법이 있을 리도 없다. 모두 공장에서 떼어오는 음식을 데펴주는 것에 불과한 때문이다. 

 그러니 모녀가리비에 몇시간 줄을 서 있을 이유도 내가 볼 때는 없다. 나는 바깥양반을 차에 남겨두고 홀홀 걸어서 대포항 먹자골목을 휘이 둘러봤다. 새우튀김 골목에서는 점포마다 손을 흔들며 우리집서 사가라고 난리다. 그리고 발길 닿는 끄트머리에서 그대로 멈춰, 누룽지로 만들어달라고 사장님께 요청했다. 

누룽지 오징어 순대
누룽지 오징어 순대
누룽지 오징어 순대

 잠시 뒤, 오징어 순대가 즉석에서 썰려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사장님은 우리집이 맛있다며 너스레를 떠시지만 에이, 다 알고 왔는데 뭘요. 

 누룽지 오징어 순대를 먹고 싶다면 그냥 집에서 먹어도 된다. 택배로 두 마리에 한 만 오천원정도 하나보다. 2센티 이상 두툼하게 썰어서 기름 넉넉하게 붓고 팬에 구우면서, 뒤집개로 눌러주면 누구든 저렇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다. 굳이 기다릴 일도 아니고 말이다. 

 시간만 나면 오징어 순대를 만들고 싶은데 나는 한번에 서너 마리를 만들어서 끼니마다 먹을 순 있지만 바깥양반은 그렇게 먹을 위인이 아니시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한 두 마리만 쪄서, 그걸 한번에 한마리씩 하루에 한번정도씩 먹는 일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다. 찜통에 채반 올리는 것도 일인데, 적어도 다섯마리는 해야 하는 사람도 고생이 차라리 덜하다. 

 그래도 겨울이 오징어 먹을 철인데 이제는 원양어선으로나 오징어를 먹게 된 시국이지만, 언제쯤 만들어볼까 하면서 나는 서서히 피어오르는, 양념 찹쌀밥의 누룽지가 만들어지는 기름한 내음을 맛본다.

 그리고 이내 음식이 나왔다. 내 덕에 그래도 손님이 점포 앞에 서는 그림이 나와, 사장님이 손님을 한 두명 더 받았다. 

누룽지 오징어 순대

“자.”

“사진 많이 찍었어?”

“…먹기나 해. 뜨거울 때 먹어야지.”

“지금 배 안고픈데.”

“맛은 봐. 뜨겁게 익혀 나온 음식을 배부르다고 식혀서 먹는 건 바보짓이야.”

 자기가 이건 꼭 먹어야겠다더니 바깥양반은, 남편이 비도 맞아가며 고생해서 사 온 오징어 순대를 그냥 식도록 내버려둔단다. 차를 몰며 나는 성화를 부렸고, 우리는 차 안에서 뜨거운 순대를 먹으며 손가락의 기름기를 죽죽 빨았다. 아기도 누룽밥을 조금 맛을 보았다. 

 맛이란 게 그러하다. 알고 먹으면 더 좋고, 모르고 먹는다면 몸이 조금 고생이다. 부디, 누룽지 오징어 순대 하나가지고 몸 힘들고 시간 버릴 일은 좀, 않으셨으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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